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프 생활엔 좋은 점도 많았지만, 예상치 못한 일도 발생했다.
출발 전, 나는 내가 머물 집에 꼬마 아이들이 4명이나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을 가르쳤던 경험도 있었던 터라, 아이들 4명쯤이야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너무 몰랐던 거였다.
3살, 5살, 6살, 8살.
네 명의 아이들은 식사 시간마다 전쟁이었다. 서로 이 자리에 앉겠다, 내가 이걸 먹을 거다 하며 싸우는 게 일상이었다.
나는 일본어를 잘하지도 못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종종 생겼다.
"다메!" (안 돼!) 이 한마디 조차 마음 편히 할수도 없었다. 왜? 내 자식이 아니니까.
아이들은 계속 떠들었고, 계속 움직였고, 계속 싸웠다. 나는 그저 옆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난 시끄러운 것, 다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심지어 영화나 드라마에서 싸우고 때리고 하는 장면을 보면 고개를 돌려버리는 그런 사람이다.
조용히 밥을 먹고, 조용히 일하고, 조용히 쉬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이 집에서는 그게 불가능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 안은 늘 소란스러웠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울음소리, 싸우는 소리.
그게 나에게는 부담스러웠다.
이때 나는 알았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걸 힘들어하는 사람이라는 걸.
이 또한 경험이겠지?
두 번째 우핑을 하는 비에이 집에는 아이들이 없었다. 대신 80살이 넘은 할머니와 가족들이 있었다.
오히려 할머니는 나와 너무 잘 맞았다.
할머니의 유쾌함도 좋았고, 말이 통하지 않아도 할머니가 뭘 원하는 지 바로 알 수 있었다. 할머니와 함께 정원에서 잡초를 뽑고, 함께 점심을 먹고, 함께 웃었다. 무엇보다, 내가 할머니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좋았다.
도요우라에서는 내가 아이들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다. 오히려 내 자신이 버거웠다. 하지만 비에이에서는 달랐다. 할머니는 내 존재를 필요로 했고, 나는 기꺼이 그녀와 함께했다. 그 차이가 컸다.
아이들 때문에 첫 번째 우프에서 심리적으로 힘들었다.
하지만 이 경험을 통해 나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어떤 환경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어떤 상황에서 에너지가 소진되는지.
어쩌면 우프는 다른 나라의 문화를 알아가는 동시에, 나를 알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프를 떠나기 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미리 안다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모른다 해도 괜찮다.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며 나를 알아가는 것도 우프의 묘미니까. 다만, 정적인 환경에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라면 아이 없는 집을, 아이들의 활기 뿐 아니라 여러 사람을 통해 동력을 얻는 사람이라면 사람이 많은 집을 선택하면 된다.
사실 정답은 없다.
다만,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
그게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