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에서 하는 인사 "바이, 썸머"
늘 내 안에서는 여름이 맴돌았다. 한때 ‘여름’을 필명으로 쓰기도 했다. 가장 애정하는 계절이었기에, 망설임 없이 내 이름으로 삼았다. 지금처럼 날씨가 하루에도 몇 번씩 변덕을 부릴 줄은 미처 몰랐던 시절이었다.
8월의 끝. 여름이 떠나는 건 아쉽기도, 내심 후련하기도 했다. 여름은 왜 늘 증발하듯, 휘발하듯 사라질까. 숨 막히게 뜨겁다가도 금세 비를 뿌려내곤 했다. 무엇이든 잘 자라나는 계절이지만, 동시에 마음조차 쉽게 상해버렸다.
‘관샤(观夏)’. 이름 그대로 ‘여름에게’. 중국의 니치 향수 브랜드다. 브랜드 이름이 여름이라니, 그 이름에 현혹되지 않을 수 없었다. 로레알이 일부 지분을 투자했고, 세 명의 창업자 중 한 명은 한국인 디자이너인 잘 나가는 브랜드다. 상하이 우캉루에 자리한 플래그십 매장은 이솝과 논픽션 사이 어딘가의 느낌적인 느낌이었다.
향마다 각각 다른 돌을 연상케 하는 디자인도 감각적이고, 직원들의 편안한 응대에 눈치 보지 않고 시향 할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처음엔 가장 잘 나가는 향인 오스만투스를 집어 들었지만, 결국 ‘누드(Nude)’라는 향에서 “이거다!” 하는 전율을 느껴 구입했다. 한국에는 매장이 없어서 못내 아쉬워 오스만투스는 고체 향수로 구입했다. 결제는 네이버 페이로 환전 없이 할 수 있고, 한화로 총 약 16만 원 정도.
마침 그날은 중국의 밸런타인데이라는 정인절(情人节)이었다. 사랑하는 이에게 마음을 주는 날. 그렇다면, 응당 나에게 여름을 선물을 해야지.
신이 나서 내 것만 잔뜩 사들고 보니, 문득 동거인이 떠올라 미안해진다. 이번 여행을 함께하며 고생만 시켰다.
내가 비행기 안에서 유심을 교체한다고 나대다가 잃어버렸을 때도, 한인마트에서 주문한 퀵서비스 수령을 못해서 시간을 낭비했을 때도(카운터에 있었는데), 맛집이라고 데려간 식당에 허탕을 쳤을 때도, 알리페이가 없으면 신용불량자나 마찬가지인 중국에서 알리페이를 못하는 나를 보며 그녀는 이를 악물었지만 끝내 뒤치다꺼리를 해주었다.
덕분에 나는 늘 구김살 없이 용감할 수 있었다. 그 용기를 아낌없이 빌려준 동거인에게, 고마움을 가득 담아 마음을 보낸다. 내 것만 산 건, 뚜이부치.
간혹 달릴 때면 기대 없이 드물게 맑고 고요한 한강을 마주한 순간이 있었다. 이유 없는 기쁨이 스며들던 때였다. 그때 알았다. 늘 내 안에서 여름은 맴돌고 있었다. 여름. 단 한 번으로 끝나는 기억일지라도 아쉬워하지 않기로 했다. 무엇을 기다리는 희망 없이, 가볍게 일어서기를. 시간은 낭비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겪어나가는 것일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