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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영 May 03. 2022

타다 이용자의 반성문

누구를 위한 타다 금지법인가


위험천만한 택시 시승기
 조문을 다녀온 밤이었다. 동료들과 강남 한복판에서 택시를 탔는데 차 안은 담배 냄새로 찌든내가 나고, 기사님은 손님이 타자마자 이 도로의 주인인양 무법자처럼 도로를 휘젓고 다녔다. 조수석에 앉아있던 나는 몸이 좌우로 쏠렸다. 깜빡이도 없이 이리저리 아찔하게 차와 차 사이를 피해 가는 순간이 이어졌다. 오래간만에 느끼는 불쾌함이었다.
 
 10년 전 택시는 내게 '내돈내불' 이었다. 내 돈을 지불하며 불쾌함을 느껴야 하는 서비스라는 의미다.   승차 거부하고, 바가지를 씌우고, 내비게이션을 볼 줄 모르거나, 험악하게 운전을 했고, 어린 여자 승객에게 대화가 아닌 훈수를 두던 게 내가 기억하는 택시의 디폴트 값이었다. 실제로 모바일 어플로 택시를 잡는 세상이 오기 전까진 택시를 잘 이용하지 못했다. 그런데 2022년에도 이런 택시가 경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이유는 아래에서 회상할 어느 사건과 연관 지을 수 있다.  

    

기본을 지켜 혁신이 된 타다
 타다의 운영방식은 타다를 운영하는 'VCNC'가 모(母) 회사 '쏘카'로부터 렌터카를 빌려 운전기사와 함께 빌려주는 형식이었다.  대부분 택시 기사의 불친절함은 사납금을 내야 하는 택시 수입 구조에서 파생되는 것이었는데,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타다'는 기사의 수입을 고정해 지급했고, 콜을 받기 전까지는 목적지를 보여주지 않았다.


중국집으로 비교하면, 비위생적이며 반찬도 재사용하면서 불친절한 식당이 있다. 그리고 그 옆에 1~2천 원만 더 주면 쾌적하고, 접객을 잘하는, 위생적인 식당이 있다. 타다는 후자였다. 11인승 카니발의 쾌적함, 목적지를 가려 받지 않고 안전하게 운전하는 기사, 말 걸지 않고 조용한 내부, 와이파이 등은 가히 혁명적이었다. 소비자들은 지갑을 열며 이 서비스가 얼마나 필요했는지 응답했다. 론칭 1년여 만에 이용자가 100만 명을 넘었다. 타다는‘기본’을 지켜서 혁신이 된 것이다.



 타다는 혁신이었나 불법이었나
그러나, 2020년 3월 6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른바 타다 금지법이 통과했다. 정식 명칭은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이다. 쏘카 자회사 VCNC가 타다 서비스를 시작하고 1년 만에 발의된 법안이었다. 이후 4일 뒤 검찰은 타다의 임원진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후 서울중앙지방법원이 타다 1심에서 무죄를 판결했다. 그러자마자 일주일 만에 국회 본회의에서 타다 금지법이 통과했다. 그리고 1년 뒤. 2021년 4월부터 타다 금지법이 정식으로 시행되었다.
 

(출처=머니투데이)


이 사업은 운전자를 알선할 수 있는 예외 조항(여객자동차법 시행령 18조 1항)을 활용하여 국토부의 검토를 받고 사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택시업계에서 이를 반발하며 '불법 렌터카·대리기사 호출서비스'라고 호도했다. 이를 조사하던 서울중앙지방법원도 타다 서비스에 대해 합법(불법적인 유상 여객운송에 해당되지 않음)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그런데 그 뒤 국회에서 타다 금지법이 통과했다. 하루아침에 불법이 되어 사업을 멈춰야 하는 것은 지극히 비정상적인 일이다. 누구를 위한 금지인가? 이 법을 발의한 의원의 지역구는 서울에서 법인택시업체가 2번째로 많은 곳이라는 사실에서 우리는 유추할 수 있다.  


이 법과 함께 사회적으로 논쟁이 되는 지점은 과연 이 기업이 ‘혁신’이냐는 물음이다. 그렇다면 사회가 규정하는 혁신은 무엇인가?  사전에서 긁어온 그 의미를 인용한다.


‘잘못된 것, 부패한 것, 만족스럽지 못한 것 등을 혁신하거나 고치는 것을 말한다. 즉, 묵은 관습, 조직, 방법 등을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방법으로 새롭게 바꾸는 것’


결국 그 기준은 그 시장의 소비자들이 판단할 문제다. 고백하자면, 나도  타다를 지키기 위한 서명에도 참여했던 사람인데도 그 후에 그저 서비스가 종료됨에 아쉬워하며 앱을 삭제했지 이 문제에 대해 골몰히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다.


 타다 이용자의 반성문 
어떤 글은 부채의식 때문에 써 내려간다. 그렇다. 이 글은 당시 내가 참 소홀했던 이 역사적인 사건에 대해 적어 내려가는 일종의 반성문이다. 주말에 넷플릭스에서 다큐멘터리 <타다 : 대한민국 스타트업의 초상>을 보면 장면들 중, 타다의 사무실 벽에  걸린 슬로건들이 인상 깊었다. ‘더 깊게, 더 본질에 가깝게' , '능동적으로 묻고, 맥락을 충분히 전달하는 설명을 한다.' 라는 문장이었다. 그들이 사회적인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법들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인터넷에 떠도는 글 중에는 '남이 했을 때 쉬워 보인다면, 그 사람이 잘하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있지 않나. 누군가에겐 쉬워 보이는  뒤엔 세상의 묵은 관습을 정면으로 돌파하던 청년들의 치열한 고민이 있었다. 


타다 금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던 시기에 어떤 드라마가 대흥행한다. 불합리한 세상과 대기업을 상대로 도전장을 내밀어 승리하는 청년을 그린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다. 이 드라마는 지금의 청년들에게 지극히 판타지이자 꿈꿔온 세상이다.  당장의 가난보다 견딜 수 없는 사실은 해 보려고 도전할 때마다 무릎을 꿇게 하는 거대한 사회의 규제가 아닐까. 그래서 나는  이 타다 금지법의 사건이 최근에 들어 기득권이 청년의 존엄을 짓밟은 대표적인 사건이라고 본다.


그리고 본질적인 물음으로 돌아가면, 규제 이후 운송 서비스 업계 발전했는가? 아니면 후퇴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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