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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영 Jun 20. 2022

울릉도 ①

250만 년 화산섬, 미스터리 우산국으로


행운이 닿아 갈 수 있었던 여행이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던 이번 울릉도 여행. 속세의 모든 번뇌를 버리고 가면 천혜의 비경이 맞이하는 곳. 울릉도에 다녀왔다.


울릉도는 나이가 꽤 많다. 250만 년의 화산섬. 백두산에서 뻗은 화산맥이 동해 바닷속으로 이어져 솟아오른 것이 울릉도와 독도이다.


섬에서의 짧은 시간 동안 스위스 뺨치는 높은 물가놀라며, 한편으론 관광객들을 상대로 이러저러한 창업을 해볼까 무한한 아이디어가 샘솟다가도, 높고 험준한 대자연 앞에서 그저 겸손해졌다.



서울에서 울릉도까지


이른 새벽에 출발해야 강릉에서 울릉도에 가는 뱃시간을 맞출 수 있었. 새벽 다섯 시쯤엔 서울역이 닫혀있다는 사실을 나만 이제 안 걸까. 새벽엔 사람들이 노숙을 하며 개장을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처음 안 날.


강릉역에서 택시를 타고 강릉 여객터미널로   뒤 승선 절차를 마치고 배에 올랐다. 첫날은 유독 날씨 여건이 안 좋았다. 다른 배는 취소되었는데도 다행히 우리 여객선은 출항했다. (그런데 취소되어야 맞는 날씨였다.)


우산국은 번뇌를 버려야만 갈 수 있는 곳이다.  포항에서 출발하는 거대한 크루즈호가 수면내시경이라면, 강릉에서 출발하는 '씨스포빌 씨스타 5호'는 비수면 내시경이라 말할 수 있겠다.


배가 출발한 지 4시간 30분 동안 망망대해를 떠돌며 이게 유배인지 여행인지 잠시 헷갈렸다. 그도 그럴 것이 너울성 파도를 거슬러 오르는 작은 유람선에선 약 80%의 승객이 구토를 했다. 나도, 같이 간 밍이도 멀미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인데 멀미약을 먹었음에도 신명 나는 구토 파티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검고 작은 멀미 봉투가 얼마나 의지가 되던지.. 멀미 봉투처럼 사회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내 뒤에 계시던 어르신은 화장실을 가기 위해 무릎으로 기어 다녔다.


너울성 파도가 심할 땐 눈을 뜨면 곧 구역질이 난다. 시각을 포기하고 마인드 컨트롤을 해야만 그나마 마음과 육체를 다스릴 수 있다. 둘이서 한 마디도 못하고 울릉도 저동항에 도착했는데 둘 다 첫마디가 "와.. 다시는 못 오겠다."였다. 나중에 이야기했는데 나는 너울 1포인트마다 서핑하는 상상을 했고, 밍이는 트램펄린에서 점프하는 상상을 하며 버텼다고. 거의 그와 흡사한 승선감(?)이었다.



저동항 <기쁨두배식당>의 홍따밥 2인분


울릉도 저동항은 많은 배와 사람이 오가는 때 묻은 관광지다. 그 말은 잠시 있다 떠날 사람들이 즐비한 곳이라는 말이다. 그래서일까. 대부분 가게의 주인들도 손님에게 크게 정을 주지 않아 시니컬하다는 후기들도 많다. 현금으로 구매하는 노상의 할머니들에게도 깎아달라고 이야기하면 말없이 째려보고 물건만 넣어서 툭 내민다. 계좌이체도 싫어한다. "쩌 농협 가서 뽑아와라!"라고 응대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고행 끝에 땅에 내디딘 외로운 여행자들이 아닌가. 저동항에는 온라인에 맛집으로 나오는 유명한 식당들은 거의 다 있다. 그런데 솔직히 맛과 서비스는  거기서 거기라고 본다. 가격도 메뉴도 모종의 담합이 있던 게 아닐까 할 정도로 똑같다.


그래도 여긴 조금 더 친절하다고 해서 간 곳 <기쁨두배식당>인데 썩 추천하지 않는다. 울릉도 관광객이라면 꼭 한 번쯤 먹게 되는  홍따밥 두 개를 시켰다. 울릉산 엉겅퀴 된장국, 부지깽이나물 등이 나왔다. 맛은... 그냥 곤드레밥 느낌이다. 홍따밥은 홍합과 따개비를 넣은 밥을 말한다. (2022년 6월 기준 이 밥상이 2인에 3만 4천 원이다.)


