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조식, 너의 이름은.

조식을 나누는 즐거움

by 나조식


2024년 7월 12일, 1115번째 조식다이어리에 나는 이렇게 썼다. “매일 아침 고민한다. 한 그릇의 조식을, 어떻게 하면 길지도 짧지도 않게, 어그로를 끌기 위한 표현은 자제하고 가능한 한 쉽고 담백하게, 그러면서도 매력을 한껏 드러낼 수 있게 명명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가령, ‘초록빛 애호박이 허브의 숨결을 머금은 오일 드레스 속에서 실키하게 반짝이고, 팬에서 구워낸 크래쉬드 월넛은 골든 텍스처로 럭셔리한 터치를 더해 썬 키스드 애프터눈처럼 은은하게 퍼지며, 레몬주스와 딜이 어우러진 비네그레트가 리프레쉬한 맛을 선사하는 오르조‘와 같은 보그체 만연한 이름 대신에 오늘 조식은 #애호박오르조 입니다.” 이렇게 말이다.


조식 포스팅의 첫 단계는 조식의 이름을 짓는 일이다. 그러니까 이건 정체성에 관한 얘기다. 예전에 김춘수의 시, ‘꽃’을 읽으면서 배운 기억을 더듬어 보면 내가 무언가에 이름을 붙이고 그 이름을 부를 때 그 무언가는 비로소 꽃이 된다. 그리고 주방에선 한 그릇의 ‘조식’이 된다. 무언가에 이름을 붙이고 그 이름을 다른 이들과 공유할 때 비로소 그 이름으로 소통이 가능해진다. 그런데 이 조식의 이름을 짓는 일이 생각보다 참 어렵다.


흐르는 물에 브로콜리를 뒤집어서 깨끗하게 씻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서 달군 팬에 올리브오일 두르고 소금과 후추를 뿌려서 구운 이 브로콜리 조식의 이름은 ‘브로콜리 구이’도 되고 ‘브로콜리 샐러드’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다. 심지어 ‘브로콜리 볶음’도 자연스럽다. 브로콜리 위에 그라나파나노 치즈를 갈아서 올렸다면 ‘그라나파다노 치즈를 곁들인 브로콜리 샐러드’나 ‘그라나파나노 눈꽃 브로콜리 구이’가 될 수도 있고, 네이밍에 감성 한 스푼을 추가해서 ‘화이트 스노우 브로콜리’가 될 수도 있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이름으로 어떤 이미지를 구축하면 매력이 따라오는 것처럼 조식도 어떤 이름을 붙이느냐에 따라 그 조식의 매력과 기대감이 증폭되고 자연스럽게 식욕을 불러일으킨다. 그냥 초콜릿 케이크보다는 ‘벨벳 초콜릿 케이크’가 더 매력적이고 호박 수프보다는 ‘크리미 한 호박 수프’가 좀 더 흥미로운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지난 몇 년간의 조식 생활을 통해 깨닫게 된 그리고 사용 중인 조식 네이밍의 몇 가지 방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느타리버섯 구이, 프라이드 그린토마토, 대구찜과 같은 조리법 + 식재료 혼합형이다. 가장 일반적이고 직관적인 방법이다. 외국에서는 대체로 조리법 + 식재료 순서로 이름을 짓는데 구운 닭은 Grilled Chicken 혹은 Roast Chicken, 튀긴 닭은 Fried Chicken 같은 식이다. 중국어로 삶은 고기는 수육(熟肉)이 되고, 볶음밥은 차오판(灼飯)이 된다. 반면에 한국어와 일본어는 식재료 + 조리법 순서로 이름을 짓는다. 달걀부침, 닭구이, 제육볶음 같은 식이다. 일본어로 계란말이는 다마고+야키(玉子巻き)가 되고 곱창찜은 모츠+니(モツ煮)가 된다.


두 번째, 식재료 나열형이다. 조식에 들어간 주요 식재료를 나열하는 방식인데 꽤 직관적이다. 피스타치오 버섯 사워도우, 수란 간장 계란밥, 계란 오이김치말이 국수 같은 식이다. 물론 이름이 길어지고 주재료만 부각된 나머지 부재료는 드러나지 못하고 소외된다는 단점이 있긴 하다.


