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사유상은 우리의 모습이다
어떤 일이건, 잘 모르면 휘둘린다. 잘 모르면 큰 숲을 봐야 할 때 나무를 보고, 나뭇가지만 보며 매달리게 된다. 일은 더욱 복잡해지고 중구난방이 된다. 기획 단계에서 목적을 알고 있어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비단 일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현대 사회 전반이 본질을 놓치고 지엽적인 것들에 매달리며 표류하고 있다. 정치권은 본질적 가치보다 당파성에, 기업은 장기 비전보다 단기 성과에, 개인은 깊이 있는 성찰보다 즉흥적 반응에 매몰되어 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본질을 잘 꿰뚫는 사람은 심플하게 일한다. 본질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사유의 방' 전시장에 들어간 순간 '본질'에 '집중'한다는 게 어떤 건지 느낄 수 있었다.
공부할 때 '여백'의 미를 좋아했다. 미학에서 여백은 허전함이 아니라 공간의 밀도라는 거다. 이우환 화백도 비슷한 맥락에서 "여백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비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사물과 공간이 강렬한 에너지로 반응하면서 서로에게 응답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미학적 통찰이 오늘날 더욱 절실한 이유는 무엇인가. 현대인의 삶은 온통 채워진 것들로 가득하다. SNS 타임라인, 끝없는 알림, 쏟아지는 정보들. 하지만 정작 진정한 의미와 가치는 사라졌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여백, 즉 사유할 공간이다.
사유의 방 전시는 대체로 파격적이라는 말이 어울렸는데, 공간, 작품의 배치 등등 모든 면에서 파격적이면서 과감했다. 그리고 우아했다. 이런 아웃풋은 보통 덕후들에게서 나오기에 찾아보니 '사유의 방' 전시는 국내 불교미술의 최고 권위자인 국립중앙박물관장이 기획한 전시다. 그는 오랫동안 반가사유상을 흠모했고, 관장이 되자마자 이를 위한 전시공간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진정한 전문성이란 단순히 지식을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한 분야에 대한 깊은 애정과 오랜 사색을 통해 본질을 꿰뚫는 것이다. 이 전시가 관람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이유도 바로 그런 진정성 때문이다.
반가사유상. 나같이 지식이 얕은 사람도 그 절묘한 미소를 보고 있으면 이유 없이 마음이 평온해진다. 전시장의 그 넓은 공간은 오롯이 이 작품들을 조명하기 위해 존재했고 관람객들은 모두 숨 죽이며 반가사유상의 미소에 젖어들었다.
이 작품들이 시대를 불문하고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는 이유는 뭘까. 바로 인간적인 모습 때문이 아닐까. 반가부좌를 틀고 골몰하는 모습. 동물에게는 없고 인간에게만 있는 모습이다.
사람들은 삶의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그 순간 마음속에 가부좌를 틀고, 턱에 손을 괴고 생각에 잠긴다. 반가사유상은 그런 자신을 비춰주는 거울이다. 6~7세기에 만들어진 국보 78호와 83호 반가사유상은 2025년 새해에도 관람객을 맞으며 인간의 생로병사를 함께 고민하고 있다. 1400여 년의 시간을 관통하는 이 작품들의 생명력은 바로 인간 조건의 보편성에 있다.
사유한다는 것은 결국 미지의 영역으로 향하는 여행이다. 기존의 답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모험이다. 그래서, 새로움이란 가는 길이 두렵지 않은 자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