울릉도 여행동안 묵은 숙소 위드유게스트하우스


울릉도 물가가 많이 비싼 편이기도 하고 아직도 온라인 예약이 어려운 민박집들이 많다. 좋은 펜션들을 가자니 식비나 다른 곳에 쓸 것도 많아서 잡은 게스트하우스. (독도새우 한상이 20만 원이라길래)


도미토리에서 자본 게 얼마만일까. 한국에서 묵어본 도미토리 중에는 제일 청결하고 좋았다. 침대 시트도 푹신해서 잠이 솔솔 오고 사장님도 친절하시고, 2층 카페에서도 여유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뱃멀미에 진이 빠져서 게스트하우스 체크인을 하고 서너 시까지 푹 잤다. 여섯 시가 넘어서는 사동의 <신비횟집>을 갔다. 꽁치 물회, 특 물회를 시켰는데 맛이 참말로 좋았다. 물회를 제외하곤 울릉에는 칼칼한 음식이 잘 없는 것 같다.  워낙 유명한 곳이라 복작대던 것 외엔 정말 맛있었던 곳.


2일 차.

조식을 별도로 신청하지 않아서 일어나자마자 근처 CU에 가서 어묵탕과 구운란을 사서 간단하게 아침을 때웠다. (울릉에도 편의점 많음) 같이 묵었던 룸메이트 언니가 이 편의점 건물이 30억이라는 말을 해준 뒤로 그저 이곳의 사장님도, 이 정겨운 시장도 거리가 멀게만 느껴지고 막 부럽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아침, 관음도에 갔다. 짙은 안개 낀 해안도로는 영화에서나 볼법한 풍경이었다. 음도는 유명세에 비해 주차할 공간이 만만치 않은 곳이다. 거의 대부분의 울릉 관광지가 그렇지만. 입장권을 발권하고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트래킹이 시작된다. 근데 엘리베이터도 있으니 꼭 이용하시길.  올라가는 길 초입에는 괭이갈매기들이 엄청 많다. 먹을 것을 주거나 가지고 있으면 매의 눈을 한 갈매기들이 몰려들어 <나 홀로 집에> 비둘기 아줌마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관음도는 원래도 '깍새섬'이라고 불리었던 새들이 많았던 곳이란다. 먹을 것 없던 거주민들이 이곳에서 깍새를 잡아먹었단다. 예전에는 해적의 소굴로 이용되었다고 전해진다.


내려올 즈음에 다행히 날씨가 개고 있었는데 경치가 끝내줬다. 울릉도에 와서 처음으로 멀쩡한 정신으로 감상한 곳이다. 아름다운 비경과 바람이 잘 어우러진 멋진 곳이었다.


관음도를 내려와서는 노점에서 호박식혜 한 병을 사서 나눠마시며 천부에 있는 <신애분식>이라는 따개비 칼국수 맛집에 갔다.



들어가는 초입부터 친절한 사장님의 접객까지... 이곳은 분명 울릉도에서 흔치 않은 서비스와 맛을 겸비한 곳이다. 역시나 블루리본에도 연속 등재한 깔끔하고 좋은 맛집이었다. 점심까지만 장사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천부를 지나간다면 꼭 드셔 보았으면 하는 맛이다. 전날 식당에서 먹었던 '따개비'는 진정한 따개비가 아녔구나 느낄 수 있을 만큼 통통하고 맛있었다.



비 오는 날, 낙석을 주의해야 하는 울릉도 해안도로를 달려보셨나요.






