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울뿐인 '소셜믹스'

돈만 내면 규제를 피할 수 있다?

by 빵부장

서울의 한강변 재건축 단지들이 줄줄이 심의에 들어가자, ‘소셜믹스’ 논쟁이 다시 불거졌다. “임대주택이 한강 조망을 가지면 안 되느냐”는 질문 앞에, 조합은 냉소적인 태도를 보인다. 같이 살아도 ‘보이지 않는 경계’를 만들고 싶은 것이 이들의 속내다.


‘소셜믹스(Social Mix)’는 분양과 임대를 물리적으로 섞어 배치해 계층 간 분리와 차별을 완화하자는 취지로 도입되었다. 초창기 '분리형' 소셜믹스는 이름만 함께 사는 것이었다. 몇 해 전 경기도의 한 신축 아파트에서 목격한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정문에서 임대 동까지 10분 이상 걸어야 하는 거리, 철저히 분리된 동 배치는 진정한 의미의 '혼합'과는 거리가 멀었다.


현재 서울시가 고수하는 '완전혼합형'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시행령 제48조에 따라 동별, 라인 별 구분 없이 공개 추첨으로 임대주택을 단지 전체에 분산 배치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상과 달랐다. 서울 압구정3구역, 잠실5단지, 여의도 공작, 대치 구마을3지구 등 주요 정비사업지들에서 '임대 위치'를 둘러싼 조합과 서울시 간 갈등이 연이어 표면화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강남구 대치동 '디에이치 대치 에델루이' 조합의 '20억 원 현금 기부채납' 회피책이다. 이 조합은 원칙적으로 조합원과 임대주택 대상자 추첨을 함께 진행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임대와 분양주택 추첨을 각각 따로 실시했다. 서울시는 원칙적으로 이런 행위에 용적률 인센티브 박탈 또는 사업 승인 거부로 대응해 왔는데, 이번엔 사실상 용인한 것이다.


서울시는 일종의 페널티였다고 주장하지만 "같이 살 바에야, 벌금을 내고 말지"식의 이러한 전례 없는 현금 기부채납은 계층 간 갈등만 부각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공평한 추첨'이라는 제도의 핵심 취지를 위반한다면, 소셜믹스는 허울뿐인 정책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근본적인 갈등 원인은 무엇인가. 소셜믹스는 정책적 설계 이전에 사람들의 본능적 욕구와 정면충돌한다. 재건축 조합원들 사이에서 터져 나오는 "왜 임대세대가 한강 조망을 보느냐", "공개추첨이 조합원 권리를 침해한다"는 불만은 계층 간 공존보다는 회피와 거리 두기를 원하는 심리를 드러낸다.


더 노골적인 차별 의식도 존재한다. "내 아이가 임대세대 아이와 같은 놀이터를 쓰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발언은 고층, 조망권 좋은 동·라인을 임대세대가 가져가는 것을 '역차별' 내지 '임대세대의 무임승차'로 규정하는 인식과 맞닿아 있다.


단지에 다양한 계층이 섞여 살아야 한다는 원칙 자체는 분명 옳다. 하지만 우리가 반복해서 마주하는 현실은 그 '같이 살기'가 얼마나 정교한 설계와 지속적인 조정을 필요로 하는 복잡한 과제인지를 보여준다.


서울시가 2021년 10월 시내 모든 재건축·재개발 단지에 임대주택 소셜믹스 적용을 의무화하며 '완전혼합'을 강조한 것은 옳은 방향이다. 하지만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려면 더 진일보한 정책과 시민의식이 필요해 보인다. 한강뷰를 둘러싼 논쟁은 결국 '함께 사는 사회'에 대한 우리의 진정성을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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