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보장한다”는 간판의 함정
서울시가 청년들의 주거 부담을 덜어주겠다며 내세운 청년안심주택. 그러나 최근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사고가 잇따르면서, 이름과 달리 ‘안심’과는 거리가 먼 현실이 드러났다.
공공사업의 장점은 민간보다 믿음이 간다는 점이다. 그런데 서울시의 이름을 걸고 운영되는 주택에서조차 청년들이 보증금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면, 앞으로 누가 공공임대 정책을 신뢰할 수 있을까.
서울시는 청년·신혼부부·어르신을 대상으로 맞춤형 임대주택을 운영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청년안심주택의 조건은 분명 매력적이었다. 시세보다 15%에서 25%가량 저렴한 임대료, 역세권 입지, 그리고 무엇보다 서울시가 추진한다는 안전감이 있었다. 지난 4월에는 청약 경쟁률이 무려 146 대 1을 기록했다. 기사 인터뷰에 응한 어느 청년은 보증금 1억8천6백만 원에 월세 8만 원이라는 조건으로 집을 계약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사업은 철저히 민간 시행사에 의존한 구조였다. 서울시는 용적률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민간은 집을 지어 운영한다. 한 단지 안에서도 공공임대와 민간임대가 섞여 있는데, 문제는 보증사고가 발생한 곳이 대부분 민간임대라는 점이다. 청년들은 서울시라는 이름을 믿고 들어갔지만, 실제 계약 상대는 민간이었다. 그 결과, 청년들은 서울시의 보호막은커녕 민간 시행사의 부실과 허점에 그대로 노출됐다.
실제로 드러난 피해 규모는 충격적이다. 송파구 잠실센트럴파크에서는 시행사 부실로 건물이 강제경매에 넘어가면서 보증금 238억 원이 묶였다. 동작구 사당역 인근의 한 단지는 30가구가 가압류 상태에 놓였고, 단기숙박 불법 의혹까지 제기됐다. 도봉구 쌍문동의 또 다른 단지에서는 6가구가 보증금 2억 원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청년안심주택은 무려 1천1231가구에 달한다.
송파구 피해 사례는 문제의 본질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세입자들은 계약서에 전세보증보험에 가입돼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보험 가입이 이뤄지지 않았다. 법적으로 의무화된 조항조차 지켜지지 않았던 것이다. 관할 구청의 대응도 무책임했다. 경매가 개시된 지 넉 달이 지난 뒤에야 시행사에 과태료 3천만 원을 부과하는 데 그쳤다.
사태의 핵심은 임대보증금 보증보험 미가입이다. 보증보험은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할 경우 보험사가 대신 지급하는 장치다. 세입자를 지켜주는 최소한의 안전망이지만, 청년안심주택 구조상 보험 가입 자체가 사실상 어렵다는 점이 드러났다.
첫째, 집값 대비 대출 비율이 지나치게 높으면 보험 가입이 불가능하다. 청년안심주택은 사업성이 낮아 자본력이 약한 시행사들이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대출 비율이 높아져 보험 가입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둘째, 청년안심주택은 후분양 구조라 착공 단계에서 이미 건설 비용 부담이 크다. 일반 임대주택처럼 입주자를 미리 모집해 자금을 충당할 수도 없어 시행사의 재무 구조가 취약할 수밖에 없다.
셋째, 현행법은 사용승인 이전에 보증보험 가입을 의무화하지만, 청년안심주택은 신탁사가 소유권을 쥐고 있어 임대사업자가 이를 지킬 수 없는 법적 모순까지 존재한다.
서울시는 뒤늦게 대책을 내놓았다. 선순위 임차인에게는 즉시 보증금을 지급하고 서울시가 추후 환수하며, 후순위 피해자에게는 SH·LH가 해당 주택을 매입해 우선 공급한다는 방침이다. 또 9월까지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사업자는 등록을 말소하겠다고 밝혔다.
문제가 드러나고 보니 청년안심주택은 애초부터 사업성이 낮았다. 사업성이 부족하니 재무적으로 취약한 민간이 참여할 수밖에 없었고, 이들이 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그 부담은 결국 세입자, 특히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청년층에게 전가됐다. 복지라는 이름으로 내세운 정책이 되레 발목을 잡았다면, 이는 단순한 행정 미비가 아니라 제도 설계의 실패다.
청년안심주택 사건은 지금은 널리 알려졌지만, 처음에는 다리 건너 지인의 보증금이 묶였다는 소식을 통해 알게 된 일이다. 그때만 해도 ‘서울시에서 하는 임대주택에서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나’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곧 서울 곳곳에서 유사한 사고가 잇따라 터져 나왔다. 서울시가 뒤늦게나마 대책을 내놓은 것은 다행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임시 봉합에 불과하다. 이제는 ‘간판만 공공’인 구조를 근본적으로 손질해야 한다. 보증금 안전을 제도적으로 보장하지 않는 한, “서울시가 보장한다”는 말은 계속해서 공허한 수사에 머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