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것을 다시 보다

by 하우스노마드 키라

키라네 책부엌은 옛날 제주 돌집을 개조한 책방이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이 건물은 5-60년은 족히 넘었을 것이다. 이 공간을 채우고 있는 책장, 선반, 테이블은 이 오래된 건물에 맞게 고재 느낌이 나도록 직접 만들었다.


간혹 손님들이 묻는다. 이 문짝은 어디서 떼어서 온 거냐고. 참 잘 뜯어오셨다고. 그러면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직접 만든 거라고. 새 나무를 까맣게 태워서 수세미로 숯을 닦아내고 말리고, 페인트를 칠해서 또 닦아내고 말려서 직접 하나하나 만든 거라고.


책방 거실의 전등은 옛날 창문의 창살을 그대로 살려 만들었다. 그리고 창호지를 뜯어낸 방문은 파티션처럼 공간분리의 제 역할을 하고 있다. 본래 자신의 자리에서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어떤 손님은 책방 방문후기에 '개취(개인의 취향)가 가득한 곳'이라고 적어놓기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아주 오래된 물건이나 빈티지를 아주 좋아했던 사람인 줄 안다. 나는 절대 남이 쓰던 물건, 중고를 써본 적이 없다. '헌책방', '당근마켓'과 같은 단어는 내 삶에 절대 존재하지 않았다. 항상 반짝반짝한 새 신발, 새 옷, 새 가방, 새 물건만 사용했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뒤 내 삶에 대한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차 없으면 죽을 줄 알았는데,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해 회사에 다니기 시작했고, 하이힐 대신 운동화를 사 신고, 명품가방 대신 백팩을 가지고 다녔다. 순례길에서 돌아온 뒤 나는 뜬금없이 제주로 이주했다. 서울에서의 삶과는 전혀 다른, 물질적 풍요로움과는 거리가 먼 이곳에 불시착하게 된 나는 전혀 다른 시선을 가진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마치 스크루지가 꿈속에서 깨어나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 처럼. 남들은 절대 살지 않을 것 같은 초가집에 살고 싶다거나, 옆집 삼춘이 버린다고 내놓은 촌스러운 옛날 밥그릇에 흥분하면서. "아니, 이 예쁜 것들을 대체 왜 버려요! 나 줘요, 나!"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이제는 구할 수도 없는 오래된 물건들에 담긴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심지어 책방 옆에 세워진 빛바랜 경운기조차도 내게는 '시간의 흔적'으로 읽히기 시작했다. 앞으로 어떻게 늙을 것인가, 어떻게 나이 들고 싶은가...... 오래된 집과 물건들을 통해 나의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고, 오래된 시간에 대한 의미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것보다는 오래된 것들에 더 눈길이 가게 됐다. 삼춘들에게는 너무 익숙해서 당신들의 눈에는 보잘것 없어 보이는 그것들이 얼마나 예쁜지 난 목소리 높여 호들갑을 떨기까지 했다.


공천포 해녀삼춘네 귤 따러 갔을 때 삼춘이 만든 작은 테왁이 너무 예뻐서 소란을 피우며 감탄했다. 해녀삼춘은 뭐가 예쁘냐면서, 너 가져가라! 하셨다. 나는 얼른 가방에 테왁을 담았다. 테왁 안엔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삼춘과 함께 물질하던 형님해녀가 이 테왁을 만드셨는데, 후에 바다에서 물질하다 돌아가셨다. 테왁 안에 해녀삼춘의 그리움과 추억도 함께 담겨 있었다.


아침에 책방에 출근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일력 한 장을 톡 뜯는 일이다. 일력 옆에는 작은 요리용 저울이 있다. 무심코 뜯은 일력 한 장을 그 저울 위에 올려놓았다. 그다음부터 자연스레 저울 위에 일력이 한 장씩 쌓이기 시작했다. 어느 날, 책방 손님이 그걸 보고는 "이건 '시간의 무게'네요" 하고 말했다. 정말 그랬다. 1년 치 시간의 무게는 250g.


제주에 살면서 주변 어르신들의 주름에서 그들의 시간의 흔적과 무게를 읽고, 오래된 물건들을 들여다보며 그 물건에 담긴 이야기를 보게 되었다. 더불어 어떤 이의 눈에는 무한히 반복되는 지루하고도 평범한 일상처럼 보이겠지만, 그 일상을 꾸준히 지켜내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도 배우게 되었다.


어쩌면 오래된 것들은 처음부터 아름다웠던 게 아니라, 반복된 일상의 시간이 그것들을 아름답게 만든 건 아니었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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