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D-티켓과 서울 기후동행카드
독일 전역 어디서나 한 달 58유로(약 9만원)로 대중교통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도이칠란트 티켓(D-티켓)’. 기후위기와 교통비 부담을 동시에 줄이는 해법으로 주목받았지만, 도입 2년 만에 존폐 기로에 섰다.
물가는 오르고, 재정은 고갈되고, 정책의 책임 주체는 서로에게 비용을 떠넘기고 있다. 서울시가 지난해 도입한 ‘기후동행카드’는 바로 이 D-티켓을 벤치마킹한 제도다. 그렇다면 서울은 같은 길을 걷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낼게.” 선배가 호기롭게 말한 뒤 계산서가 나오자 뒷걸음질 친다. 지금 독일 D-티켓의 상황이 그렇다. 연방 정부에서 1년에 15억유로를 지원하고, 동시에 각 주정부에서도 동일 예산을 지불하도록 합의가 있었지만 유지는 어려워졌다.
결국 베를린 시장은 “가장 간단한 방법은 연방정부가 전액 부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에른주도 “추가 지원 없이는 유지가 어렵다”고 했다. 49유로였던 요금을 58유로로 올렸지만, 적자는 개선되지 않았고, 더 올릴 경우 제도의 취지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서울시가 도입한 ‘기후동행카드’도 상황은 비슷하다. 월 6만5000원으로 서울 대중교통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출범 초기 관심과 호응을 얻었지만,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막대한 적자가 발생하고 있다.
서울시의회에 따르면 2025년 손실 추정액은 1308억 원.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가 각각 654억 원씩 부담해야 한다. 이에 따라 서울시에서도 "중앙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여기엔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이 제도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추진했고, 당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도 예산 편성에 협조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같은 당 시의원이 중앙정부의 재정 지원을 촉구하는 것은 책임을 피하려는 모순적 행태로 읽힐 수밖에 없다. 정책은 지방정부가 주도하고, 부담은 중앙정부에 전가하는 구조다.
상황이 더 혼란스러운 건, 정부가 이미 전국 단위 교통비 지원 정책인 ‘K-패스’를 운영 중이라는 점이다. 정기 이용자에게 교통비의 20~53%를 환급해주는 제도로, 수도권 시민 351만 명이 이용 중이다.
서울시는 이를 알면서도 별도로 기후동행카드를 추진했고, 두 정책이 수도권 내에서 중복 운영되면서 예산의 비효율과 정책 충돌을 야기했다. 정치적 성과를 위한 무리한 시도였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좋은 제도는 ‘설계’로 증명된다. 재정 계획 없이 지속될 수는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책의 취지에 맞는 설계와 명확한 재원 마련 방안이다. 오는 6월 28일부터 수도권 지하철 요금이 150원 인상된다. 시민들은 고개를 갸웃한다. 무리한 제도 도입의 재정 부담이 결국 시민에게 전가되는 구조 아닌가.
오세훈 시장과 서울시, 그리고 국민의힘 소속 시의원들이 주도한 정책에 대해 그 책임 또한 분명하게 져야 한다. 좋은 정책의 조건은 ‘시작’이 아니라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