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선을 쥔 트럼프

닻 오른 마스가

by 빵부장
여의도 해운빌딩 폴바셋에서 찍은 사진


왜 미국은 한국 조선업에 관심을 두는가. 단순히 기술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미국 해군력의 미래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한미정상회담 이후 여러 뒷이야기들이 화제가 됐다. 한국 대통령이 사용한 펜 덕에 모나미 주가가 급등했다거나, 회담장의 화기애애한 분위기, 참모들의 치열했던 후일담 등이다. 내가 가장 주목한 지점은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건넨 선물, ‘거북선’이었다.


금빛 거북선은 현대중공업의 기계조립 명장 오정철 기장이 제작했다. 외교부는 이를 통해 한국 조선 기술의 우수성을 알리고자 주문 제작했다고 밝혔다. 동시에 지난달 타결된 관세 협상에서 한국이 제안한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의 성공을 기원하는 의미도 담겼다. 500년 전 철갑 거북선이 바다의 판도를 바꿨던 것처럼.


미국이 이를 반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냉전 이후 조선업 투자를 등한시한 결과, 미국 조선업은 사실상 몰락했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민간 선박 건조량은 세계의 0.1%에 불과했다. 반면 중국은 53.3%, 한국은 29.1%를 차지한다. 인도태평양에서 중국을 견제하려면 해군력 증강이 필수지만, 현재 미국이 가진 조선 인프라로는 역부족이다.


위기의식은 수치로 드러난다. 미국 국방부는 ‘2024 중국 군사력 보고서’에서 중국 해군이 370척이 넘는 함정을 운용하며, 2030년이면 435척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미 해군은 296척에 그친다. 의회조사국(CRS) 역시 “최소 381척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잠수함 한 척을 수리하는 데 대기만 20개월, 수리 기간만 31개월이 걸리는 현실은 산업 기반의 취약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미국이 동맹국의 조선 역량을 빌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대통령이 회담 직후 필라델피아의 한화 필리조선소를 찾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한국의 조선소들은 미국 조선소에 투자하고, 우수한 인력을 양성하며, 현대적 공정 기술이 미국에 뿌리내리도록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곳은 한때 미국 조선업의 심장이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만 해도 이곳에서 50여 척의 군함이 건조되고, 500여 척을 수리한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러나 최근 연간 건조 능력이 1척 남짓에 불과해 ‘녹슨 유산’이라 불렸다. 후 한화오션이 이곳을 인수해 지난해 12월 새롭게 출범했다. 국내 기업이 미국 조선소를 인수한 첫 사례였다.


배를 짓기 위해서는 기자재 공급망, 숙련된 엔지니어, 안정된 산업 인프라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현재 미국에는 이 세 가지가 모두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필리조선소가 의미 있는 이유는, 바로 미국이 조선업을 실질적으로 재건할 수 있는지 시험하는 ‘테스트 베드’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구상하는 ‘위대한 미국’의 부활은 조선업 재건도 포함된다. 그러나 미국은 수십 년간 쇠락하며 사실상 건조 역량을 잃었고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제정한 존스법은 오히려 발전을 가로막았다.


이 지점을 한국은 영리하게 파고들었다. 미국의 ‘가려운 곳’을 긁어준 덕분에 마스가 프로젝트가 관세 협상의 숨통을 틔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주요 기업들은 한미 제조업 르네상스를 내세우며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HD현대는 미국 서버러스 캐피털·한국산업은행과 ‘한·미 조선 산업 공동 투자 프로그램’ MOU를 맺었고, 삼성중공업은 비거마린그룹과 미 해군 지원함 MRO(유지·보수·정비) 관련 협력을 약속했다.


물론 현실의 벽도 존재한다. 전투함 시장은 20조 원 규모에 이르지만, 현재로서는 미국의 반스-톨레프슨법 때문에 한국 조선소가 손댈 수 없다. 위 MOU처럼 비교적 시장이 적은 군수지원함·급유함 등 비전투함 MRO 사업만 가능하다. 따라서 이번 MOU는 한미 양국의 의지를 확인한 상징적 행보이지만 MOU이기 때문에 법적 효력이 없다는 지점, 현행법이 개정되어 실제 산업의 파이가 커질 여력이 있는지 지켜볼 문제다.


트럼프는 거북선을 쥐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거북선이 어디로 향하느냐다. 한국과 함께하는 공동의 항해가 될 것인가, 아니면 미국만의 일방적 항진이 될 것인가. 1,500억 달러 규모의 조선 협력 펀드 역시 투자 구조와 수익 배분이 정해지지 않았다. 그래서 업계는 “마스가 프로젝트는 기회이자 동시에 위험”이라고 경계한다. 긴장을 늦출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이미 방향타를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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