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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손가락

독서기록 202504: 불확실한 걸 못 견디는 사람들

by HOTELYST

대한민국 국민으로 사는 것은 참 피곤한 일인 것 같습니다. 국가적 어려움을 항상 직접 나서 해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들어, 정치인들에게 맡겼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생업까지 포기해 가며 직접 해결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여러 채널에서 불확실한 걸 못 견디는 사람들이라는 책에 대한 얘기를 몇 번 듣게 되었고, 고민 끝에 주문해 읽었습니다. 이 책은 극단주의가 급격하게 확산되어 가는 세계적 현상의 원인을 내부적 요인, 즉 사람들의 심리에서 찾아 설명합니다. 같이 주문했던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라는 책은 그 원인을 외부적 요인, 즉 불완전한 제도에서 찾아 설명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고정형 사고방식 vs 성장형 사고방식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계급에 따라 분리되는 사회를 옹호한 플라톤의 얘기였습니다. 2025년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얘기입니다만, 역설적이게도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일의 많은 부분을 설명해주고 있는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진정한 행복은 오로지 정의에 의해서만, 즉 자신의 자리를 지킴으로써만 얻을 수 있다. 지배하는 자는 지배하는 것에서 행복을 찾아야 마땅하고, 전사는 전장에 나가 싸우는 것에서, 그리고 노예 역시 노예가 되는 것에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 (플라톤, 본문 281쪽)


플라톤의 관점은 캐럴 드웩이 마인드셋에서 정의한 고정형 사고방식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정형 사고방식은 우리의 모든 능력과 재능이 선천적인 것으로, 변화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고정형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모든 과제들이 자신의 자질을 드러내기 위한 테스트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그녀는 고정형 사고방식에 대응되는 개념으로 성장형 사고방식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성장형 사고방식은 지능, 도덕성, 끈기, 의지력 같은 인간의 자질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으로 봅니다. 성장형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모든 과제들이 스스로 배우며 발전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종결 욕구


언뜻 현실과 동떨어진 것 같은 고정형 사고방식을 고수하는 이들에게는 어떤 동기가 있을까요? 저자는 고정형 사고방식이 질서와 예측 가능성을 보장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사람들이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앞으로 자신이 어떤 상황을 마주할 것인지 판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예측 불가능한 상황, 즉 불확실성을 빨리 끝내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으며,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저자는 이를 종결 욕구라고 정의합니다. 물론 끊임없는 결정거리가 수반되는 삶에는 어느 정도의 확실성은 필요합니다. 이유는 이도저도 아닌 모호한 상태에 빠져 어떠한 생각과 행동도 실천할 수 없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뇌는 어느 시점에 이르면 가장 확실한 믿음을 택하게 됩니다.


문제는 가장 확실한 믿음이라는 것이 각자의 경험에 기초한, 귀납적 예측에 기반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전에 일어난 일이 그대로 반복되지 않을 수 있고, 예측 자체로 미래에 일어날 일을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신을 얻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간절해 스스로에게 확실성을 납득시기도 합니다.


향상 초점 vs 방어 초점


저자가 제시하는 해법은 지속되는 불확실성을 대하는 태도에 주목합니다. 즉, 어떤 일에 따르는 결과의 바람직하거나 바람직하지 않음보다, 각각의 결과가 일어날 가능성에 초점을 두는 것입니다.


저자는 불확실성을 대하는 태도를 향상 초점방어 초점으로 구분합니다. 향상 초점은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의 긍정적 결과와 그에 따르는 성취감에 초점을 두는 것인 반면, 방어 초점은 앞으로 부정적 결과를 피함으로써 얻게 되는 안도감에 초점을 두는 것입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결과 자체보다 결과를 추구하는 과정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성공했다고 그것으로 끝은 아니다. 실패했다고 세상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계속할 용기다. (윈스턴 처칠, 본문 290쪽)


먼저 목표 25개를 쭉 적어보게. 그런 다음 최우선적 목표 5개에 동그라미를 치게. 이번엔 동그라미를 치지 않은 목표 20개를 열심히 쳐다보게. 그것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해야 할 일들이네. 자네의 정신을 산만하게 하는 것들이니까. (워렌 버핏, 본문 264쪽)


저자는 향상 초점의 긍정적 효과를 조금 더 강조하지만, 향상 초점에 일방적인 우위를 두지는 않습니다. 향상 초점이 현실과 동떨어진 지나친 낙관주의로 되었을 때 역효과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 외부적 요인들에 대해 조심스럽게 언급합니다. 사람들이 결정을 내리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지식과 정보를 필요로 하는, 즉 누군가를 신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불가피함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불확실성의 상황에 놓였을 때 확고한 지침을 제공하고 자신 있게 견해를 밝히는 리더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부분이 문제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이를 악용해 권력과 영향력을 얻으려는 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부분이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아픈 손가락인 것 같습니다.




대단한 성찰을 밀도 있게 담아낸 이 책을 통해 최근의 혼돈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어느 정도는 이해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내부적 요인들에 대한 성찰만으로 개운한 기분은 아닙니다. 짧은 시간 엄청난 속도로 변화해 온 우리나라에는 전혀 다른 경험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으며, 최근의 상황은 우리가 의도적으로 모른 척해왔던 그 차이들이 표면에 드러나는 계기였던 것 같습니다. 숨긴다고 사라질 문제들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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