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골공원+낙원상가 개발 '큰 그림?'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서 장기판이 사라졌다. 종로구는 지난달 말 북문 담벼락에 놓여 있던 장기판 20여 개를 철거했다. 하루 천여 명의 노인들이 모이고, 수십 년 동안 도시 빈민과 어르신들의 일상이 스며들었던 공간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이다. 명분은 「문화유산법」에 따른 환경정비였다. 정비라기보다 사실상 퇴거였다.
물론 탑골공원은 문제도 많은 공간이었다. 노인과 노숙인의 소란, 취객과 성매매, 잦은 사건 사고. 경찰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탑골공원 북문 인근 112 신고는 무려 1,470건, 하루 네 건 꼴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문제의 책임이 사람 자체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근처 서울노인복지센터에 장기실이 마련돼 있지만, 먼 지역에서 탑골공원까지 오는 이유는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30년 간, 늘 그래왔던 동네에 조치를 취했다니 찬성을 해야 할지 반대를 해야 할지 그 입장에 대한 고민보다는 "갑자기 왜?"냐는 의문이 가장 먼저 들었다. 주목해야 할 곳은 탑골공원 맞은편, 악기상가로 알려진 낙원빌딩이다. 이 건물은 도로 위에 세워진 특이한 구조물이라 소유주들도 토지세 대신 도로점용료를 납부한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는 재개발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다. 허물면 도로로 환원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울시가 ‘서울형 용적이양제’ 도입을 예고하면서 기류가 달라졌다. 용적이양제는 규제 등으로 사용하지 못한 용적률을 다른 곳에 매매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해외에서는 TDR(Transfer of Development Rights), 즉 개발권 양도제로 불린다. 경관지구, 문화재 주변 등에서 발생하는 규제의 틀을 풀어내는 수단이다.
여기서 오세훈 시장의 발언이 겹쳐진다. 그는 2023년 뉴욕에서 “문화재 보호를 이유로 건물 높이를 제한하는 것은 미래지향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이는 곧 문화재 보호보다 개발 논리를 우선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이 맥락에서 탑골공원 장기판 철거는 단순한 우연일 수 없다. 낙원상가와 그 일대를 재개발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일 가능성이 높다. 낙원상가만으로는 개발이 어렵지만, 탑골공원과 주변을 함께 묶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다만 탑골공원이 문화재라는 점, 그리고 국토부의 신중한 태도, 공중권 등기 문제 등 법적·행정적 난관이 여전히 남아 있다. 결국 제도적 정비와 규제 완화 없이는 본격적인 개발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은 이번 철거를 단순한 환경정비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도시 빈민과 노인들은 30년 넘게 삶과 추억이 쌓인 공간에서 하루아침에 내몰렸다. 불편한 존재를 치우듯 밀어낸 이 속도감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도시개발의 거대한 논리 앞에서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것은 언제나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 일대가 시민들의 공간으로 되살아날지 아니면 개발만을 위한 명분으로 전락할지 함께 지켜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