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은 예측 가능해졌지만, 우리의 대응은 여전히 즉흥적이다
22일 대통령이 전국 호우 피해 지역들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한 바로 그날, 수해복구 현장에 발을 디뎠다. 내가 참여한 날도 400여 명의 봉사자가 몰려들었지만 정작 필요한 건 포크레인 한 대였음을 깨달았다.
지난 16일에 특별재난지역에 대한 글을 쓴 이후, 20일에는 전국적으로 역대급 수마가 할퀴고 갔다. '시간당 100mm 이상'의 극한 호우는 더 이상 100년에 한 번 찾아오는 이례적 사건이 아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연례행사가 된 극한 기후에 맞서는 우리의 준비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가평군만 봐도 피해가 엄청 났다. 16일부터 20일 새벽까지 시간당 최대 76mm에 달하는 집중 강우로 가평 전역에 산사태, 주택 침수, 도로 유실 등 피해를 남겼다. 가평군이 경기도에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건의한 21일까지 인명피해 8명, 재산피해 346억원, 총 1,442명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이른 아침 버스를 타고 현장으로 갔다. 조종면 CU매장은 지반이 무너진 처참한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호우로 도로가 무너져 마을회관까지 진입이 어려워 굽이굽이 돌아가야 했다. 조속한 복구를 해야 한다고 입으로 읊는 것과 현장을 대면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분야였다. 장화, 팔토시, 삽 등을 트럭으로 주문하는 일부터 이장님의 행정력에 기대어 업무를 배분받는 일, 400여 명의 봉사자가 단전된 마을회관 화장실 한 칸을 나누어 사용하는 일까지.
재난 대응 시스템의 핵심은 신속한 전문 장비와 인력 투입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이장의 행정력에 의존한 업무 배분, 집주인이 없다는 이유로 한참 산에 올랐다가 대기하는 상황, 진흙에 발이 빠지는 언덕길을 삽 하나 들고 오르는 봉사자들. 시스템의 부재는 선의를 가진 사람들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재난 현장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감정이 아니라 전문성이다. 산사태로 무너진 주택 앞에서 봉사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판단뿐이었다. '아, 이것은 맨손으로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전기톱과 포크레인, 재난복구 전문가가 절실한 현장에 선의만 가득한 일반인들이 몰려든 미스매치였다. 실용과 효율을 최고로 치는 나 같은 사람이 봤을 땐 전문가가 한 번에 끝낼 일을 비전문가들이 의욕적으로 나서다가 다치거나 더 난감한 상황이 벌어질 것 같았다.
폭염과 습도 속에 피해 주민들은 주민들대로 속상한지 비토를 해댔다. "서울 사람들이 뭘 도울 수 있냐", "돕는 게 아니라 방해하러 왔냐"는 피해 주민들의 날선 반응과 "왜 이렇게 착착 진행이 안 되냐"는 봉사자들의 불만이 교차했던 현실을 직면했다.
특별재난지역 선포는 조속히 이뤄졌다. 정부와 지자체가 두 팔 걷고 나섰고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봉사에 나섰다. 하지만 현장에서 본 것은 선의에 기댄 재난 복구, 전문성 없는 대응, 체계 없는 현장 관리였다. 이 모든 것이 '특별재난지역'이라는 타이틀 아래 그대로 반복됐다. 재난은 예측 가능해졌지만, 우리의 대응은 여전히 즉흥적이다.
매년 찾아오는 극한 기후 앞에서 우리는 매번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선의로는 메울 수 없는 시스템의 구멍이 재난 때마다 더 크게 벌어지고 있다. 다음 호우가 오기 전에,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