세 번째, ‘뉴욕 치즈 케이크’나 ‘이탈리안 가지 피자’와 같은 지역 강조형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역이 강조된다는 점이다. 지역적 배경을 강조하면 무언가 좀 더 특별해지는 느낌이 있다. 물론 그건 조식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토마토, 엔초비, 올리브오일을 기본 재료로 하는 니스(Nice) 스타일의 샐러드에도 니스식 샐러드(Salad Niçoise)란 이름을 붙이는 순간 지중해의 햇살과 니스 해변의 바다 내음 가득한 바람이 콧구멍을 강타하는 아주 특별한 공감각적 경험이 가능해진다. 안동 간고등어, 순창 고추장, 통영 멸치, 제주 보말 등 지역명을 언급하는 순간 우리는 그 지역으로 순간 이동을 경험할 수 있다. 물론 원산지 표기형과는 구분해야 한다. 국내 유통되는 대부분의 연어의 원산지가 노르웨이라고 해서 노르웨이산 연어 덮밥, 노르웨이산 연어 샐러드가 각광을 받을 것 같지는 않다.


네 번째, 감성형 네이밍이다. 그 이름만으로도 이른 아침의 기운이 물씬 느껴지는 ‘봉주르 프렌치토스트’, ‘굿모닝 콜리플라워’, ‘아침 햇살 가득 애호박 샐러드’식의 작명이나 ‘활기찬 하루를 시작하는 ‘에너지 뿜뿜 땅콩버터 바른 사과’나 ‘나야, 들기름 막국수’처럼 건강한 조식을 지향하는 타깃의 니즈나 혹은 그 시절의 감성(이라 쓰고 유행)에 편승하거나 호소하는 네이밍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감성형 네이밍을 좀 더 상업적으로 진화시킨, 다섯 번째 어그로형이다. ‘지난 5년의 조식 중 압도적으로 독보적인 당근 샐러드’처럼 순수한 호기심을 자극하거나 ‘당신만 몰랐던 양배추 스테이크’처럼 불안감을 자극함으로써 선택을 유도하는 네이밍이다. ‘냉장고에 봄동이 있다면 꼭 따라 해 보세요: 봄동 파스타’와 같은 어그로형으로 보기에는 다소 순한 맛의 네이밍도 있다. 하지만 어그로형의 목적은 보는 이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므로 ‘건강에도 좋은데 맛도 좋은, 미친 초간단 파스타’처럼 강력한 한 방이 필요하다. 물론 제목과 실제 내용이 다를 때 생기는 후폭풍은 감수해야 한다. 아무튼 결국 어그로의 기술은, 누가 더 맛있게 호들갑을 떠느냐가 관건인데 내게 그 방면의 재주는 없는 것 같다.





진짜 매일 아침 고민한다. 한 그릇의 조식을, 어떻게 하면 길지도 짧지도 않게, 어그로를 끌기 위한 표현은 자제하고 가능한 한 쉽고 담백하게, 그러면서도 매력을 한껏 드러낼 수 있게 명명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오늘의 결론은 #애호박오르조 였다.


재료

애호박 1/2개, 오르조 1/2컵, 다진 마늘 1t, 소금, 후추, 허브, (드레싱) 올리브오일 3T, 화이트와인 비니거 1T, 홀그레인 머스터드 1t, 레몬주스 1T, 다진 딜 조금


조리

1. 호두 한 줌 오일 없이 팬에 굽는다.

2. 끓는 물에 소금 넣고 오르조 반 컵 넣고 포장에 표기된 시간(보통 10분~15분)만큼 익힌다.

3. 애호박 썰어서 달군 팬에 올리브오일 두르고 다진 마늘 넣고 소금, 후추, 허브 넣고 굽는다.

4. 구운 애호박 위에 오르조와 레몬주스 1T와 딜을 더한 비네그레트 드레싱을 부어 골고루 섞는다.

5. 접시에 담고 손으로 으깬 호두를 얹는다.


Inspired by @lucy_and_lentils


#조식 #레시피 #미라클모닝 #애호박

애호박오르조



keyword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