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는 동사다
“Solidarity Is a Verb"
코끝에 닿는 공기가 확연히 달라지고 봄이 왔다. 그러나 춘래불사춘, 모두에게 같은 봄이 오진 않은 것 같다.
나는 비교적 축복받은 세대라 순국선열들의 희생으로 얻어낸 평화가 넘실거리는 시대에 자라났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평화를 갈망해 본 적이 없다. 이미 가져본 것이기에.
그런데 최근에 들어 러시아군의 극악무도한 우크라이나 침공과 반인륜적인 행태들을 보면서 평화가 절실해졌다. SNS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잔인한 전쟁의 흔적들은 더 이상 역사 교과서에나 나오는 일이 아니었다. 일전에 홉스가 말한 것처럼, 누구도 안전할 수 없을 때 인간은 평화에 대한 욕구가 생기는 것임을 느꼈다.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중국과 미국의 긴장감, 남북관계까지 톱니바퀴처럼 모두 연결되어 있기에 우리도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다.
그 원인은 세계 경찰 역할을 맡았던 미국의 입지 때문이다. 지금 이 시기는 글로벌 리더십의 부재가 어느 때보다 분명해졌다. 국제 컨설팅 그룹인 유라시아 그룹도 2022년의 가장 큰 리스크를 '국제 현안을 이끌 지도력의 공백'이라고 피력했다.
전쟁의 방식이나 연대하는 방식 등도 여러모로 달라졌다.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인이 갈취한 아이폰, 맥북을 ‘내 기기 찾기’ 기능을 써서 러시아군을 역으로 찾아냈다.
연대의 방식도 새로워졌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공개한 가상자산 주소로 직접 비트코인을 보낼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전쟁으로 은행 시스템이 멈추자 무기 구입 및 물자 확보를 위해 공식 SNS 계정에 가상자산으로 후원받는다는 글을 게시한 뒤 전 세계에서 기부가 이어졌다. 3월 1일 기준으로 165 BTC가 모였다. 한화로 약 85억 원이다. 마치 금 모으기 운동의 2022년 세계 버전이다.
노란 해바라기는 우크라이나를 상징하는 꽃이자 '국화'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항전하다가 숨진 사람들이 해바라기 평원에 묻혀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아픔이 가시기도 전에 또 전쟁이 일어났다.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되는 전쟁은 어떠한 이유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연대는 동사다. 마음 같아선 당장 전쟁을 멈추고 헤집어 놓은 시신들을 수습하는 그런 어벤저스들이 달려오면 좋겠지만 히어로들은 휴업 중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의지만 있다면 우리는 그들과 연대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나도 우크라이나 대사관으로 후원금을 조금 보탰다. 그리고 이 글을 보는 누군가가 우크라이나인들에게 힘을 보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들에게도 매서운 겨울이 어서 지나가기를. 해바라기들의 허리가 더 이상 부러지지 않기를. 공포에 떨고 있는 그들에게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