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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워플레이스 Mar 06. 2023

좋은 파도를 찾아 헤엄치는 Surfer처럼

좋은 장소를 찾아 헤매는 Space Surfer

좋은 장소를 찾아 헤매는 Space Surfer


콘텐츠를 만들다 보면 촬영 배경이 기획과 상상력만큼 따라주지 않아서 아쉬울 때가 있다. 손때 묻은 냉장고와 모서리가 헤진 나무 식탁이 있는 평범한 집을 상상하며 기획했는데 정말 흔한 집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드는 장소를 구하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 같을 때 말이다.

왜 사람들은 트렌디하게 잘 꾸며진 공간만 콘텐츠의 배경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할까? 콘텐츠 크리에이터에게 진짜 필요한 공간은 그 무엇보다도 우리의 일상이 담긴 평범한 공간이다. 세월의 흔적이 담긴 공간을 찾아 콘텐츠의 배경으로 공유하는 호스트가 있다.

크리에이터의 답답한 마음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스페이스서퍼.



이토록 강렬한 장소, 이토록 강렬한 호스트


“제가 좀 어려요.”

스페이스서퍼의 이건희 호스트는 인터뷰를 위해 자리에 앉자마자 대뜸 ‘자랑’(?)을 했다. 몇 살일 것 같냐는 당황스러운 질문에 예의상 ‘28살 정도 되어 보인다’고 답했다. 50개가 넘는 장소를 운영하는 호스트라면 어느 정도 나이가 있을 테지만,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해 주기 위해 생각보다 5살 정도는 낮춰서 대답한 것이었다.

“올해 25살 입니다.”

정답을 듣고 정신이 아찔해졌다. 공부는 기 싸움이라서 기가 죽으면 공부가 안된다는 영화 기생충의 명대사처럼 인터뷰도 기 싸움인데 인터뷰 시작부터 기가 죽어버렸다. 기세를 잡은 이건희 호스트는 막힘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갔다.



세계 여행을 하려다 게스트 하우스 사장이 된 건에 대하여


20살을 앞둔 이건희 호스트의 꿈은 세계 여행을 하는 것이었다. 세계 여행을 가기에 앞서 맛보기로 혼자 국토 순례를 떠난 이건희 호스트는 전라남도 부여에서 운명적으로 ‘게스트 하우스’에 묵게 된다.

“제 인생 첫 게스트 하우스였어요. 원래 묵으려고 했던 찜질방이 문을 닫아 급하게 찾게 된 숙소였는데 사실 민박보다 못한 허름한 곳이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그게 너무 인상 깊어서 언젠가는 나도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해 보겠다고 생각했죠.”

그 ‘언젠가’는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왔다. 세계 여행 자금을 모으던 중 개인적인 사정으로 가장으로서 경제 활동을 해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때 국토 순례 중 묵었던 게스트 하우스가 떠올랐다. 수중에 있던 돈 500만 원으로 무작정 홍대에서 게스트 하우스를 시작했는데, 그에게 숨겨진 재능이 있었던 건지 단기간에 게스트 하우스를 38개까지 운영하게 되었다.



오늘부터 공간 호스트입니다


탄탄대로를 달리던 게스트 하우스 운영은 코로나19로 인해 돌연 중단되었다.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 여행을 못 오게 되니 숙박 예약이 곤두박질쳤다. 정성 들여 만든 게스트 하우스를 하나 둘 씩 처분하고 있을 때 TV프로그램에서 게스트 하우스를 촬영 장소로 대관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당시 이틀을 촬영하고 300만 원을 받았다. 촬영 한 건을 진행했는데 월세를 지불하고도 이익이 남는 금액이었다. 그 후로 숙박이 아닌 ‘촬영’을 목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공간을 본격적으로 찾으러 다니기 시작했다.



모두가 안된다는 것에 도전하는 개척자


게스트 하우스 운영을 정리하고 촬영 전문으로 만든 첫 공간이 바로 미개척지(未開拓地) 스튜디오다. 낡고 오래된 주택을 빌려 내부를 직접 꾸몄는데, 처음에는 주변에서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고민 중에 좋아하는 노래를 듣던 중 답을 얻었어요. ‘누가 뭐라 해도 사람들의 틀을 부수고 나의 길을 갈 거야’라는 노래 가사가 있었거든요. 모두가 안 된다고 하는 곳을 개척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첫 스튜디오 이름을 미개척지(未開拓地)로 정했어요”
(이건희 호스트에게 영감을 준 노래 밴드 One Ok Rock의 ‘완전감각 Dreamer’ 들어보기)

미개척지는 촬영이 없는 날에도 항상 열려있다. 예약이 없는 날에는 호스트의 친구들이 자유롭게 와서 놀고 가기도 하고, 동네 고양이들이 추위를 피해 쉬어 가기도 한다. 호스트는 가끔 비가 오는 날이면 1층에 난로에 장작을 때며 낭만을 즐기기도 한다.

겉보기에는 허름하지만 용기 내 들어와 보면 예상치 못한 낭만이 가득한 공간. 문제 앞에서 낙심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이건희 호스트를 그대로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 안소희의 VISUAL FILM 'ID:SNAKE'



재미로 만든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지는 재밌는 콘텐츠


이건희 호스트가 운영하는 50여 개의 공간 중 대다수는 사업을 위해 만든 스튜디오이지만 미개척지는 그중에서도 호스트가 직접 재미를 위해 즐기면서 만든 특별한 스튜디오다.

“제가 생각하는 멋있는 스타일대로 만들었어요. 오래되고 낡은 물건들, 구멍 난 것들이 많지만 저는 이 색깔이 뿌듯해요.”

그는 완벽하게 셋팅된 인위적인 공간보다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공간이 더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생각나는 대로 가구의 배치를 바꾸고, 마음껏 페인트를 칠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이 그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다. 미개척지에는 그런 호스트의 취향과 즐거움이 담겨있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유일무이한 컨셉의 장소라서 그런지 안소희의 비주얼 필름 'ID:SNAKE', 이효리의 '서울체크인', 이무진의 앨범 프리뷰 영상 등 강렬한 컨셉의 콘텐츠 촬영이 주로 진행되었다.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공간은 우리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기도 한다. 잡초가 무성한 폐가, 발 디딜 틈 없이 지저분한 자취방, 노인의 손때 묻은 주택까지. 콘텐츠 크리에이터의 이야기를 완성시킬 배경을 찾기 위해 스페이스서퍼는 오늘도 좋은 장소를 찾아 헤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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