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취의 순간에도 배려가 담기길

사소한 온도

by 윤슬


동계 올림픽 기간 중이다.

모든 순간 긴장의 연속이었던 경기가 끝나고 시상대의 맨 윗자리에 올라 설 선수를 호명할 차례가 왔다.

상기된 선수의 얼굴과 환호하는 관중들의 얼굴이 번갈아가며 화면에 잡힌다.

흥분된 아나운서는 현장의 분위기를 전하고 선수의 이력을 풀어내며 선수가 메달을 거머쥐기에 충분한 사람임을 거듭 강조한다.

드디어 선수는 포디움에 올라서서 팔짝팔짝 뛰고 발을 구르며 허공에 대고 팔을 과장되게 휘둘러댄다.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를, 두 번 다시 못 올지도 모를 순간을 만끽한다.

2등과 3등의 선수들이 그에게 박수를 보내지만 선수는 고개를 돌려 기쁨을 함께 나눌 여유는 없어 보인다. 그 시간은 오로지 자신에게만 허락된 시간인 듯 보였다.


물론 금메달을 딴 선수의 입장에서 보면,

성취의 그 순간만큼은 자유롭고 싶었을 것이다.

수년간 반복된 훈련과 꽉 짜여진 일상, 단 한 번의 실수도 허용되지 않는 압박과 시선에서 메달을 목에 거는 순간만이라도 해방되고 싶었을 것이다. 본인이 세계 최고의 선수임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게.


이 부분에서 잠시 내가 꼰대인가도 싶었다.

하지만 역시 개인적인 아쉬움은 남는다.

어찌 보면 우리가 보기에 과한 세르머니는 수만 시간 공들였을 자신의 커리어에 대한 자부심이고 누구의 터치도 받고 싶지 않은 고유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함께 울고,웃고,고생한 동료에 대한 배려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여전히 든다.

어떤 사람은 메달을 얻고, 어떤 사람은 얻지 못했을 뿐 그 시간을 통과한 무게는 같지 않았을까.


성취의 순간에 드러나는 태도는 단순히 기쁨의 표현을 넘어, 선수가 그 시간을 함께 견딘 사람들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느냐 또한 알 수 있게 된다.

누군가는 울고 , 누군가는 고개를 숙이고, 누군가는 표정 없이 그 자리를 떠났을 것이다.

올림픽은 그런 곳이다.

그들이 지나 온 시간들이 같은 무게로 그 자리에 있었지만, 한 사람의 감정이 그 공간을 모두 채워 버리는 장면은 선수를 향한 마음이 조금 머뭇거려진 것도 사실이다.


성취는 분명 개인의 것이지만,

그 성취가 놓인 자리는 언제나 공동의 시간 위에 있다.

그래서 어떤 순간에는 기쁨의 크기보다 그 기쁨을 담는 태도가 더 강렬하게 인식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