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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영 Jun 21. 2022

울릉도 ②

우리나라 동쪽의 끝 독도, 그리고 울릉도, 강릉  




삼일 차. 드디어 독도로 간다.


아침 일찍 일어나 저동항 여객터미널에서 독도로 가는 '엘도라도 호'를 탔다. '엘도라도 호'라니 이름부터 느낌이 좋다. 뱃멀미를 할까 봐 약간 걱정되었지만 우리에겐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아쉽게도 독도를 못 보고 가는 룸메이트 언니의 협찬물품들이다. 어떤 멀미 약보다 와따라던 '일본 멀미약 4정'. 독도에서 흔들 '태극기'다. 참 웃기지 않은가. '독도는 우리 땅' 하려고 가는 독도인데 가는 길이 힘들까 봐 일제 약을 삼켜야만 하다니 인생은 이토록 아이러니하다.



배에서 눈감고 다시 생각해도 참 신기하다. 어떻게 이곳에 사람이 정착해 살았던 것일까? 울릉도는 바닷가로는 해일이나 낙석의 위험이 도래하고 산 쪽으론 가파른 산에 원시림 그 자체가 험지다. 더군다나 먹을 것도 없다. 오죽하면 따개비나 오징어 살을 발라내고 남은 오징어 내장탕 등이 관광객 특전이 되었으랴. 비교적 문명이 발달한 지금도 망망대해에 떠 있으면 이렇게 두려운데 예전이나 지금이나 뱃사람들의 진취력과 기개에는 존경을 표한다.



'간다 간다 나는 간다 울릉도로 나는 간다'


전라남도 여수와 제주 사이 거문도의 뱃사람들이 고된 뱃일을 하며 부르던 ‘술비소리’의 가사다. 어느 기사를 인용하면 거문도에는 울릉도 목재인 노간주나무나 귀목으로 지어진 집과 절구통 등이 많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배 타던 조상님들은 외계인이었던 걸까. 울릉도 공항도 심지어 2025년에라야 개통한다는데 D.I.Y 해서 만든 배로 어떻게 거문도에서 울릉도까지 저렇게 캐주얼한 노래를 부르며 갔던 것일까.


100년 전, 춘삼월이 지나면 거문도 사람들은 울릉도로 떠날 채비를 했다. 그들은 바람을 따라 한 달여간 배를 타고 울릉도에 도착했다. 당시 조선시대 조정에서는 "야. 너네 다치니까 가지 마."란 심정이었는지 왜인들의 약탈로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입도(入島)를 금지했다.


해적들이 출몰하던 다이내믹한 곳인데 거문도 사람들은 이곳에 도착해 이곳에서 김을 채취하고 해조류를 말리고, 울릉도의 질 좋은 나무들로 배를 만들어 집으로 돌아갔다고 전해진다. (가는 길목에 마포나루에 들러 쌀로 물물교환도 했다고 하는데 동선이 그게 되나?) 독도에도 들러 바다사자를 사냥했다고.


이렇게 구전되는 이야기로만 들으면 잠깐 광흥창에 갔다가 용산역으로 귀가한 것처럼 쉽게 들리는데 다 먹고살기 위해 그랬겠지. 나는 너무 나약한 직장인이었음을 반성해본다. 아무튼 간 대자연이 선사한 쾌적한 날씨 덕분에 편안히 독도에 입도할 수 있었다. 독도경비대가 반갑게 손 흔들어주자 내릴 채비를 했다.


독도경비대에게 선물할 위문 물품을 준비한 분들도 많았다. 독도 앞에서 유관순 열사의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 여성 분들도 있었다. 독도는 동도와 서도로 나뉘는데 우리는 동도에 내려서 잠시 둘러보고 기념사진을 남겼다. 독도는 제페토(메타버스)에서 가본 것이 전부였는데 이렇게 발을 디딜 수 있다니 감흥이 새롭고 얼떨떨했다.  


독도경비대 생활품을 나르는 모노레일
공교롭게도 '아일랜드 프로젝트'의 티셔츠를 입고 찍은 기념사진



다시 저동항으로 돌아왔더니 점심시간. 어젯밤 오징어잡이 배들이 환하게 넘실거리더니 만선이로구나. 제일약국 앞에 오징어 장이 열렸다. 여행 첫날과 이다음 날도 오징어가 잡히지 않았는지 장이 열리지 않았었는데. 오징어 회는 1만 원어치만 먹어도 충분했지만, 어디 한번 배 부르게 먹어보자라는 마음으로 2만 원어치 (4마리)를 주문했다.


