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식을 나누는 즐거움
고백하자면 매일 조식을 두 번 만들어 먹고 있다. 첫 번째 조식은 생각했던 조식을 만들기 위해 레시피를 정리하면서 상상으로, 두 번째 조식은 정리한 레시피를 바탕으로 조리를 한 후 실제로.
첫 번째 조식은 스마트폰 메모장에서 시작한다. 이 조식을 만들기 위해서 어떤 식재료가 필요할지, 어떻게 조리할 것인지, 볶을지 삶을지 이도저도 아니면 생으로 먹을지 등을 일목요연하게 적는다. 소금, 후추 아니면 파프리카 파우더, 큐민 등 어떤 양념이 필요할지, 출근 시간에 늦지 않도록 정해진 시간 내에 만들어야 하니 조리 시간은 얼마나 걸릴지도 생각한다. 그리고 상상 속에서 맛을 본다. 심지어 상상 속에서 잘라먹고 뜯어먹고 파헤쳐 먹고 잘근잘근 씹어 먹는다.
메모장 속 상상을 현실로 옮기면서 두 번째 조식이 시작된다. 적어둔 레시피 대로 식재료를 다듬고 조리해서 실제로 맛을 보는 시간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메모장에 적은 그대로 이루어지진 않는다. 삶으려고 한 채소는 이런저런 이유로 뜨거운 물에 데칠 수밖에 없게 됐고 그것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찜기에 넣어둔 시간이 부족했던 탓인지 조리를 마쳤더니 형태가 유지되지 않고 흘러내린다. 다져서 토핑으로 사용한다.
어떤 날은 간을 보니 짜길래 물을 조금 붓고 다시 간을 봤는데 이번에 싱겁다. 아니다. 뭐랄까? 괴랄한 맛이다. 안타깝지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여유는 없으니 치킨 스톡 1t로 수습한다. 만능 치트키다. 물론 원재료의 깊은 맛은 사라지고 없다. 초장맛으로 먹는 브로콜리 같지만 어쩔 수 없다. 아무튼 이렇게 하루 두 번 조식을 먹는다.
그럼에도 비교적 꽤 많은 시간 공을 들여서 레시피를 정리한다. 매일 조식을 만들어 먹는 입장에선 레시피란 하나의 사적 기록물에 불과하지만 소셜미디어에 공유된다면 분명히 남들에게 이 레시피가 도움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식재료의 모든 조리 과정을 문법에 맞춰 가능한 한 상세하고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문법에 맞춰 쓸 때 빌런 같은 존재들이 있다. 대표적인 게 ‘채’와 ‘체’의 쓰임새다. 당근 라페를 만들면서 ‘채칼’로 ‘체’를 썬다고 해야 하는 것인지, ‘체칼’로 ‘채’를 썬다고 해야 하는 것인지 늘 혼동된다. 푸딩 같은 계란찜을 만들기 위해서 과연 계란물을 ‘채’에 걸러야 하는 것인지, ‘체’에 걸러야 하는 것인지 늘 알쏭달쏭하다. 시옷받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북어국’이 맞는지, ‘북엇국’이 맞는지, ‘어제밤’이 바른 것인지 ‘어젯밤’이 바른 것인지 쓸 때마다 확인하게 된다.
레시피를 정리할 때는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오탈자를 확인하지만 내용의 정확성과 문맥의 일관성도 검토한다. 가령, 나물이나 채소를 양념과 함께 가볍게 섞을 때는 ‘무친다’라고 하고 재료와 양념을 좀 더 적극적으로 골고루 섞을 때는 ‘버무린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육류나 생선을 간장, 설탕 등의 양념에 넣고 중불에서 익힐 때는 ‘조리기’라고 하고 물기가 거의 없어질 때까지 오래 끓여서 양념이 재료에 깊이 배게 할 때는 ‘졸이기’라고 한다. 어디 그뿐인가? 끓는 물 위에 재료를 올려놓고 증기로 익힐 때는 ‘찌기’라고 하지만 재료에 양념을 하고 물을 조금 넣어 뚜껑을 닫고 오래 익힐 때는 ‘찜’이라고 쓴다.
물론 매일 공들여서 레시피를 정리하고 있지만 레시피에 너무 의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소금, 지방, 산, 불’을 쓴 사민 노스랫(Samin Nosrat)은 적정량의 소금(Salt), 식재료의 맛이 잘 배어 나오게 하는 지방(Fat), 음식에 균형과 생기를 불어넣는 산(Acid)과 적정 시간의 열(Heat), 이 네 가지만 잘 활용하면 굳이 정해진 레시피 없이도 얼마든지 훌륭한 요리가 가능하다고 했다.
조식을 먹고 출근하는 길, 지하철 한쪽 구석에 서서 조식 포스팅을 시작한다. 스마트폰의 메모장을 열어서 미리 작성해 둔 레시피를 흝어본다. 입 안에 남은 여운도 되새긴다. 오늘은 유독 바뀐 내용이 많은 것 같다. 조리 과정을 떠올리며 레시피를 수정하고 혹시나 잘못된 표현은 없는지 교정과 교열을 본다. 그렇게 방금 먹었던 조식의 맛과 향, 질감을 다시 떠올린다. 입맛을 다신다. 아, 그러고 보니 나는 하루에 세 번 조식을 먹고 있었구나. 소복소복 살찌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여름, 시트러스의 계절이다. 넷플릭스 다큐로 먼저 알게 된 사민 노스랫(Samin Nosrat)의 소금, 산, 지방, 불 - 산(Acid)편엔 ‘산은 음식에 균형과 생기를 불어넣는다’는 대사가 나온다. 실제로 오렌지나 식초 같은 산성 재료는 느끼함을 줄여주고, 음식의 맛을 상쾌하게 만들어 준다. 소화에도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산화를 막는 효과도 있다. 그래서 오늘은 시트러스로만 달린다.
아, 비트는 ‘채칼’로 썬다.
비트와 그릭요거트를 곁들인 오렌지와 자몽 #시트러스샐러드
재료
자몽과 오렌지 1개, 비트 1/4개, 그릭요거트 2T, 피스타치오 조금, 올리브오일, 커민, 소금, 후추
조리
1. 비트는 껍질 벗기고 채칼로 얇게 썰어서 커민, 소금, 올리브오일 넣고 버무린다.
2. 그레이터로 오렌지와 자몽 껍질 갈고 올리브오일, 소금, 오렌지, 자몽 짜서 넣고 섞어서 드레싱을 만든다.
3. 그릭요거트에 소금, 후추 넣고 섞는다.
4. 접시에 그릭요거트, 오렌지와 자몽 과육 얹고 2의 드레싱 얹은 다음 다진 피스타치오 얹는다.
Inspired by @ellenikatalanos
#조식 #레시피 #미라클모닝 #시트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