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유통 전쟁과 상품의 경계
로드아일랜드 디자인대학 동창생인 체스키(Brian Chesky)와 개비어(Joe Gebbia)는 2008년 샌프란시스코로 옮겨와 직장을 구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의 살인적인 물가는 취업 준비생인 두 청년에게 벅차기 그지없었고 이들은 취업 준비를 하는 한편으로 레스토랑이나 슈퍼마켓 등에서 시급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조달하고자 했었습니다.
방 두 개가 있는 작은 아파트 한 채를 얻어 입주하고 난 며칠 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이들과 같은 산업디자이너들에게 가장 큰 행사인 산업디자인 콘퍼런스(Industrial Design Conference)가 열리게 됩니다. 비슷한 일을 하는 이들과 교류할 수 있다는 것 외에도 장래의 고용주가 될 수 있는 이들이 대거 참여한다는 사실에 이들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행사가 다가오면서 이 지역의 호텔 방은 동이 나고 뒤늦게 참석을 결정한 참석자들은 묵을 곳을 찾느라 한창 애를 먹고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이들은 자신들의 아파트를 이용해 일종의 부업을 해보고자 계획합니다. 온라인으로 에어베드 세 개를 주문하여 거실에 놓아두고 ‘에어베드와 아침식사(Airbed & Breakfast)’라는 제목의 웹사이트를 개설하여 숙소를 찾는 콘퍼런스 참가자들에게 호텔들에 비해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했습니다. 대규모 행사가 개최되던 시기의 숙박시설 요금이 폭등했던 터라 이들은 이 짧은 기간 동안 벌어들인 용돈으로 비싼 월세를 해결할 수 있었고 이를 기반으로 사업을 지속해보고자 합니다. 이들의 아이디어에 하바드 출신의 엔지니어였던 블레차칙(Nathan Blecharczyk)이 동참하게 되면서 마침내 이들은 ‘에어비앤비(Airbnb)’의 닻을 올리게 됩니다.
초기에 이들은 사업을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대규모의 행사가 개최되는 시기에 저렴한 숙박시설을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러나 월세를 충당하는 이상의 수입이 필요했던 이들은 사업 확장을 위한 자금의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이를 위해 당시 대선 후보였던 오바마와 맥케인의 이름을 딴 시리얼을 만들어 판매합니다. 이를 통해 2개월 만에 3만 불을 벌어들인 이들은 벤처캐피털 회사인 '와이 콤비네이터'의 설립자인 그레이엄(Paul Graham)의 시선을 사로잡는 데 성공합니다. 2009년 1월 그레이엄은 이들 세명을 와이 콤비네이터의 3개월 창업 연수 프로그램에 불러들여 교육을 시키고 교육이 끝나는 날 2만 불을 창업 자금으로 지원합니다. 이미 웹사이트가 구축되어있던 터였기에 이들은 이 자금을 다양한 사용자 그룹의 의견 청취와 웹사이트를 홍보에 사용합니다.
이들은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와 그동안 구상한 새로운 사업 확장 계획을 그레이엄에게 내어 놓습니다. 이들의 계획은 일종의 소셜미디어로서 일정 기간 임대하고자 하는 공간을 소유하고 있는 이들과 이를 필요로 하는 이들을 중개하는 플랫폼이었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대규모 행사가 있는 시기에 주거 공간 일부를 숙소로 잠깐 대여해주는 것이 아니라 아무 때나 임시 숙소를 필요로 하는 모든 형태의 수요를 중개하는 플랫폼을 구축하고자 했습니다. 현재 에어비앤비는 전 세계 191개 국가의 8만여 개 도시에 위치한 5백만여 개 공간의 장단기 임대를 중개하는 초대형 웹 기반 중개서비스로 성장했고, 이들이 취급하는 공간은 아파트의 방 한 칸에서부터 단독주택, 성, 보트, 이글루 및 섬에 이르기까지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이라면 거의 모든 종류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외형만 보면,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를 없앤 이들의 플랫폼은 호텔 유통 체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불러올 혁신적 시도임에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나 이제 갓 10년이 넘은 사업이 성공 사례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에는 시기상조인 것으로 보입니다. 급성장의 과정에서 이들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드러났고 이를 어떻게 극복하는지에 따라 이들의 미래는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표출된 문제점의 핵심은 단기 체류 시설 유통 채널로서 이들이 취급하는 상품의 속성이 모호하다는 점입니다. 이들의 목표는 전통적인 호텔 유통 체계를 무력화시키고 가격의 측면에서 합리적인 소비의 기회를 제공하는 데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유통하는 상품은 사실 호텔이 아닙니다. 대체로 호텔 상품을 구성하는 요소인 장소, 공간, 서비스 중에서 서비스가 제외된 장소와 공간들이 이곳에서 유통됩니다. 바꾸어 말하면, 호텔 상품을 구성하는 요소를 온전히 충족하지 못한 상품들이 유통되는 것으로 언뜻 일반적인 부동산에 가까운 상품들을 유통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동일한 규모의 장소와 공간이 지속적으로 공급되는 일반적인 부동산과 달리 에어비앤비의 상품은 시간과 이에 따른 용량의 제약 또한 받지 않습니다. 즉 일정한 시간 내에 정해진 용량의 활용을 극대화해야 하는 일반적인 부동산의 유통 체계에서도 벗어나 있는 셈입니다.