마른오징어와 피데기도 사고 싶어서 두리번거리니, 횟감을 파신 할머니가 "피데기를 살 거면 내일 가지고 나오겠다. 난 새벽 4시부터는 나와 있을 것이다."셔서 울릉도식 당근 약속을 잡았다. 피데기는 해결되었으니 옆 할머니에게서 마른오징어도 샀다.


안녕 친구들


편의점에서 나무젓가락, 초장을 구입해 게스트하우스 카페에서 파티를 시작했다. 신기하게 바닷가인데도 회타운에서도 비린내가 나지 않고 오징어도 너무 신선하고 쫀득하다. 나중엔 오징어가 많이 남아서 김치 왕뚜껑을 사다가 횟감 오징어를 왕창 때려먹는 사치까지 부렸다. 육지에선 '오징어 숏다리'로도 못 할 일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징어로 배를 채우고 출발한 곳은 저동항에서 차로 5분이면 도착하는 <내수전 몽돌해변>. 스노클링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원래도 다이빙 포인트로 알려져 있나 보다. 이 날은 특별히 계획이 없었던지라 잠시 멍 때리다가, 돌 구경도 하고 노닥거렸다. 왜 모진 파도를 겪어 본 돌들만이 둥글어지는 걸까 잠시 생각하면서.




이후 드라이브 코스는 오각형 울릉도에 동에서 서쪽으로 드라이브하는 코스였다. 날이 너무 좋아서 같은 길을 달리는 데도 다른 기분이 들었다. 상선암 앞에 내려서 기념사진도 찍었다. 두 눈으로 보면 영화 <아바타>에서나 볼법한 풍경이 펼쳐지는데 감탄이 절로 나왔다. 살면서 이런 풍경과 이런 날씨를 본 게 처음인 것 같다.



 



이후 나리분지로 향해본다. 나리분지는 화산 분출구가 주저앉아 분지가 된 것이었는데 울릉도 해안도로에서 산악 드라이브로 해발 500미터까지 격하게 올라가야 볼 수 있는 곳이다. 올라가다 보면 뜬금없이 펼쳐지는 분지. 여기가 울릉도인지 전남의 어느 시골인지 구분할 수도 없을 만큼 평화로운 동네가 펼쳐진다.


예전에 정착했던 거주민들이 살던 투막집과 너와집도 볼 수 있었다. 나리분지에서 관광객이 갈 곳은 두어 군데로 정해져 있는 편인데 그나마 덜 알려진 <다온>이라는 카페는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이 꼭 들러보면 좋겠다. 울릉도에서 꼭 해변이 보이는 오션뷰만 으뜸은 아니니까. '아이스 아메리카노', '백향과 에이드' 다 너무 맛있었다.



너무 귀여운 댕댕이



그 후엔 모든 관광객들이 가는 <나리촌식당>에서 산채비빔밥을 먹었다. 울릉도의 산나물들을 넣은 귀한 밥상이다. 명이나물, 부지깽이나물, 취나물 등 처음 맛보는 나물들도 많다. 울릉도 음식에는 늘 깨 땅콩가루 같은 게 올라가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약간 텁텁한 느낌이다. 



 한번 더 가보기로 한 코스모스 <카페 울라>. 날이 좋으니 바다가 더 멋지게 펼쳐졌다. 간지 나는 코스모스의 이면에는 이런 오르막길이 있다. 차량으로 이 길을 오르면 옆에 바다가 펼쳐져 등골이 오싹함을 느낄 수 있다.


<코스모스>의 이면, 오르막길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면 이런 곳을 두어 군데 지나게 되는데 너무 인상적이다.


다시 숙소가 있는 저동항으로 돌아와서 <저동 커피>에서 먹물과 호박 아이스크림 겟. 생각 외로 입에 잘 맞아서 흡입했다. 너무 귀여운 울릉도·독도 마그넷도 하나 장만하고.


 원래 옆 <독도 문방구>가 열었으면 거기서 기념품도 구매을 텐데 요 시즌에는 3시부터 6시까지만 운영한다고 적혀있어서 울릉도에 머무는 동안 가보질 못했다.




우연히 저동항에 '해안산책로'라는 곳이 있었음을 발견했다.


그리고 강한 자들만이 살아남는 울릉.  안내 표지판은 녹슬고, 이렇게 작은 틈새 사이로 호기심이 강한 자들만이 들어가게 생긴 곳을 통과하면 멋진 산책로가 펼쳐진다.


p.s '사망사고 발생지점' 표지판도 함께.



