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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동인도회사, 우주의 스페이스X

by 빵부장


2021년쯤, 스페이스X가 출시한 백팩 하나를 샀다. 제품 설명에 적힌 문장이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다.



“행성 간 운송을 위해 설계되고 테스트된 제품.”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엉뚱한 상상이 스쳤다. "무한한 우주에 순간의 빛일지라도-" 아, 내가 생을 마감하기 전에 이 가방을 메고 행성을 여행하게 될 수도 있겠구나. 어쩌면 여행이 아니라, 그곳으로 가야만 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그렇다. 나는 파워 N이다. 그러나 그 상상은 예전만큼 허황되지 않다.

우주는 오랜 시간 동안 국가와 기업들이 경쟁하는 무대가 되었다. 로켓은 재사용되고, 지구에선 위성을 수천 기씩 쏘아 올린다. 우주 데이터센터가 보편화되면 내 메일함 속 자료들도 우주에서 보관할 시대가 온다.

이 장면은 낯설지 않다. 17세기 유럽 열강은 인도와 동남아로 향하는 항로 개척을 국가가 직접 수행하지 않았다. 대신 특허장을 부여한 동인도회사에 맡겼다. 네덜란드의 VOC, 영국의 EIC가 대표적이다. 동인도회사는 무역회사를 넘어 군사력과 사법권, 독점무역권을 행사하는 준국가적 존재로 성장했다. 항로를 개척하고 정보를 독점하며 부를 축적했고, 그 부는 곧 제국의 기반이 되었다. 바다를 지배한 기업은 세계 질서를 바꾸었다.

지금 우주에서 비슷한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미국 정부는 달 착륙선과 우주 수송, 위성 통신망 구축의 상당 부분을 스페이스X에 맡겼다. 과거 NASA가 모든 것을 직접 만들던 시대와는 다른 풍경이다. NASA는 고객이 되었고, 스페이스X는 우주로 가는 표를 발행하는 사업자가 되었다. 과거 항로가 영토였다면 오늘날 궤도는 새로운 영토가 되고 있다.

스페이스X가 달과 화성에 기지를 세우고 통신망을 깐다면 그곳의 법과 규칙은 누가 정하게 될까. 머스크는 이미 그 답의 방향을 암시하는 문장을 약관 속에 넣어두었다.


스타링크 서비스 약관에는 "화성을 자유로운 행성으로 규정하며 지구에 기반을 둔 어떤 정부도 화성 활동에 대한 권위나 주권을 가지지 않음을 인정한다."는 조항을 숨겨두었다. 기업이 그 공간의 질서까지 상상하고 있다는 뜻이다.


17세기 동인도회사가 본국의 통제를 벗어나 식민지에서 자체 법과 질서를 행사했던 장면이 떠오른다. 항로와 무역 거점을 장악한 기업은 자연스럽게 행정과 사법의 권한까지 확장했다. 스타링크 약관 속 문장은 그 역사적 장면을 되풀이하는 듯하다.


의미심장한 지점은 동인도회사가 결국 국유화되었다는 것이다. 기업의 확장이 국가의 통제 문제와 재정 부담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역사는 반복해 왔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또 하나의 항로가 열리는 순간을 지나고 있다.
하지만 역사는 그 항로가 늘 희망이 아니라 욕망의 다른 이름이었음을 증명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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