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태풍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태풍이 오면 큰 나무가 쓰러지고 전봇대가 쓰러졌다. 강한 바람으로 인해 학교에 가지 못했다. TV에서는 태풍의 피해를 방송하느라 바빴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 태풍의 힘도 점차 약해지는 것 같았다. 어릴 때처럼 그렇게 강한 태풍이 오지 않았으니까. 그래서였는지 나 역시 태풍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져갔다.
하지만 제주에 살게 된 후, 다시 태풍의 두려움 속에 살게 되었다. 평소에도 제주에 바람이 많이 불기때문에 태풍이 온다고 하면 더 긴장하게 된다. 게다가 주변 제주 사람들이 대부분 농부들이다 보니 태풍이 온다는 예보가 나오면 다들 태풍 대비하느라 정신이 없다. 올해 태풍은 얼마나 클까? 이번에는 무사히 지나가려나?
태풍이 온다는 소식이 들리면 가정집들도 바빠지기 시작한다. 비가 많이 올지도 모르니 집 주변에 모래주머니로 둑을 쌓는다. 바람에 날아갈 만한 것들도 집안으로 다 들이고, 마당도 정리한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비상식량도 미리미리 준비해두곤 했다.
하지만 올해 2025년, 이상하게 태풍이 하나도 오지 않았다.
농부들은 좋아했다. 하우스가 무너지지 않고, 과일 열매들이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나는 뭔가 이상했다.
왜 태풍이 안 오지? 심지어 작은 태풍조차 오지 않았다. 특히 올여름은 비도 별로 내리지 않았다. 뭔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이상하네......
추석 전, 귤 택배 일을 도우러 갔다. 제주는 추석이면 귤 택배로 바빠진다. 제주 특산물이 귤이다 보니 추석 선물로 귤을 많이 선물한다. 그런데 올해는 달랐다. 귤이 안 팔린다는 거다.
올해 태풍이 오지 않아서 육지의 사과, 배, 포도가 풍작이라고 했다. 늘 태풍이 오면 열매가 떨어져 가격이 비쌌는데, 올해는 과일이 넘쳐났다. 그제야 알았다. 태풍은 가격도 조절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때 문득 떠올랐다. 아이들에게 과학을 가르쳤던 시절. 나는 아이들에게 태풍에 대해 설명할 때 반드시 태풍의 장단점을 모두 가르쳤다. 우리는 보통 태풍으로 인해 피해 보는 일들만 기억한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왜 태풍이 필요한지도 설명해줬다.
"태풍은 바닷물을 뒤집어 지구의 온도를 조절해."
태풍이 나쁜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지구에게 태풍은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꼭 상기시키곤 했다.
내가 종종 하는 말이 있다. 좋은 게 좋은 게 아닐 수도 있다고. 우리는 좋은 일이 생기면 그게 정말 좋은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좋아 보였던 일이 나중에 돌이켜보면 오히려 좋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 태풍도 그런 게 아닐까? 지금 당장은 좋아 보이지만 사실 지구에게는 오히려 좋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
태풍이 오지 않았던 올해가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이건 지구가 보내는 경고일지도 모른다. 균형이 깨지고 있다는. 태풍도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면 좋겠다. 불편함도, 두려움도, 모두 자연과 함께 사는 일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