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공고에서 시작된 시간

알지 못하고 지원했다

by 구르는타조알

2022년 9월이었다.


출근하면 채용공고 사이트를 먼저 열어보는 게 어느새 아침 루틴이 되어 있었다.


내가 속해 있던 연구원은
한동안 시끄러움의 중심에 있었고,
내가 맡고 있던 사업도 그 영향을 받고 있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나라일터(안사혁신처 채용 플랫폼)를 열었다.


스크롤을 내리다가
익숙한 지역 이름에서 손이 멈췄다.


임기제공무원 채용공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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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나고 자란 곳에서 밥벌이를 하며 사는 것.

그래서 그 공고를 클릭했다.


처음 마주한 건 직무 설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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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정활동 및 자료 수집·조사 지원
- 공청회·세미나·토론회 개최 및 자료 작성 지원


문장은 있었지만 장면은 떠오르지 않았다.


무슨 일을 하는 자리인지,
어디까지가 역할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해 법령 개정으로
새로 만들어진 직무라는 사실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내가 알고 있던 의회는 아주 단편적인 수준이었다.


내 사업 담당 주무관이

예산 시즌이면
예산편성요구서를 쓰느라 사업 현황을 요청받고,


행정사무감사 시기가 되면
내가 맡은 사업이 언급될지

전년도 실적과 정산과 관련해서

지적받은 것은 없는지 신경을 쓰고,


연말 행사 때는
공직선거법을 조심하는 것.


그 정도였다.


그래서 공고문을 읽을 때도
직무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응시자격요건이었다.


관련 분야 실무경력.


그 문장을 기준으로
내가 해온 일을 하나씩 떠올렸다.


행정 업무를 했고,
예산을 다뤘고,
회계 정산을 했고,
보고서를 썼다.
토론회도 진행해봤다.


문장에 나열된 조건과
내 경험을 맞춰보는 일은 가능했다.


역할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조건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지원은 해볼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나머지는
서류를 쓰면서 이해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 내가 읽고 있었던 건
직무 설명이 아니라
조건 목록에 가까웠다.


무엇을 하는 자리인지보다
들어갈 수 있는지부터 확인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 있는 구조는 보이지 않았다.

구조가 보이지 않는데 무슨 자신감으로 도전했는지도 모르겠다.


시작은 그렇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