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만큼 했다는 말

사소한 온도

by 윤슬


큰어머니는 오랜 세월 치매를 앓다 돌아가셨다.

자식이 여럿이었지만 자리를 살피고 끝까지 곁을 지켜주었던 건 그 집안의 고명딸이었다.

모두들 호상이라며 슬퍼하는 이 하나 없던 장례식장에서도 오직 그 딸만 눈이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

큰 어머니의 첫 번째 제삿날, 집안의 어른들까지 모두 모여 과거를 회상하고 큰어머니를 추모했다.


그때 고명딸의 목소리가 커졌다.

“난 사실 엄마 살아계실 때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해. 돌아가시고 나서 해마다 있는 제사에 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투병기간 동안 발길이 뜸했던 자신의 오빠들을 향해 날리는 저격이었으리라.

아니나 다를까 고명딸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어떤 의미인지 모두 이해하고 있었지만 누군가는 고개를 숙였고 누군가는 헛기침을 해댔다.

그 말이 이해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 자리에 놓이기엔 조금 이르지 않을까 생각했다.


특히 그 자리에서 그 말이 가장 귀에 거슬린 건 큰 어머니의 시동생과 동서 그리고 시누이들이었다.

평소엔 효녀라며 칭찬을 마지않았던 어른들조차 그 말은 참으로 맹랑하고 오만한 이야기로 들렸기 때문이다.

잠깐 공기가 멎고, 큰 어머니의 시누이가 괜히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래 네가 고생은 많았다”

“그럼 치매 노인 모시는 일이 쉬운 일인가”

순식간에 불편해진 공기에 저마다 한 마디씩 거들었다.

“그 정도 했으면 할 만큼 했어”

말은 이어졌지만 누구도 서로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않은 채였다.


효도는 누가 더 했는지를 말하는 순간, 이미 누군가의 시간을 함부로 재단하는 일이 된다.

그 말들이 왜 불편했는지에 대해, 나는 아직도 생각하고 있다.

물론 치매 어머니의 간병에 고명딸은 마음을 다했을 것이다. 그리고 긴 병에 지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부모에 대한 효가 완성이 있을까.

그날 고명딸의 말은 틀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다만 모든 말이, 나와 같은 방식으로 꺼내져야 하는 건 아니다.

부모에 대한 효는 언제나 미완이라서, 누군가는 끝까지 하고도 말하지 않고, 누군가는 말하는 순간 이미 넘쳐 버리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