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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가위질

임재범, 이 밤이 지나면(1991)

by 빵부장
MBC〈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266회가 방송, 임재범이 부르는 '이 밤이 지나면'


"이 밤이 지나면 우린 / 또다시 헤어져야 하는데 / 아무런 말없이 이대로 / 그댈 떠나보내야만 하나"


좋아하는 노래가 없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유난을 떨어온 사람으로서, "음악은 인간이 만들어낸 최초의 타임머신"이라는 말에 감탄을 자아냈다. 노래를 들으면 언젠가 들었던 그 시간과 습도까지 생생히 되살아난다. 특히 한강을 뛰며 듣는 임재범의 '이 밤이 지나면'은 여름밤 서울의 정취를 완벽하게 담아낸 시티팝의 정수다.


MBC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266회가 방송되던 8월의 토요일 밤, 잠실올림픽공원 수변무대에 서른 살 임재범이 무댜에 섰다. 검은 셔츠에 벨트, 그리고 청바지. 치명적인 비주얼, 무대 뒤편으로 스며드는 서울의 야경, 이 밤이 지나면 여름이 가버릴 것 같은 그 순간.


지금은 명곡으로 불리지만, 락을 사랑했던 팬들은 '락을 하는 멋진 형'이 부드러운 선율에 몸을 맡기는 모습을 못마땅해했다. 하지만 대중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새로운 임재범에게 열광했다.


항간에 가수 본인이 이 곡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럴 만한 아픈 기억이 있다. 1993년, 공연윤리위원회는 이 곡을 폴 영의 〈Everytime You Go Away〉 표절작이라고 판정했다. 임재범은 방송 3사 출연 정지라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유사함과 표절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는 전문가들조차 의견이 갈리는 복잡한 영역이다. 하지만 당시엔 심의기구가 일방적으로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공연윤리위원회는 박정희 군사정권이 1963년 검열 근거를 개정헌법에 둔 이후 모든 공연물을 '가위질'하는 기구였다. 민간자율기구를 표방했지만 실상은 문화공보부 산하의 '관반민반' 조직이었다. 긴급조치 시기에 발족한 이 기구가 진정한 자율심의기구일 리 없었다. 다행히 1996년 헌법재판소로부터 영화 사전검열 위헌 판결을 받으며 36년 만에 사실상 해체됐다.


34년이 흐른 지금, 이 노래는 여전히 시간의 때를 타지 않는다.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적 감정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서른 살의 임재범이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적 미남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당시 누가 이 노래가 이렇게 오래도록 사랑받을 것이라고 예상했을까.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우리는 어느새 1991년 8월 24일 토요일 밤으로 돌아간다. 내가 태어나지 않았던 때라 돌아간다는 표현이 맞으려나. 뭐 어떤가. 음악이야말로 인간이 만든 가장 완벽한 타임머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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