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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박한 광고

백인 우월주의 논란 ‘아메리칸 이글’과 K-POP의 반격

by 빵부장


최근 미국에서 아메리칸 이글의 청바지 광고가 거센 논란을 불러왔다. 할리우드 배우 시드니 스위니가 등장하는 광고는 “청바지는 부모에게서 물려받는다. 머리색, 성격, 눈동자 색까지 결정한다”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해, “내 청바지는 파란색이다”라는 대사로 끝낸다. 영어 단어 genes와 jeans의 발음을 겹쳐 쓴 이 장면은 단순한 언어유희를 넘어, 청바지를 곧 ‘백인 유전자’와 동일시하는 듯한 메시지로 읽혔다. (화면은 생략한다)


사진 = MBN 화면 캡쳐


기름을 부은 건 정치권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스위니가 공화당원이라면 광고는 완벽하다”며 그녀를 감싸 안았다. 실제로 스위니는 지난해 플로리다 공화당원으로 공식 등록했다. J.D. 밴스 부통령은 “평범한 미국 소녀가 광고를 했다는 이유로 나치라고 몰아간다”며 진영 싸움으로 끌어들였다. 미 국방부 X에는 청바지를 입고 비행기에서 내려오는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사진과 함께 “국방장관은 좋은 청바지를 가졌다”는 글을 올렸다. 이렇게 2025년 청바지 전쟁 시작되었다.


사진 = 하이브 그룹 캣츠아이와 GAP의 캠페인 'Better in Denim'


여기에 예상치 못한 반격이 등장했다. 글로벌 걸그룹 KATSEYE(캣츠아이)갭(GAP)과 함께 내놓은 캠페인 영상이 8월 19일 공개되고 사흘 만에 5개 플랫폼에서 5천만 뷰를 돌파하며 화제를 모은 것이다. 영상 초반부터 다양한 멤버와 댄서들이 다양한 컬러의 청바지를 입고 춤춘다. 단일 백인 모델만 내세운 아메리칸 이글과는 정반대의 이미지다.


캣츠아이는 한국의 하이브가 미국 게펜 레코드와 협업해 만든 그룹이다. 멤버 구성을 보면 라틴, 남아시아, 동남아, 흑백 혼혈, 유라시아, 한국인까지 지구촌을 아우른다. 케이팝 그룹 중 드물게 커밍아웃한 멤버도 두 명이나 있다. 출발은 한국이었지만, 결과물은 국적과 인종을 초월한 다채로운 조합이다.


2003년 히트곡인 켈리스의〈Milkshake〉는 주제곡으로 탁월한 선곡이었다. “Damn right, it’s better than yours / I could teach you but I’d have to charge” (그래, 네 것보다 낫지. 가르쳐줄 수도 있지만 돈을 내야 해) 이 도발적인 가사는 아메리칸 이 글을 향한 직설적 ‘문화적 응징’처럼 들린다.


미국 다인종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브랜드가 ‘유전자=백인’을 연상시키는 메시지를 던졌다는 사실은 가볍게 넘길 수 없다. 더구나 스위니가 공화당원이라는 정치적 배경과, 공화당 지도부의 적극 옹호까지 겹치면 이는 우연이 아니라 기획된 어그로라고 읽힐 수밖에 없다.


반대로 갭과 캣츠아이는 지금 사회에서 결핍된 가치를 정조준했다. 그들이 내세운 다양성과 포용은 마치 슈퍼볼 켄드릭 라마의 공연 '감다살(감 다 살았네 라는 뜻)’의 정점에 있듯 한방 제대로 먹였다. 마 이번 캠페인은 여러 형태로 유행이 될 것이라 예상한다.


한편, 케이팝의 범주를 어디까지 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늘 있지만, '이건 아냐' '이건 전통적이지 않아' 라며, 엄격할 필요 없이 오히려 그 범주를 확장하는 게 맞지 않을까? 인도네시아 그룹 NO NA처럼 그 무엇보다 케이팝다운 그룹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성과 포용이라는 가치를 미국 정치가 거부하는 시대에, 한국이 오히려 정치·문화적 공백을 파고들어 다양성의 상징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내 알고리즘만 보더라도 유튜브에는 조나단, 풍자, 김똘똘, 콰니 같은 인물들이 등장하며 한국의 열린 문화를 일상적으로 보여준다. 은 변화 같지만 조금씩 우리 사회는 진일보하고 있다.


다시 정치 이야기로 돌아가면, 트럼프야 원래 그렇다 치더라도, J.D. 밴스 부통령의 행보는 더욱 위선적이다. 그는 한때 무신론자였다가 2019년 정치적 계산 끝에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그리고는 ‘성경과 가족주의에 기반한 전통주의자’를 자처하며 보수 유권자들의 표를 얻고 있다. 하지만 가톨릭이 강조하는 가치가 무엇인가. 바로 인류의 보편적 존엄, 약자에 대한 연대, 인종과 국경을 넘어선 보편적 구원이다. 그럼에도 밴스는 백인 중심주의를 옹호하고 다양성과 포용을 공격하는 데 앞장선다. 이는 가톨릭의 핵심 가치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는 지저스에게 조만간 호되게 혼날 것이란 사실이다. 예수(Jesus)는 중동에서 태어났고, 백인일 리 없다. 그런 예수가 과연 ‘유전자(genes)’를 ‘청바지(jeans)’로 치환하는 천박한 언어유희를, 그리고 그것을 정치적 무기로 삼는 이들을 용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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