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살 때, 나는 내가 사는 공간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다. 아니, 무지했다고 하는게 맞겠다. 제주에 와서 오래된 초가집, 돌집에 살게 되면서 공간에 대한 관심이 하나둘 생겨났다.
서울에서 집이란 그저 잠만 자고 나오는 영혼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제주에 살면서 집이란 몸과 마음이 함께 머무는 곳이란 걸 차츰 알아가게 되었다. 공간에 얼마나 애정을 갖고 돌보느냐에 따라 그 공간은 확연히 달라진다는 것과 공간은 그 공간의 주인을 닮아간다는 것까지.
그러한 공간에 대한 애정은 책방으로도 이어졌다. 책방을 사전예약으로 운영하는 이유 중 하나가 공간에 대한 나의 과한 애정 때문이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이 공간에 아무나 들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이 책방을 만들 때 항상 마음에 새겼던 건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마음 편히 머물다 갔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책을 좋아하고 정말 책방을 오고 싶어 하는 분들, 온전히 자신의 시간을 누리고 싶어하는 분들이 대부분 오셨다. 책방 사전 예약 손님들의 만족도가 꽤 높은 편이라 난 모든 손님이 책방에 머무는 것을 좋아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혼자 책방에 오신 여자 손님이 내게 물었다. "사장님, 이 책방에 오는 손님들은 대체 이곳에서 무엇을 하나요?"
순간 당황했다.
나는 책방 손님들은 가져온 책을 읽기도, 책방에 있는 책을 읽기도 하신다고 대답했다. 글을 쓰시는 손님들도 계시고, 사색에 잠기는 손님도 있다고 알려드렸다. 손님이 가시고, 손님이 남긴 방명록을 읽게 되었다.
껍데기보다 내용물이 더 중요하다더니, 흔해 빠진 아트박스 노트(방명록)가 이렇게 '갬성' 넘칠 일인가요? 저는 사실 멋모르고 리뷰따라 왔어요. 요리의 '요' 자도 모르는, 제 손으로 밥 한번 지어본 적 없는 인간인데도 말이죠. 솔직히 아직은 이 공간이 어색하고 민망해요. 책이라도 하나 사가야 하나 싶기도 한데 정작 먹는 것에 관심 가져본 적이 없어서 고민이 됩니다. 마음이 편하지 않는 이유는 제 마음의 문제겠죠. 한 시간 뒤에는 잘했다고 스스로 뿌듯해하며 가게를 나섰으면 좋겠어요. 사실 이 모든 건 행복해지기 위한 우리 모두의 발버둥일 테니까. 여기까지 온 걸 한 번씩 스스로 칭찬해주자구요^^
혼자 머무는 게 익숙하지 않은 이에게는 불편할 수 있음을 처음 알았다. 난 항상 혼자 노는 게 익숙해서 이런 부분을 전혀 몰랐다. 나 같은 사람은 사람이 많은 곳을 싫어하고, 여러 사람과 뭔가를 함께 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니까.
아무튼 나는 그날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애정하고 아낀다고 해서 모든 이들이 좋아할 수는 없단 사실을. 책방 손님이 남겨주신 방명록과 던진 질문 덕분에 나 역시도 이 공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손님께 정말 고마웠다. 사실 쉽지 않았을 거다. 대체 이 책방에 오는 손님들은 무엇을 하냐고 묻는다는 게.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 시간을 견디는 게. 그 손님이 책방을 나서서 스스로에게 칭찬했으면, 감히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