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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밝은 빛과 따사로운 볕을

조식을 나누는 즐거움

by 나조식


출근시간에 쫓겨 조식을 만들고, 먹다 보니 늘 시간이 아쉽다. 그래서 가끔 시간에 구속되지 않고 느긋하게 조식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시간이 좀 더 있었다면 이것도 만들어 볼 수 있었을 텐데, 저것도 만들어 볼 수 있었을 텐데, 이 책은 혹은 이 영화는 이 조식과 함께 페어링 하면 좋았을 텐데 같은 아쉬움들이다. 물론 주말이나 휴일에 여유롭게 조식을 즐기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막상 모든 여건이 갖춰지고 나면 내가 언제 그런 생각을 했지 싶게 행동하는 게 인간이다.


그런데 보다 더 근본적인 아쉬움의 원인이 따로 있으니 바로 '빛'이다. 포스팅을 위해서 완성된 조식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을 남기는데 이때 '빛'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같은 시간, 같은 조식이라도 날씨와 계절에 따라 집안에 들어오는 '빛'에 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날은 오랜만에 정말 마음에 드는 조식을 만들었는데도 지옥에서 온 최후의 조식으로 보일 때도 있고, 다른 어떤 날은 어머니의 손 끝에서 피어난 따뜻한 위로의 한 그릇으로 보이기도 한다.


물론 빛 외에 사진을 찍는 각도도 중요하다. 보통 정면 사진에는 조식의 높이와 층이 잘 드러나기 때문에 약간의 소스가 흘러내리는, 먹음직스러운 모습을 강조할 때 사용한다. 정면 사진을 통해서 겹겹이 쌓인 포테이토 튜나 그라탱의 속내를 보여줄 수 있고, 층층이 쌓인 반미 샌드위치의 속재료를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도 있다. 평면 사진은 어떨까? 흔히 항공샷 혹은 버드뷰라고 부르는 이 각도는 조식의 바로 위에서 수직으로 내려다보며 찍을 수 있기 때문에 한 접시에 담긴 조식의 구성을 보여줄 때 탁월하다. 특히 다채로운 색감과 대칭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자 할 때 좋다. 다양한 색감의 샐러드, 맛있게 구워 다양한 토핑을 얹은 피자를 떠올려 보자. 그럼에도 가장 촬영 빈도가 높은 건 역시 45도 측면 사진이다. 정면과 평면 사진의 장점을 모두 가진 이 각도는 입체감을 살릴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실제로 사람들이 사물을 바라보는 각도와 비슷하기 때문에 다른 각도보다 좀 더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물론 이외에도 접사로 조식의 강렬한 느낌을 강조할 수도 있고, 창문 밖 너머의 빛을 배경에 두고 역광으로 사진을 찍어 감성적이고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조식 사진의 희비를 판가름하는 것은 역시 ‘빛‘이다. 그리고 ‘볕‘이다. 보통 아침 7시 전후에 조식을 먹고 촬영을 하는데 여름에는 해가 일찍 뜨기 때문에 창 밖에서 들어오는 빛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에 드는 사진과 영상 촬영이 가능하다. 하지만 점차 밤이 더 길어지는 추분을 넘어서면 별도의 조명이 없는 촬영은 힘겨워진다. 결국 조식의 촬영이라는 관점에서 춘분과 추분은 희비가 교차하는 시기가 된다. 물론 조식에 빛만 담기는 건 아니다. 거기엔 볕도 머문다. 어느 날 아침, 조식으로 준비한 살구 샌드위치 위에 얹은 민트와 그 민트에 떨어진 빛은 민트의 푸르른 컬러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그리고 따스한 볕은 거기에 생동감을 부여한다. 햇빛이 만들고 햇볕이 하는 일이다.


일 년 가운데 절반의 아침은 만족스러운 빛과 볕을 기대할 수 없어서 결국 조명기기를 마련했다. 문제는 이 조명기기로 어디에 얼마만큼의 빛을 비추는 게 좋을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았다. 가령, 조식의 전방 45도, 상위 45도 각도에서 빛을 비추어 한쪽에 그림자가 생기게 하는 방법이 있다. 이렇게 하면 조식에는 뚜렷한 명암이 생기고 극적이면서 깊이 있는 연출이 가능해진다. 이른바 ‘렘브란트 조명’이다. 반면에 ’플랫 조명’처럼 조식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방향에서 골고루 빛을 비추어 그림자를 최소화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방법도 있다.


그럼 조식에는 어떤 조명이 더 적합한 걸까? 뚜렷한 빛과 그림자가 남아 뭔가 사연이 담겨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을 주는 '렘브란트 조명'일까? 아니면 오늘의 조식을 더 골고루 잘 보여줄 수 있는 '플랫 조명'일까? 단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조식의 종류의 따라,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그리고 오늘의 기분에 따라 '렘브란트 조명'을 켤 때도 있고, 플랫 조명이 필요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기쁨의 존재 증명이 슬픔을 통해 가능한 아이러니한 상황처럼 전혀 뜻밖의 조명이 적합한 순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밝은 빛과 따사로운 볕 아래서 ‘별일이 없으면 날마다 어제와 다른 조식‘이라는 사적인 기록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이제

살아가는 일은 무엇일까

물으며 누워 있을 때

얼굴에

햇빛이 내렸다


빛이 지나갈 때까지

눈을 감고 있었다

가만히

(한강, 회복기의 노래)


오븐에 구운 단호박 샐러드를 준비했던 날 아침, 실로 오래간만에 밝은 빛과 따사로운 볕 아래서 조식을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시의 한 구절처럼 눈을 감고 빛이 지나갈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231kcal 오븐에 구운 #단호박샐러드


재료

단호박 1/2개, 민트, (리코타치즈 딥) 리코타치즈 2T, 올리브오일 1T, 레몬주스 1T, 마늘 1t, 소금, 후추, 다진 파슬리


조리

1. 단호박은 흐르는 물에 씻어서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2. 오븐 팬 위에 단호박을 얹고 올리브오일, 소금 뿌려서 200도 오븐에 30분 굽는다.

3. 리코타치즈 2T, 올리브오일 1T, 레몬주스 1T, 마늘 1t, 소금, 후추, 다진 파슬리 넣고 골고루 섞는다. 흡사 블루치즈 같다.

4. 접시에 단호박과 3의 리코타치즈 얹고 올리브오일과 건빵의 별사탕 같은 느낌으로 민트 조금 얹는다.


#조식 #레시피 #미라클모닝 #단호박


단호박 샐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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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