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수행계획서는 왜 쓰는 것일까

아직 속하지 않은 조직을 쓰다

by 구르는타조알

공고문을 출력해 두고 여러 번 읽었다.

자기소개서 외에 별도의 서류가 있었다.


입사 후 수행할 직무에 대한 계획을 작성하라는 안내였다.

경험하지 않은 업무를, 미리 설계해야 했다.


자기소개서는 익숙했다.

지나온 시간을 정리하고, 방향을 덧붙이는 문서였다.


직무수행계획서는 달랐다.

과거가 아니라 앞으로 맡게 될 시간을 써야 했다.

임기제 채용에서 이 문서는 형식에 가깝지 않았다.

공고문을 어떻게 읽었는지,
직무를 어디까지 이해했는지,
그걸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는지를 같이 묻고 있었다.


즉시 투입을 전제로 하는 구조에서
‘계획’은 의지보다 준비도를 드러내는 방식에 가까웠다.


작성 요령을 여러 번 읽었다.

자유 양식이지만 목표, 전략, 계획을 포함하라는 안내가 있었다.

분량은 5매 이내였다.


image.png


나는 아직 그 조직의 구성원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미 안에 있는 사람처럼 문장을 써야 했다.


먼저 목차를 나눴다.

문서를 쓸 때는 항상 순서를 먼저 정하는 편이었다.

앞에 둘 것과 뒤에 둘 것을 나누면서 구조를 잡았다.

형식은 자기소개서보다 사업계획서에 가까워졌다.

비전과 목표를 두고, 전략과 과제를 이어 붙였다.



Ⅰ. 서론
Ⅱ. 직무수행 추진전략
Ⅲ. 직무수행 추진계획
Ⅳ. 결론 및 제언



의회 홈페이지를 먼저 찾았다.

의장, 의원 구성,

조례가 만들어지는 방식,
예산이 통과되는 절차를 하나씩 확인했다.


직무는 문장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이미 움직이고 있는 절차 안에 놓여 있었다.


최근 몇 년의 조례를 정리해
지역의 변화와 함께 놓아 보았다.

의회의 시간이 지역의 시간과 어떻게 겹치는지 보고 싶었다.


<인구 증가 대비 ○○○의회 조례 제·개정 현황(자치법규정보시스템, 통계청 자료 직접 재구성)>


직무수행계획서는

채용 이전에 쓰이지만

이미 조직의 언어로 작성되는 문서였다.


나는 그때 아직 속하지 않은 곳의 문장을 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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