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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TELYST Dec 15. 2024

비상계엄의 후폭풍

우리나라 경제에 드리운 먹구름

며칠 전 야근 후 밤늦게 퇴근하던 아내가 카톡으로 링크를 하나 보내왔습니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속보였습니다. 처음에 든 생각은 ‘아내가 이런 장난도 할 줄 아는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혹시나 싶어 네이버를 열었더니 아내의 장난이 아니더군요. 이건 뭔가 싶어 TV를 켰더니, 국회를 막고 있는 경찰들이 보였고, 총을 든 군인들이 국회로 들어가는 장면이 나타났습니다.


12월 14일 오후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되며 한숨을 돌렸지만, 앞으로 해결해 가야 할 일들이 만만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헌재의 탄핵 심판, 특검의 수사, 대선과 정부 조직의 재편, 새로 들어서는 미국 정부와의 관계 설정, 무엇보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들이 그렇습니다. 특히 이번 탄핵은 지난번과 달리 더 오래 우리를 괴롭힐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경제의 구조적 문제와 맞물려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경제지표들은 지속적으로 경고의 시그널을 보내왔고, 코로나 상황에서 벗어날 때부터 그 징후들이 표면에 드러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자료출처: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GDP(국내총생산)는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경제지표의 하나입니다. GDP는 명목 GDP와 실질 GDP로 구분됩니다. 간단하게, 실질 GDP는 생산액, 명목 GDP는 소비액 정도로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들 간의 차이는 물가상승률에 의해 발생하게 되는데, 명목 GDP에는 물가상승률이 반영되는 반면, 실질 GDP에는 물가상승률이 반영되지 않습니다. 국가별 GDP 순위 비교에 사용되는 것은 명목 GDP입니다. 우리나라의 명목 GDP와 실질 GDP 모두 지속적으로 성장해 왔고, 큰 문제가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수 시장이 작은 우리나라의 GDP는 수출에 의존하는 바가 큽니다. 즉, 다른 나라에서 사 온 재료로 물건을 만들고, 이를 다른 나라에 팔아 돈을 버는 구조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다른 나라에서 재료를 싸게 사 오고, 만든 물건을 다른 나라에 비싸게 팔수록 돈을 더 많이 벌게 됩니다. 여기에는 물가 외에도 환율의 영향이 작용하게 됩니다. 국가별 GDP 순위는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를 기준으로 합니다.


자료출처: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미국 달러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가 돈을 가장 많이 벌었던 때는 지금이 아니라 2021년 2분기였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나라의 GDP가 2018년부터 2020년 코로나가 모든 것을 마비시키기 전까지 지속적으로 하락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코로나 기간 중 우리나라의 GDP는 빠르게 상승했고, 우리나라의 GDP 순위는 2019년 12위에서 2020년 10위까지 상승했습니다. 다른 나라들보다 코로나 상황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면서 생산 활동을 비교적 잘 유지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2021년 2분기 정점을 찍은 우리나라의 GDP는 코로나 상황이 진정되기 시작하면서 또다시 하락했습니다.


원화의 가치는 2021년 1분기에 가장 높았습니다. 즉, 같은 돈으로 더 많은 재료들을 사 올 수 있었습니다. 물론, 원화 가치가 높아지면 다른 나라에 판매하는 가격이 더 비싸지기 때문에 판매에 불리한 상황이었지만, 다른 나라들의 생산 활동이 멈춰 선 상황이 유리하게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2021년 2분기부터 원화 가치가 급격하게 하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즉, 같은 돈으로 사 올 수 있는 재료들은 줄었고, 다른 나라들이 생산 활동을 재개하면서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던 우위는 사라졌습니다.


