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시골에 살게 되면서 자연스레 도시를 대표하던 향수와 멀어지게 되었다. 집안 곳곳의 방향제, 룸스프레이와 더불어.
새소리에 눈을 뜨고, 땀을 흘리며 귤을 따고, 허리를 굽혀 잡초를 뽑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걷는 일상이 이어지자 인공적인 향은 그저 낯설고 어울리지 않게 느껴졌다. 대신, 어느 순간부터 풀 내음, 흙 냄새, 계절마다 다른 꽃향기, 나무 타는 냄새 같은 자연의 향이 조금씩 내 일상 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도자기 공방에서 선생님이 도자기 워머 위에 로즈마리 생잎을 올려 태우는 장면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촛불의 열기로 피어나는 로즈마리 향이 공방 전체에 은은하게 퍼졌다. 워머를 이렇게 사용할 수도 있다는 걸 발견한 우리 수강생들은 모두 똑같이 로즈마리를 위한 워머를 만들었다.
그때 만들었던 투박한 내 로즈마리 워머는 우리 집을 거쳐 책방에서 로즈마리 향을 태우기 시작했다.
책방에 들어서자마자 손님들은 하나같이 물었다.
"우와, 이 향 뭐예요?"
"들어오자마자 기분이 좋아져요."
로즈마리 향을 손님들이 좋아할거라 예상했지만, 이 정도로 반응이 뜨거울 줄은 몰랐다. 심지어 책방에 대한 리뷰에 항상 등장하는 게 '로즈마리향이 은은하게 배어있는 공간'이었다. 그저 내가 좋아해 시작한 평범한 허브향이 이 공간을 찾은 이들에게도 책방을 기억하는 특별한 향이 되어가고 있었다.
책방의 향을 좋아하는 손님들이 많아지면서, "집에서도 이 향을 맡고 싶다"며 워머를 구입하고 싶다는 요구가 늘어갔다. 심지어 내가 만든 정말 못생긴 로즈마리 워머라도 사게 해달라고 했다. 그렇게 로즈마리 워머 제작을 구상하게 되었다.
처음엔 아빠 찬스를 이용해 강진의 청자 장인께 부탁했고, 워머 100개를 만들어 육지에서 제주로 가져왔다. 깨질까 봐 얼마나 조마조마했던지. 이 워머 반응이 꽤 좋아서 순식간에 팔렸다. 이후 옆동네 공방 언니 찬스를 이용해 내가 직접 손으로 만들어보기도 했다. 조금 더 투박하고 다양한 유약을 써서. 하지만 내가 도자기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예쁘게 나오지 않았다.
마침 공방 언니가 육지의 도예가 선생님을 소개시켜줬다. 선생님께 부탁해 책방을 위한 워머 제작을 시작했다. 재료는 따뜻한 느낌의 도자기로, 책방의 공간과 잘 어울릴 수 있도록 단순하고 담백한 형태로 만들기로 했다. 유약은 바르지 않고 초벌로만 구워, 로즈마리 향이 더 잘 배어나올 수 있도록.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워머를 완성했다. 이후 해마다 책방을 대표하는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버전의 워머가 완성되었다.
그렇게 책방의 향기는 책방의 시그니처 상품이 되어갔다.
손님들은 로즈마리 잎을 하나씩 조심스레 태우고 향이 퍼지기 시작하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차분해진다고 말해주었다. 공간을 가득 채우는 그 향기 속에서, 마음이 쉬어가는 시간을 경험했다고.
'아, 공간에 대한 기억 속에서 향이 주는 역할이 엄청 큰 거였구나.'
사람들은 시각적인 것보다 향을 더 오래 기억한다는 걸, 나는 책방을 통해 배웠다. 그 향은 제주의 귤밭에 있던 작은 책방, 어느 계절의 공기, 어느 손님의 따뜻한 말 한마디와 함께 나에게 또 하나의 배움을 주었다.
책방을 다녀간 손님들에게 로즈마리 향이 가득했던 그 공간으로 기억될 수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