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식을 나누는 즐거움
매일 아침 ‘별일이 없으면 날마다 어제와 다른 조식을 만들어 먹는다’는 선언은 조식을 공유함으로써 완성된다. 조식을 온라인 세계에 공유한다는 건 영화 매트릭스(Matrix)에 나오는 빨간 약과 파란 약의 세계를 동시에 경험하는 것과 비슷하다. 영화 속에서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건네는 빨간 약의 세계는 원하는 곳까지 갈 수 있는, 진실을 경험할 수 있지만 혼돈과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현실의 세계다. 반면 파란 약의 세계는 모든 기억을 잊고 진실은 덮어둔 채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면서 살 수 있는, 안빈낙도의 삶을 추구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안정된 가상의 세계다.
매일 아침, 집을 나선 후 9시 무렵 회사에 도착하기까지 약 60분의 시간을 버스와 지하철에서 보낸다. 그리고 나는 이 시간 동안 대중교통 안에서 조식의 이름을 짓고, 레시피를 쓰고, 가끔은 그날의 감상을 덧붙이고, 조식을 먹기 직전에 찍어 놓은 몇 장의 사진 가운데 쓸만한 것을 골라 약간의 보정을 한 뒤 온라인 플랫폼에 업로드한다. 그건 장마철 버스 안, 비에 젖은 옆 사람의 우산이 내 바짓가랑이를 적시는 상황에서도, 지하철 내부와 외부의 급격한 온도 차이로 인해 쓰고 있는 안경에 김이 서려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는 겨울에도, 회사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반드시 오늘의 조식이 온라인에 공유된다는 얘기다. 빨간 약의 세계다.
반면 이렇게 온라인에 공유된 조식에서 시작되는 파란 약의 세계는 빨간 약의 세계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건 어쩌면 쿡방 내지 푸드포르노 세계를 지배하는 몇 가지 법칙과도 맞닿아 있다. 일단 조식에 사용되는 재료는 특이하거나 아예 평범해야 한다. 우리가 손쉽게 조식으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밥, 국, 반찬보다는 샤프론, 필로 페스트리, 두부피처럼 조식으로 접하기 어렵고 심지어 평소에도 먹기 힘든 식재료가 등장할 때 이 세계의 대중들은 열광한다. 하지만 반대로 평범하기 짝이 없는 재료를 사용한 조식이 각광받기도 한다. 버섯, 당근, 시금치처럼 혹은 햇반이나 소면처럼 어느 집의 냉장고나 팬트리를 열더라도 바로 튀어나올 법한 평범한 식재료여야 대중들로 하여금 ‘아, 나도 할 수 있구나’하는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조리법이 있다. 이 파란 약의 세계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조리법보다는 좀 더 독특한 조리법이 각광을 받는다. 가령 새송이버섯을 칼로 써는 대신 포크로 찢어서 촉촉한 질감을 가진 닭고기처럼 연출하는 조리법이나 으깬 두부에 강황, 소금, 후추로 간을 해서 마치 스크램블 에그와 비슷한 질감과 맛을 구현하는 특이한 조리법에 이 세계의 대중은 열광한다. 수박을 두껍게 썰어 소금, 간장, 참기름으로 간해서 구워 누가 봐도 먹음직스러운 참치회로 변신시키는 조리법, 하다 못해 블렌더에 콜리플라워를 갈아서 하얀 쌀밥 같은 비주얼은 연출해야 대중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파란 약의 세계에서 외연을 확장시키고 영향력을 강화시키는 중요한 방법은 좋아요, 댓글 그리고 공유의 합, 이른바 PIS(Post Interaction Score)를 증대시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의 이면에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 맺기라는 사회적 행동이 깔려있다. 아니 그건 빨간 약의 세계에서나 통용되는 원리가 아닌가 되물을지 모르겠지만 이 파란 약의 세계 역시 빨간 약의 세계에서 살던 사람들이 설계하고 운영하는 세계이므로 댓글과 DM으로 인사를 건네고(안녕하세요?), 적절한 피드백을 제공하고(감사해요), 찾아가서 칭찬할 때(너무 예뻐요) PIS 지수가 올라간다는 빨간 약 세계의 기본 원리가 그대로 적용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래서 지금까지 얘기했던 모든 것을 요약한, 파란 약의 세계를 지배하는 단 한 개의 절대가치는 바로 알고리즘이다. 그리고 파란 약의 세계에 있는 모든 구성원들의 행동, 관심사, 상호작용을 분석해서 각 개인에게 최적의 경험을 제공하는 알고리즘은 이 세계에서 신과 같은 존재다. 그래서 많은 컨설턴트들은 자신이 이 신계의 진리를 꿰뚫고 있다며, 자신을 믿고 따르면 당신도 금세 백만 팔로워를 가진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다고 속삭인다. 그렇다면 파란 약의 세계에서 조식의 맛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맛볼 수 있는 방법도 없다. 그저 먹음직스럽게 보이면 된다. 오와 열을 맞춰 반듯하면 좋다. 예쁘고 잘 생기면 된다. 한 마디로 인스타그래머블 하면 된다. 그렇게 알고리즘이라는 유일신을 섬기면 그만이다.
어느 날 갑자기 팔로워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확인해 보니 찍어 놓은 영상 소스의 일부분가 사라져서, 과연 이 릴스를 이대로 올려야 할 것인가 한참 망설였던 베지롤이다. 하지만 조회수는 무려 276만을 기록했다. 그리고 알고리즘의 은사를 받은 탓인지 그로부터 약 일주일간 업로드 한 조식 콘텐츠들은 평균 조회수 백만 회를 훌쩍 넘겼다. 다른 릴스와 비교해서 그다지 특별할 게 없었는데 말이다. 물론 약 일주일 천하로 끝났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이다. 하긴 신의 뜻을 어찌 알겠는가.
분명히 베지롤인데 이렇게 칼로리가 많이 나갈 일인가 싶었다. 확인한 결과 칼로리 지분의 거의 절반은 타히니 소스 몫이다. 타히니 소스,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다.
후무스 스프레드로 배가 터지도록 속을 채운 약 864kcal #베지롤
재료
상추 혹은 로메인 등 잎이 넓은 채소, 파프리카 1/2개, 적양배추 1/4개, 당근 1/2개, (후무스 스프레드) 병아리콩 125g(한 컵 반), 타히니 소스 5T, 마늘 1개, 레몬주스 1T, 소금 1/2T과 올리브오일 2T
조리
1. 블렌더에 삶은 병아리콩 125g(한 컵 반), 타히니 소스 5T, 마늘 1개, 레몬주스 1T, 소금 1/2T과 올리브오일 2T 넣고 곱게 간다. 올리브오일은 두 번에 나눠 붓는다. 후무스st 인데 농도 조절을 잘 못한 것 같다. 아무튼,
2. 상추, 로메인처럼 입이 넓은 채소를 물기 제거하고 바닥에 깐 뒤, 1의 후무스 스프레드, 적색 양배추, 파프리카 얹고 동그랗게 마는데 후무스 스프레드가 삐져나온다. 재료를 라이스페이퍼에 얹고 말아서 수습한다.
Inspired by 서정아의 건강밥상
#조식 #레시피 #미라클모닝 #후무스스프레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