자료출처: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환율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은 국가별 금리 차이입니다. 돈은 이자를 많이 주는 곳에 몰려듭니다. 서서히 긴축 기조로 돌아서던 미국은 코로나 기간 중 긴축을 미루고 공격적인 양적완화 정책을 다시 꺼내 들었습니다. 그리고, 코로나 상황이 진정되자마자 급격하게 금리를 끌어올리며 긴축을 재개했습니다. 즉,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던 달러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물론, 우리나라도 이에 앞서 금리를 끌어올리기 시작했지만, 미국의 속도를 쫓아가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통상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1,100원에서 1,200원 사이에서 관리되어 왔습니다. 즉, 1,200원을 넘어갈 것 같으면 금리를 인상하고, 1,100원 아래로 떨어질 것 같으면 금리를 인하하여 진정시켜 왔습니다. 만약, 금리를 통해 환율이 진정되지 않으면, 한국은행이 직접 시중에 달러를 공급하거나 회수하여 환율을 관리하게 됩니다. 다만, 외환보유고에 손을 대야 하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방법입니다. 그러나, 금리 인상에도 달러가 1,200원을 돌파하여 상승을 이어가자 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자료출처: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이번 정부 들어, 환율과 외환보유고 변동 추이를 보면 경제 당국은 악전고투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은 미국 정부로부터 반도체 수출 통제 완화, 새 정부에서 예고된 관세 폭탄의 유예, 2021년 말 종료된 한미 통화 스와프 재개 같은 것들 중 뭐라도 얻어오기 위해 전력을 다했어야 합니다. 사실, 아직은 외환보유고가 박근혜 정부 수준까지 떨어지지는 않았기 때문에, 대통령이 이러한 운신의 폭을 어느 정도 마련해 주었다면, 상황이 조금은 더 쉽게 제어될 수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미국의 급격한 금리 인상을 쫓아가지 못하는 것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민간 부채에 있습니다. 코로나 기간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양적완화 정책이 시행됐습니다. 이를 통해, 원래 다른 나라들에 비해 높은 수준이었던 민간 부채가 GDP의 3배 수준까지 치솟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를 급격하게 끌어올리게 되면, 상대적으로 운신의 폭이 있는 정부 부채와 달리, 민간 부채의 경우 채무불이행이 급증할 수밖에 없고, 이는 금융기관 부실화로 이어지게 됩니다.


자료출처: IMF Global Debt Database (Private + Household)


이처럼 정부의 재정 정책이 외통수에 갇히게 되면, 해외 환투기꾼들의 먹잇감이 되기 쉽습니다. 정부가 외환보유고를 통해 자국 환율에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정황이 나타나면, 이들은 투자은행들로 하여금 해당 국가의 통화에 하방 압박이 증가하고 있으며, 특정 시점에 정부의 제어가 한계에 이를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도록 합니다. 그러면, 외화 유출이 빨라지기 시작하고, 이들은 예고한 시점에 해당 국가 통화를 대량으로 매도하여 외환보유고를 비웁니다. 그리고, 우량 기업과 자산들을 줍줍 합니다.


그럼 지금 우리는 과연 발등에 떨어진 불들을 끌 수 있을까요? 비록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상황이 녹록지 않아 보입니다만, 다행히 미국이 금리 인하를 위한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습니다. 즉, 잘 버티면 재정 정책의 외통수는 머지 않아 해소될 수 있을 것 같고, 이 경우 해외 환투기꾼들의 공격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환율의 안정성 확보, 이를 기반으로 탄력적 재정 정책을 통한 내수 시장의 활성화, 수요 공급의 법칙에서 조금 더 자유로운 고부가가치 산업군의 육성이라는 숙제가 남게 됩니다.



환율의 안정성 확보와 관련해서는 새로 들어서는 미국 정부의 정책, 특히 가상화폐 관련 정책을 참고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트럼프는 가상화폐를 달러의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로 보는 것 같습니다. 전 세계 경기가 동시에 침체된 지금은 전과 같이 달러를 무분별하게 찍어내기 어려워졌지만, 미국은 여전히 국채를 통해 재정을 충당해야 합니다. 현재 리스크 헷지 수단으로 미국 국채를 활용하는 가상화폐들이 늘고 있습니다. 게다가, 트럼프는 정부가 몰수한 가상화폐로 국채를 상환하려는 생각도 있어 보입니다.


미국의 금리 인하가 본격적으로 개시되고 한미 금리 역전이 해소되면, 적정 속도의 양적완화를 통해 내수 시장을 활성화할 여지가 생길 것입니다. 다만, 이때 시중에 풀리는 돈이 소비로 이어지지 않고 또다시 부동산에 유입되는 것은 차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의 사례에 비추어 보면, 정부가 부동산의 공급에 직접 관여하는 것은 역효과가 컸던 것 같고, 집값 상승의 근본적인 원인들을 제거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학군이나 생활편의의 불균형, 주택의 상속 및 증여 제도 같은 것들입니다.


어떤 산업이 미래에 고부가가치를 창출해 낼 것인지 지금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지금은 육성 산업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민간 벤처캐피털과 정부 정책자금의 역할을 명확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민간 벤처캐피털의 경우 단기간에 결과가 도출되는 산업에 초점을 맞추게 두더라도, 정부 정책자금의 초점은 비록 호흡이 길더라도 빈 곳을 채워줄 산업으로 옮길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부가 레드오션의 양산을 부추기는 상황이 멈출 같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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