만족스러운 식사 후에 울릉도 명물 <코스모스>에 있는 <카페 울라>에 가서 커피 한 잔을 때렸다. 고급 리조트의 카페로 음료 가격대는 높은 편. 외관만큼 굿즈 등도 잘 만들어져 있어서 회사에 가져갈 귀여운 호박엿도 사고 포토존에서 놀았다. <코스모스>는 가수 화사의 뮤직비디오에 나와 유명세를 떨쳤는데, 그전에 1박에 1천만 원인 곳으로도 유명하다. 브랜딩이나 입지, 건축물의 구성 등 딱 봐도 심상치 않아서 찾아보니 코오롱 그룹의 계열사인 코오롱 글로텍에서 김찬중 건축가를 고용해 지었다. 직원 연수원을 지으려고 부지를 매입했다가 리조트를 지었다고. 온라인으로 보는 코스모스는 신비한 건축물 자체만 보고 아름답다고 하지만, 실제 장소에 가보면 송곳봉의 압도적인 위용, 절벽 아래로 넓게 펼쳐진 동해 바다와, 코스모스의 마스코트 거대한 '울라'의 모습까지 자연의 힘이 그대로 살아 있고, 건축물이 그와 자연스럽게 어울려 태곳적 신비를 간직한 곳이다.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며, 심심해서 기념품으로 구입한 호박엿의 성분을 보다가 제조업체인 <울릉산채영농조합>의 원조 상품들도 정말 맛있다는 후기를 보았다. 다행히 차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카카오 맵에서는 <호박엿판매> 라는 다소 쿨한 이름으로 검색할 수 있다.




날이 밝은 날에는 주차장에 호박이 가득하다고 한다. 이 아래 전망대가 있는데 차를 세워둘 곳이 마땅치 않아 그냥 패스했는데, 이 울릉산채영농조합의 오션뷰도 기가 막힌다. 이 산악길을 자전거로 오르내리는 아저씨들과 한 팀이 되어 호박엿 소개를 받았다.  시식도 다양하게 할 수 있고 인터넷에서 맛있기로 유명한 '울박제리'와 '호박엿'도 구매했다. 이후에도 도동항이나 저동항 기념품 가게들에서도 이 상품은 잘 보이지 않아서 레어템이 분명하구나! 느꼈다. 있을 때 사 두시길.



이후엔 <태하 모노레일> 영업을 한다는 소식을 확인 후 그곳으로. 대풍감? 을 볼 수 있다는데 마침 흐린 날씨가 개면서 기똥차게 멋진 뷰를 볼 수 있었다. 모노레일은 갈 때는 두 번째 앞칸에 타면 스릴 넘치는 뷰를 볼 수 있다. 여기서 같은 방 룸메이트 언니와 다시 만났다. 관음도에서 "어차피 우린 또 만날 거예요.." 하고 떠난 지 몇 시간이 안되던 차에 만나서 까르르 웃었다. 옆에 산책로가 상당히 규모가 큰데 아직 지도에 나오지 않아서 그런지 가는 사람이 적었는데 정말 절경이었다.

태하 모노레일과 산책로는 강력 추천!


태하 바다에 있는 그섬엔과 연아네
인스타 친구였던 <그섬엔>


 화장실에 가려면 '사망사고 발생지점'을 지나야 하는 목숨을 부지하기 힘든 다이나믹 울릉. 화장실에 갔다가, 옆에 있는 <그섬엔>에서 오징어 구경을 했으나 솔드아웃으로 구매에는 실패했다. 태하가 울릉도에서도 오징어가 가장 좋은 곳이라는 말은 어쩐지 신뢰가 간다.


간단히 나물밥과 부지깽이나물을 구입하고, 옆에 <연아네>라는 식당에서 즉흥적으로 오징어 통찜을 주문했다. 급랭시켜둔 오징어를 삶아주셨는데 탁월하기보단 요깃거리로 괜찮았다. 나름 오징어 찜에는 통달한 전문가라 내가 한 게 더 맛있었다.



울릉도 도동항에는 롯데리아도 컴포즈커피도 존재한다.


읍내인 도동항에 가서 마늘통닭을 먹는 로컬 주민 같은 일정으로 마무리. <마루통닭>의 마늘 통닭은 속세의 달디 단 그 맛이 아닌 원초적인 마늘과 통닭의 결합된 맛이다. 사장님은 통닭을 잘게 발라내어 마늘즙이 가득 스며들게 해서 먹는 거라고 알려주셨다.


 <다와호떡>에 가서 호박조청호떡도 포장해 숙소로 돌아왔다. 같은 방 언니에게도 하나 드리고, 우리는 숙소 꼭대기에서 오징어 채낚이 들을 구경하며 다음 날을 기다렸다. 검은색 밤바다에 호박나이트 조명보다 화려한 오징어 채낚이선들의 조명. 내일은 오징어가 많이 잡혔기를 바라며 잠들었다. 군침을 싸악 다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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