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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TELYST Oct 20. 2024

입은 닫고, 귀를 열라

독서기록 202410: 침묵을 배우는 시간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수상하고 1주일쯤 지나서, 눈의 의심케 하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기사 내용은 보수 단체 소속 어르신들이 스웨덴 대사관 앞에서 한강 노벨상 반대 시위를 했다는 것입니다. 못난 어른들이 하는 짓 보고 있자니 아이들에게 면목이 없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닫고 귀를 열라'는, 너무도 당연하게 들리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더 어려운 일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 동안 경험을 통해 풍부한 빅데이터를 쌓았지만, 생각의 유연성과 민첩성이 약해져 새로운 정보의 흡수와 소화는 더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의 빅데이터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부분은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들의 흐름 같습니다. 역사적 사건들이 그대로 반복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즉, ‘예전에 이런 사건이 있었으니 이렇게 해라’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어떤 사건들이 일어날 수 있으니 고려해라’가 더 현실적 조언일 것 같습니다.


헌법에 보장된 권리는 누구에게도 침해받지 않아야 하고, 표현의 자유 또한 여기에 해당됩니다. 그러나, 타인에 대한 혐오의 표현이 여기에 포함되지는 않습니다. 표현의 자유가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어떤 언어로 표현하는지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침묵을 배우는 시간은 그렇게 어려운 ‘입 닫기’를 언어의 기술로 규정하여 그 활용법을 정리한 책입니다. 즉, 원래 말이 많은 성격의 사람들도 침묵을 기술로써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저자 코르넬리아 토프는 독일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독일의 다양한 기업들에 커뮤니케이션 코칭을 하고 있으며, 저서로 <스몰토크>와 <똑똑한 커뮤니케이션>이 있습니다. 저자는 철학자나 수도승이 아닌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입니다. 즉, 그녀에게 침묵은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수단입니다.


저자는 말이 힘을 잃게 된 근원이 소음으로 가득한 환경, 그리고 그러한 환경 속에서 자신과 타인의 마음에 대한 외면이라고 진단합니다.


에너지는 고요의 샘에서만 길어낼 수 있다. 그리고 직관은 고요에서만 깨어난다. 삶의 의미는 번잡한 소음이 아니라 고요한 순간에 드러난다. 말을 많이 할수록, 세상의 소음에 귀를 내줄수록 점점 자기 자신을 잃게 된다.

세상이 변화무쌍하다는 말은 지금 내가 갖고 있지 않은 지식이 더 중요하다는 소리다. 자신의 지식만으로는 세상의 변화를 예상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변화를 예측하고 이해하려면 내게 없는 지식이 필요하다.

떠들기만 하는 사람은 남의 말을 못 듣는다. 그런 장광설의 대가는 너무 비싸다. 심지어 리더의 장광설은 기업의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다. 듣는 자만이 세상을 알게 된다.


저자는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출발점이 자신에 대한 존중, 구체적으로 자신의 욕구에 대한 인정과 존중이며, 의도적 침묵은 그에 접근하도록 해주는 수단이라고 얘기합니다.  


입을 닫고 모든 소음의 원천을 끄면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게 때로는 편치가 않고, 때로는 아프다. 그래서 도망치고 싶어진다. 그 성가신 생각들에 일일이 신경 쓸 시간도, 의욕도 없기 때문이다.

자신과 대화를 나누면 자신의 욕구를 발견할 수 있다. 일명 ‘내재적 동기’로, 깊은 곳에 숨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는 것보다 더 강한 동이 유발책은 없다.

일기는 근심을 치료하는 최고의 명약이다. 근심에 싸인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말의 두서가 없고, 이 이야기를 했다가 저 이야기를 했다가 정신이 없다. 그러나 글을 쓸 때는 다르다. 감정을 솔직하게 글로 적으면, 진정 아프고 힘든 감정까지 밀고 들어갈 수 있다.


저자는 침묵이 이렇게 발견한 자신의 욕구가 타인에게도 존중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수단이라고 얘기합니다. 여기에서 침묵은 전달하려는 내용의 핵심을 부각시키는 여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두뇌는 낮에 모았던 정보들을 밤에 자는 동안 소화한다고 한다. 그러니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떠들기만 하면 상대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릴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피하려면 내가 한 말이 상대에게 스며들 때까지 입을 닫고 기다려야 한다. 내가 추천하고 싶은 말과 침묵의 비율은 1:3이다. 침묵이 말보다 3배 더 길어야 한다.

진짜 관심은 언제나 최고의 소통수단이다. 침묵을 견딜 수 없는 이유도 침묵 자체보다는 자신이 타인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말을 잠깐 멈추는 것이 직접적인 공격보다 강력하다. 의도적으로 잠깐 말을 멈추는 것만큼 빨리, 효과적으로 불안을 조장하는 방법은 없다. 불안은 인간의 감정 중에서도 힘이 강한 편이다.


이 책의 내용과 문장은 굉장히 평이합니다. 더군다나 동양의 문화권에서 살아온 이들에게는 더욱 그렇게 느껴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실 너무 평화롭게 전개되다 보니, 허를 찌르는 새로운 것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에 끝까지 보게 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의 허무함에 우왕좌왕 하다가 문득 느껴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누구나 알고 있을 것 같은 당연한 얘기들인데, 살면서 실제로 지켜내고 있는 것들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보의 바다에서 살아온 우리는 이미 많은 것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는 것을 실행하는 것은 또 다른 영역인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알고 있는 많은 것들 중 무언가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특별한 동기를 필요로 하고, 정갈한 언어는 때때로 그러한 동기를 제공합니다. 이 책의 역할이 그런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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