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쇼펜하우어의 ‘고슴도치 딜레마’가 있습니다.
숲 속을 산책하다 우연히 고슴도치를 만난 쇼펜하우어는
그들의 모습을 찬찬히 관찰합니다.
한겨울이 되자 고슴도치들은 서로의 체온으로
추위를 견디기 위해 가까이 다가갑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서로의 가시에 찔려 상처를 입고 놀라 물러나기를 반복합니다.
그렇게 다가가고 상처 입고 물러나고 또 다가가면서
그들은 뭔가를 배우고 있었습니다.
바로 서로의 체온을 느끼면서도 상처를 주지 않는
‘적당한 거리’였습니다.
고슴도치들은 그렇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추운 겨울을 견디고 있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고슴도치들을 보면서
인간관계도 그들과 같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가까운 관계에서 한껏 기대했다가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때로는 그 상처가 너무 깊어서 인간에 대한 믿음과 사랑까지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상처를 치유받지 못한 사람들은 선인장과 닮았습니다.
자신이 받은 상처를 가시처럼 몸에 박아 다시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선인장.
하지만 선인장은 그 가시가 주는 안전거리를 확보하면서 다시 누군가를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공존할 수 있습니다. 서로의 체온을 나눌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배우면서 말입니다.
아무도 꽃을 보지 않는다.
정말로 너무 작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시간이 없다.
그런데 친구를 사귀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무언가를 제대로 보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 조지아 오키프 Georgia O’Keeffe
조지아 오키프의 말처럼 그 누군가를 마음을 다해 제대로 보는 일은 긴긴 시간이 걸립니다.
공존의 거리를 배우기까지 상처투성이가 될지라도 서로에게 다가가는 시도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서로의 체온은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그 온기로 어느 날 가시투성이의 몸에서도
어여쁘고 작은 꽃이 피어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