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귀했고, 사람도 귀하던 시절이 있었다.
투니버스를 보다 보면 가끔 ‘이달의 OST’가 흘러나왔고, 나는 그 노래를 다시 듣고 싶어 공테이프를 준비했다. 버튼을 누른 채 숨을 죽이고, 운율이 시작되면 재빨리 녹음을 눌렀다. 저작권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어린 시절, 좋아하는 음악의 이름을 안다는 것조차 쉽지 않았고, 주머니에 넣고 수시로 들을 수 있다는 건 꽤나 호사스러운 일이었다.
조금 자라서는 송정리에서 하남까지 학원을 오가며 워크맨에 최신가요집을 넣어 들었고, 그다음엔 작은 MP3 하나에 스무 곡만 담아도 세상을 다 가진 듯 집을 나섰다. 마치 《나 홀로 집에》의 케빈처럼. 사진기와 녹음기, 카세트테이프만 있으면 어디든 씩씩하게 나설 수 있던 낭만이 있었다.
홍대 스테레오포닉 사운드에 들어섰다. 음료를 주문하면 신분증을 맡기고 카세트테이프와 기계를 빌려준다. 사용법을 차분히 설명받고, 고장 나지 않게 다뤄달라는 말도 덧붙여진다. AA 건전지 두 개를 넣자, 아주 느리게 음악이 흐르기 시작한다. 노이즈 캔슬링 같은 건 없다. 아날로그 다이얼을 끝까지 돌려 소리를 키우고, 야마시타 타츠로의 《FOR YOU》를 틀었다.
하이볼 한 잔과 카세트테이프. 이보다 더한 사치가 있을까 싶다. 노이스 캔슬링이 없는 낭만이 있다. 음악을 제일 크게 틀어도 주변의 소음이 들어오는 걸 보니.
붉은 해가 떠올랐다. 구독자님들께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를 하려다 문득 인스타그램에서 본 괴담이 떠올랐다. 어느 외계인이 지구라는 행성에 대해 이렇게 고백했다는 이야기. 지구는 감옥 행성이고, 사람들은 그 안에서 태어나고, 괴로워하며, 다시 태어난다고. 그리고 그 사실을 알아챈 사람만이 탈출할 수 있다고.
버틴 게 용할 만큼, 많은 것을 재조립하고 무수히 떠나 보내왔다. 감옥 행성의 일원이라는 것이 운명이라면, 피할 수 없으면 즐기는 수밖에 없겠지.
지난 을사년, 숱한 오해 속에서 부대끼며 보내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해에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눈빛이 오가고, 말보다 마음이 먼저 닿는 순간을 자주자주 누리길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