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光復)과 광장
광복 80주년을 맞아 국회는 일본 만화를 베껴 만든 태권브이를 국회의사당에 얹은 포스터를 만들었다. 누리꾼들의 야유가 쏟아지자 기획자는 서둘러 철회했지만, 이 해프닝은 일부의 사람들이 광복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광복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현재와 단절된 형식적 추모, 형식에 갇힌 기억. 80년이 지나도록 광복은 '그날의 이야기'로만 남아있다.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27분.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헌법이 멈췄다. 국회가 봉쇄됐다. 민주주의의 침탈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두려운 상황에 사람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쫄보인 나조차도 국회 앞으로 달려갔다. 택시를 타고 서강대교를 건너는데 하늘에서 군 헬기 소리가 섬찟했다. 국회 앞 골목은 원래 차 한 대도 다니기 비좁은 골목인데 탱크가 지나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두 팔을 벌려 탱크를 막아섰다. 국회의원들은 계엄을 해제하기 위해 담을 넘었다. 유튜브와 티브이에선 국회 본청 앞에서 시민들이 계엄군에 맞서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송출했다.
긴박한 상황이었다. 안에 있는 친구가 걱정돼 당장이라도 뛰어들고 싶었지만, 사진처럼 국회 정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직원증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는 상황. 나는 밖에서 애만 태우며 발만 동동 굴렀다.
그날 밤부터 122일. 2025년 상반기는 말 그대로 아스팔트 위에서 굴렀다. 여의도에서, 광화문에서, 남태령에서, 용산에서. 응원봉을 손에 쥐고 서로를 의지하며 끝이 보이지 않는 시간을 버텼다. 주말도 없었다. 길바닥에 지쳐 널브러져 있던 내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고, 가족과 친구들은 몰래 울었다고 나중에 털어놓았다.
탄핵과 구속 그리고 조기대선으로 이어진 이 과정이야말로 현시대의 광복을 위한 여정이었다. 광복은 '빛을(光) 되찾다(復)'는 뜻이다. 되찾는다는 건 능동적이다. 누가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가져오는 것. 상해임시정부는 이렇게 선언했다. "원수일본의 모든 침략세력을 박멸하여 국토와 주권을 광복하고." 순종이 말했다. "여러분들이여, 노력하여 광복하라." 광복은 동사였다.
1945년 8월 15일. 일제강점기라는 어둠에서 벗어났다. 2025년 4월 4일에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내려졌다. 80년의 간격에 같은 본질이다. 빼앗긴 것을 되찾는 일이다. 하지만 결정적 차이가 있다. 1945년 광복은 외부의 힘이 컸다. 일본이 항복했고, 연합국이 승리했다. 2025년 광복은 달랐다. 순전히 우리 힘이었다. 시민이 나섰고, 시민이 이겼고, 시민이 되찾았다.
그런 해에 광복절을 어떻게 기념할 것인가. 80년 전 기념일을 추모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광복은 박물관에 있지 않다. 교과서에 있지 않다. 광복은 기념비에 새겨진 게 아니라 우리 가슴에 새겨진 것이다. 탱크와 총칼 앞에서도 헌법과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응원봉과 함성이 너울거리고 에스파의 '위플래시'가 울리던 그 시간을 마음에 새기자.
광복 80주년의 참된 의미는 광장이 증명했다. 어둠이 와도 굴복하지 않고, 억압 앞에 침묵하지 않는다. 빛을 되찾기 위해 빛(응원봉)을 들고 거리에 나선 시대의 용기와 외침이야말로 우리가 다시 써 내려가는 광복의 역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