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 따는 사람의 하루

by 하우스노마드 키라

귤 따기 팀에 멤버로 들어가면 출퇴근이 확실한 직장인 모드가 된다. 근무지는 귤밭, 휴무일은 비오는 날, 파견기간은 대략 10월부터 2월까지. 이후 5월 정도부터 하우스귤을 따기 위한 팀이 새로 만들어진다.


새벽 5시, 하루의 시작

알람이 울린다. 일어나자마자 도시락을 싼다. '오늘은 뭘 싸가지?' 매일 고민이다. 귤밭 할머니들은 내게 "키라야, 반찬 싸올 게 마땅치 않으면 그냥 밥만 싸가지고 와. 우리 반찬 같이 나눠먹으면 되니까." 요리 실력도 없고, 나처럼 도시락 반찬에 서툰 사람을 위해 할머니들은 늘 따뜻한 말을 건넨다.


그렇게 도시락을 챙겨 오전 6시 위미우체국 앞으로 간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시각, 반장이모의 귤트럭을 기다린다. 함께 귤트럭을 기다리는 할머니가 내게 새벽하늘의 달을 가리키며 말을 건넨다.


"키라야, 저 달을 제주에서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 새벽 하늘에 손톱만큼 가느다란 초승달을 가리키며 물으신다. "저건 며느리달이야. 부지런한 며느리만 볼 수 있는 달이거든." 늦잠자고 늦게 일어나면 볼 수 없는 새벽 아침 겨울에 뜨는 저 달. 그때 이후로 저 달을 볼때마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함께 귤밭으로 가던 할머니가 떠오른다.


귤밭으로 가는 길

마침 반장이모의 귤트럭이 도착했다. 비좁은 귤트럭 앞뒤 좌석에는 우리 귤따기 멤버들이 옹기종기 타고 있다. 누군가 어제 집에 제사가 있었는지 직접 만들어온 기름떡을 꺼내 나눠준다. 제사가 끝나고 차가워진 떡을 콩기름에 지진 후 떡 위에 설탕을 솔솔 뿌린 이건 제주에서 제사 후 자주 만들어 먹는 간식, '기름떡'이다. 이 떡을 나눠먹다 보면 어느새 귤밭에 도착한다.


귤밭에 도착하면 맥심모카골드 믹스 커피를 한 잔씩 마시고, 이제 본격적으로 귤을 따러 귤밭으로 들어간다. 귤가위와 귤바구니를 챙기고, 발판처럼 쓰는 노란색 컨테이너 상자 '팡'도 하나씩 들고 귤밭으로 들어간다.


오전 귤따기와 간식시간

귤따기는 2인 1조다. 귤나무 한 그루에 2명이 함께 딴다. 짝궁은 보통 자기랑 친한 사람. 열심히 귤을 따다 보면 8시 30분쯤 "나옵써!"(나오세요!) 라는 반가운 소리가 들린다. 아침 간식 시간이다. 보통 컵라면을 먹을때가 많은데 귤밭 주인에 따라 팥죽이나 호박죽, 잔치국수 같은 것을 귤밭 주인 할머니가 만들어주기도 한다. 오늘은 콩으로 만든 콩죽이다. 나도 처음 먹어본 신기한 제주음식이다.


9시쯤 다시 귤따기 시작, 착착착! 귤가위 소리와 더불어 할머니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주고받는다. 귤을 따며 듣다 보면, 이 동네 누구네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부터, 아들은 어디서 일하는지까지 모르는 게 없어진다.


점심시간과 오후 일과

오후 12시, 드디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점심시간이다. 할머니들은 오늘 무슨 반찬을 싸가지고 왔을까?

오후 1시 다시 귤따기 시작.


오후 2시 30분쯤, 오후 간식시간. 이때 또 도너츠 같은 빵을 주시는데 귤밭에 귤을 따러 온 게 아니라 먹으러 온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오후 5시 드디어 퇴근. 다시 반장이모의 귤트럭을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샤워를 하고 세탁기를 돌린다. 그리고 와인을 한 잔 따라서 집 앞 잔디밭에 앉는다. 오후 6시, 귤밭의 소란함이 사라지고, 잔디밭에 앉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세상의 모든 음악'을 듣는 이 시간. 하루 중 내가 가장 사랑하는 포기할수 없는 애정하는 시간이다.


오늘은 귤밭에서 너무 많이 먹어서 저녁을 거르는 게 좋겠다. 책도 읽고 일기를 쓰다 보면 잠이 스르르 온다. 그런데, 내일 반찬은 또 뭐 싸가지? 귤따는 하루가 그렇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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