이러한 모호성이 갖는 문제는 생산과 소비의 메커니즘에서 생산자에 해당하는 호스트들 조차 자신들이 판매하는 상품의 속성을 규정할 수 없도록 만들면서 생산자로서의 책임을 부담하지 않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생산자의 책임에 해당하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숙박세(occupancy tax)의 납부입니다. 숙박세는 호텔들이 지방정부에 납부하는 일종의 부가가치세입니다만 전통적인 호텔 상품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에어비앤비의 호스트들은 이를 납부하지 않은 채로 호텔과 유사한 영업행위를 해왔었습니다. 여기에 기존 호텔 업자들이 반발했고, 2016년 6월 뉴욕주 의회가 관련 법안을 승인하면서 에어비앤비는 호스트들로 하여금 숙박세를 납부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생산자의 책임에 해당하는 것은 소비자와 소비자의 물품을 안전하게 보호해야 하는 숙소관리자(innkeeper)의 의무입니다. 실제로 에어비앤비를 통해 유통된 상품들에서 종종 사회적 관습과 맞지 않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음에도 에어비앤비가 이를 적극적으로 통제할 방법은 마땅치 않아 보입니다.
사실 수천 년에 이르는 호텔 산업의 역사는 이 부분에 대해 비교적 일관된 흐름을 유지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브랜드의 탄생으로 급격한 호텔 산업의 성장으로 이어졌었습니다. 지금까지 호텔 상품의 유통은 브랜드들과 온라인여행사(online travel agent 또는 OTA)들이 양분해왔습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상품의 속성과 생산자의 책임에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로 인해 복잡한 호텔 상품의 유통 체계에 대한 투명성이 취약해졌고 상품들이 천편일률화 된 문제가 야기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지난 10년간 에어비앤비를 통해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지를 학습해왔고 블록체인(blockchain)의 보급은 그 학습의 결과를 빠르게 현실화시켜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특히 자산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권을 갖고 있는 브랜드들이 호텔의 유통을 둘러싼 전쟁에서 최후의 승자로 남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물론 에어비앤비의 창업자들이 이처럼 급격한 성장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고 이러한 다양한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설건드려진 호텔 유통 시장의 전통적 강호들은 이제 더욱 막강한 화력으로 무장하는 중에 있으며 대단한 속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즉 에어비앤비 입장에서는 원래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단순히 생존을 위해서라도 이들보다 빠르게 움직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에어비앤비가 취할 수 있는 경로는 크게 2가지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나는 호텔 유통망으로서의 속성을 버리고 단기 부동산 임대 플랫폼으로 확장해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유통되는 상품들이 호텔 상품의 요소들를 온전히 구비하도록 통제하며 일종의 브랜드나 OTA로 성장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선택을 하건 해당 영역에서는 후발주자가 될 것입니다. 즉 단기간에 끌어모은 관심을 빠르게 전통의 시장에 안착시키기 위한 인프라를 얼마나 빠르게 구축해낼 수 있을 것인지가 생존의 관건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에어비앤비의 최근 동향을 보면 공식적인 호텔 유통 플랫폼의 방향을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기존의 OTA를 인수합병하여 인프라의 구축에 소요되는 기간을 최대한 단축시키는 것이 에어비앤비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