어떻게 여기가 산책로라고 생각했겠어요. 철없이 호기심이 왕성해 고개 내밀어봐서 알았을 뿐이지. 내 기개도 뱃사람들의 기개에 견줄만한 것인가..? 나.. 뱃사람이 될 자질이 있는 것인가!?


절대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은데 여기가 산책로 입구입니다. 합법적인 장소입니다.







바다의 기와 파도 때문일까? 녹슨 산책로와 일몰이 어우러져 RPG 게임에서 등장할 것만 같은 분위기가 압도한다. 한국판 <라라랜드>를 찍는다면 이곳도 좋을 것 같아.


그런데 누가 기획했을지 너무 궁금한 '미치광이 해상 구름다리'도 있다. 안 그래도 거센 바다에서 건너는 평평한 다리도 무서운데, 오르기만 해도 삐걱거리는 녹슨 스산한 구름다리가 있다. 계단 마디마디마다 발아래가 스마트폰이 빠지기 딱 좋다.



실제로 보면 진짜 무서운 구름다리

쫄보라 몇 걸음 걷다가 내려왔는데도 다리가 후들거렸는데,  밍이는 좋다고 올라가다가 무서워서 돌아오지 못하는 중. 뒤에 아주머니도 바들바들 떠시는 중. 심지어 이 다리 뒤 통로는 끊어져있다.

뭘까 이곳..?


아마도 사동항의 울릉공항 개통 스케줄에 맞춰서 하나씩 정비를 하고 있는 거겠지? 내가 갔던 2022년 6월은 울릉도 이곳저곳이 다 공사 중이거나, 터널들도 이제 막 공사가 끝나서 쾌적하면서도 썰렁한 곳들이 많았다. 88 올림픽 시대를 겪은 세대는 아닌데 아마 개도국 바이브가 이런 게 아닐까.


하늘길이 열리면 더 많은 관광객들이 오가면서 지금의 분위기도 많이 잃지 않을까. 그전에 울릉도의 모습들을 미리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렇게 얼렁뚱땅 울릉도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울릉도 당근 거래에 노쇼당하다.


마지막 날 아침, 아침 일찍엔 피데기를 사기로 한 약속 장소에 나갔는데 할머니가 나오지 않으셔서 동공 지진이 일어난 우리. 노쇼에 마상을 입은 채 다른 할머니에게 피데기를 샀다.


저동항 여객터미널 앞 노점들에서는 작은 피데기들을 진공 포장해 판매한다.
울릉도 당근에 노쇼당한 밍과 나


아침 산책 후 승선권을 발권하고 <저동커피>에서 시간을 때웠다. 울릉도에서 찍은 칠백 여장의 사진을 공유하려는데 아이폰 에어드롭과 유사한 삼성의 '니얼 바이'라는 기능이 있었다. 이걸로 밍과 사진을 주고받았는데 이거 신세계다.


올 때 뱃길이 너무 힘들었어서 겁먹고 또 빈속으로 배에 올랐는데 다행히 날도 좋고 시간도 지연되지 않았다. 구토한 승객도 거의 없을 정도로 편안하게 자면서 왔다. 날씨에 따라 이렇게 다르구나.



강릉항에 무사히 도착!

생각보다 제시간에 도착해서 기차 시간까지 꽤 여유가 있었다. 멀미할까 봐 쫄쫄 굶은 탓에 둘 다 "매운 거 먹고 싶다."라고 텔레파시가 통했다.



이기가 그 유명한 안목해변인가. 잠시 구경하다가 택시 타고 <원인숙 고성 생선찜>으로 향했다. 3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 딱 브레이크 타임이 끝나 여유롭게 입장했다. 가장 유명한 가오리찜 소 자리를 시켰다. 촉촉하니 밥맛 좋고 오래간만에 맵고 칼칼한 음식이 나오니 반갑다.





기차 타기 전, 강릉역 앞 구움 과자 가게 <라스텔리나>에 들렀다. 카카오 맵에는 카페라고 써져 있어서 간 건데 현재는 테이크아웃만 가능하다고. 먹고 갈 수는 없었지만 커피도, 구움 과자의 맛도 훌륭했다. 섬에 있다가 나와서 처음 먹는 달고 짭짤한 속세의 맛.. 도시의 맛... 이때 산 브라우니는 집에 와서도 연신 감탄. 매장에 칼리 바우트 초코 커버춰를 쌓아두신 것을 보니 물가가 많이 올랐는데도 정말 좋은 재료를 쓰시는구나보다. 계속 그 맛 잃지 않았으면. 다음에 또 올게요.




재밌었던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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