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라a May 16. 2023

마음은 솜털 같아서

시튼 동물기를 읽고 대성 통곡한 날

  명작을 읽으라던 엄마의 잔소리는 대를 이어 손녀에게 전해졌고 그렇게 잠자기 전 우리-혹은 나는-긴 글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한다.

 늑대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이리의 발음조차 어색했던 첫 페이지를 지나 로보와 블랑카의 이름에

익숙해질 60페이지 즈음, 아이들의 숨죽여 듣는 공기에 압도되어 책 다음 페이지로 계속해서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현상수배된 로보를 잡기 위해 사냥꾼들이 얼마나

갖은 수를 써대는지, 독과 덫을 피해 무리를 이끄는 로보에게서 영웅심이라도 느낀 것일까. 그의 유일한 암컷인 블랑카에게 전해진 사랑을 느끼고 있던 것일까. 방법마저 잔인하고 야비한 사냥꾼의 덫을 요리조리 지혜롭게 피하는 이리들을 어느덧 응원하고 있었나 보다.

 블랑카가 덫 주변에 서성이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아이는 책을 읽기 싫다 했다. 하지만 곧 이 위험이, 이 조마조마함이 어떻게 마무리가 되었을지를 알아야 한다며 계속 이어나가길 원했다. 그리고 결국 블랑카가 덫에 잡혔을 때, 아이는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름다웠던 블랑카의 목에 올가미가 씌워졌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그녀의

숨이 끊어졌을 때, 아이들은 통곡을 했다.


이 책, 계속 읽어도 되나?

 책을 읽던 엄마도 눈물이 고였고 이 잔인하고 슬픈 장면이 아이에게 계속되어도 되는 건지 멈춰야하는

것인지 고민했다. 그리고 토닥였다. 분명, 이 멋진

이리들은 책 속의 세상에서 존재하지만 소설가가 만들어서 쓴 글이니 그리 슬퍼 말라고. 다만, 그 슬픔과 아픔이 전해지는 것이 어떻게 끝나고, 왜 이런 책을 썼는지 아는 게 좋지 않겠냐고 손을 잡고 토닥였다.

 1800년대 후반, 시튼 동물기를 읽은 사람들은 동물도 사람과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한다. 지금 시대에야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애완동물의 개념에 익숙한 우리에게 동물 학대를 넘어 잔악무도한 사냥꾼들을 동물단체에서 모두 기소할 판이다. 하지만 저 시대 배경에서 동물과 가축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시튼 동물기가 전하는 메시지는 큰 의미가 있다.

 대성통곡은 멈추었지만 흐르는 눈물을 멈추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결국 블랑카의 죽음으로 냉철함을 잃은 로보는 덫에 걸리고, 그 우두머리 이리의 명성을 존경이라도 하는 듯, 사냥꾼은 죽이지 않고 데려오지만 음식도 거부한 체 블랑카의 곁으로 가고 만다.

 이렇게 끝이 난 시튼 동물기의 첫 이야기. 우리는 책을 통해 처음으로 대성통곡을 했고 책을 통한 슬픔이 얼마나 강렬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다시는

이 책을 읽지 않으리라는 잠깐의 울부짖음? 에도, 우리는 후편에서 등장하는 은빛 까마귀와 고양이 키티를 만나기로 약속하고 90페이지 분량의 책 읽기를 마무리했다.

 이렇게 책을 통해서 못된? 사람을 향한 분노를

느껴보기도 하고, 사랑하는 이리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느껴보기도 했고 대장의 죽음에 마음이 착잡해지기도 했다. 또한 악당 이리무리였지만 이들의 죽음이 타당한 것인지. 과연 이들을 죽인 사냥꾼들은 악당이기민 한 것인지에도 이야기해 볼 것이 많은 책이다.

작가의 이전글 [어머니의 식탁] 마음 포근 미역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