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귤 부자

첫번째 시리즈를 마치며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우리집 건너편에서 동네 남자 삼춘이 나를 부르시는 거다. 동네를 오가며 몇번 만난적이 있던 삼춘이었다.(제주에서 나이든 어르신을 삼춘이라 부른다)


"저기, 잠깐만!"


우리 집 앞에 세워진 하우스메이트의 트럭에는 욕실수리전문이라고 적혀있다. 삼춘은 그걸 보고 전화를 했는데 안 받는다며, 자신의 집 변기 수리가 가능한지 확인해달라는 거였다. 나는 곧장 하우스메이트에게 전달했다. 하우스메이트는 잠시 후 바로 가보겠다고 했고, 나도 함께 따라나섰다.


삼춘 댁은 우리집에서 걸어서 1분 거리였다. 그런데 신기한 게, 내가 맨날 지나다니는 길이었는데 그 길 옆에 골목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이곳에 산 지 3년이 다 되어가는데 그 작은 골목과 그 옆에 집이 있다는 것 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살았다. 사람은 역시 자신이 관심 있는 것만 보나보다.


삼춘 댁에 도착해서 하우스메이트는 변기를 들여다봤다. 변기 커버 나사가 망가졌다고 했다. 집에 가서 부속이 있는지 확인하고 다시 오겠다며 하우스메이트는 집으로 향했다. 기다리는 동안 나는 삼춘과 이야기를 나눴다.


"삼춘! 귤농사 많이 지어요?"

"응, 많이 짓지."

"그런데 삼춘 정말 꼬부랑 할아버지 되어서 농사 못지으면 그 많은 농사는 다 누가 지어요?"

"자식들이 짓거나 안짓는다고 하면 농지은행에 맡겨서 임대줘야지."


난 늘 그게 궁금했다. 과연 자식들이 농사를 지을까? 이 삼춘들이 돌아가시고 나면 제주의 귤농사는 누가 지을까?


잠시후 하우스메이트는 다행히 집에 새 변기 커버가 있었다며 그걸로 교체해드렸다.

삼춘은 지갑을 열더니 "얼마 주면 될까?"

하며 돈을 주시려는 거다.


하우스메이트는 됐다고, 괜찮다고 했다. 집에 다행히 새 자재가 있어서 해드린 것뿐이라며 돈 받는 걸 거절했다. 그러자 삼춘은 잠시 기다리라더니 귤창고 안으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얼마 전 직접 수확한 천혜향을 종이 가방에 가득 담아 오시는 거다.


"우리 집에 귤 정말 많아요. 괜찮아요."

그렇게 내가 말했는데도 삼춘은 가져가라고 하신다. 요즘 천혜향 따는 계절이라고, 이거 정말 맛있다고. 그렇게 우리는 또 귤을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솔직히 집에는 지난번에 받은 천혜향, 한라봉이 여전히 있었다. '저 귤은 또 어쩐담?' 싶었다. 하지만 삼춘의 마음이니까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또 귤부자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제주에서의 겨울은 늘 이런 식이었다. 누군가 주는 무를 받아서 이웃에게 나눠주고, 누군가의 변기를 고쳐드리면 천혜향을 받고, 주고, 다시 받는 순환. 여전히 나는 먹는 즐거움을 넘어 받고 나누는 즐거움으로 살아가고 있다. 거기에 감사한 마음 또한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Sunday Apple>은 이렇게 25번째 이야기로 첫 번째 시리즈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매주 일요일, 음식을 통해 발견한 일상 속 반짝이는 순간들을 함께 나누고자 시작한 이야기였습니다. 제주 시골에 살면서 변해가는 기후로 인해 터져버린 청귤, 드라마에서 마주한 식재료의 감사함, 추위를 담은 겨울 무의 단맛, 냄비밥 짓는 즐거움. 쉽게 지나칠 만한 소재들이었지만, 누군가에게 한 번쯤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얼마 전, 읽은 책 정혜윤 작가의 <삶의 발명>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전에 없던
새로운 정체성을 주는 것이야말로
이야기가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Sunday Apple>의 이야기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이었기를 바라며, 그리고 음식 이야기들을 쓰며 받았던 관심어린 댓글에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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