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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신 Feb 06. 2022

뜨개질이 좋은 이유

양말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뜨개질 시작한 계기

내 친구들은 좋아하는 연인을 위해 한번쯤 손수 만든 목도리를 선물한 적이 있단다. 그런데 나는 없었다. 살아오면서 '한번 쯤'이라고 표현할 만큼 꽤 다수가 뜨개질을 해왔는지 나는 정말 몰랐다. 내가 뜨개질을 시작하기 전까진 말이다. 


나는 추위를 많이 탔다. 그리고 작년에 다녔던 회사 사무실은 유독 추웠다. 12월을 맞이하여 나에게 주는 선물로 사무실에서 덮을 담요를 직접 떠보기로 했다. 손수 만드는 걸 좋아하기에 흥미로웠고 기대가 됐다. 


실제 뜨개질을 해보며

스마트스토어에서 뜨개질 세트를 주문했다. 재료뿐만 아니라 영상 강의도 함께 포함되어 있단다. 아 맞다 21세기지. 유튜브시대이지. 충분히 가능하겠다. 그런데 콘사는 뭐고..바늘은 포함된건가? 돗바늘은 뭐고 저건 왜 필요하지. 하. 나같은 생초보는 없는것인가. 진짜 나만 모르는 세계였나보다. 용어 설명이 좀 더 자세했으면 좋겠는데 나같은 초짜는 없었나보다. 뭐. 아쉬운 사람이 더 알아보는 수밖에. 사람들 후기, Q&A, 상세설명을 빠짐없이 꼼꼼히 읽고 난 후 모르겠는건 그냥 다 샀다. 배송 받아놓고 재료 하나 없어서 시작 못하긴 싫었다. (역시 돈이 최고다.)  


성인 하반신을 넉넉하게 덮는 크기의 담요 상품은, 배송비 포함 6만 7천원에서 이것저것 옵션 추가하여 8만원이 훌쩍 넘었다. 어라 예산 초과...이지만 모처럼 뽑은 칼 무르기 싫어서 고대로 질렀다. (역시 돈이 최고다.2) 

뜨개질의 시작은. 생소했고 비쌌다.


계속 생각나는 이유

뜨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정말 실도 바늘도 처음 쥐어보기에, 내가 하는게 맞는건지 틀린지도 모르고 했었다. 유튜브를 슬로우로 틀어놓고 반복하길 몇 번, 그렇게 해도 또 틀리더라. 나는 멍청이인가 왜 보고도 못 따라하는가 자책도 했다. 

그렇게 122코짜리 담요를 나는 30단을 채 넘기지 못하고 풀고 다시 뜨는 걸 4번이나 했다. 9mm 바늘과 두꺼운 실로 떴기에 뜬 양이 꽤 됐다. 푸는 것도 일이었다. 포기할 법도 했다. 

엉키는 거 푸는 것도 일이었다.


그런데도, 뜨개질이 찾아지더라. 왜 그런지 곰곰히 생각해봤다.


1. 성취감이 있다.

바늘 두께가 두꺼워지면 실도 같이 두꺼워진다. 내가 시작한 9mm바늘은 두꺼운 편해 속했고 그래서 2,3단만 떠도 금방 길이가 늘어난다. 별로 한게 없는것 같은데도, 나중에 보면 '와 내가 이만큼이나 했네. 이만큼이나 해내다니.' 하며 내 자신이 기특해졌다. 나에게 후하지 않은 나를 칭찬할 수 있는 상황이 생겼다. 긍정적이고 기뻐지는 순간이 자주 왔고, 좋았다.


2. 선택이 명쾌해진다.

참 애석하게도, 뜰 때는 모르지만 뜨고 나서 틀린 부분을 발견한다. 아..여길 틀렸네. 하는 순간이 뜨개질 초반에 엄청 자주 왔다. 그 순간마다 바늘을 놓고 먼 산을 보며 한숨을 쉬고 잠깐 휴식을 가졌다. 그동안 고민한다. 어떻게 틀린걸 고치지. 그런데 사실 이 고민은 필요가 없었다. 애초에 나에겐 2개의 대안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1. 틀려도 그냥 고 2. 풀고 다시. 누가 그랬다. 인생은 고 아님 스톱이라고. 딱 그 상황에 마주하게 됐다. 뜨개질 할 수 있는 시간은 가고 있고 나는 풀지 말지만 선택하면 된다는 상황이 몇번 있다보니. 점점 선택하는 데 시간이 줄어들게 됐다. 어, 여기 틀렸었네. 풀어야지. 하고 망설임없이 주저하지 않고 선택하는 경험을 했다. 


잡생각이 많고 걱정이 많은 나는 선택이 쉬운적이 없었다. 신중한 게 나쁜건 아니지만 그만큼 시간을 날리는 것이기도 했다. 뜨개질을 하며 빠르게 선택하는 연습을 나름 해볼 수 있었다.


3. 유용한 짜투리 시간

뜨는게 좀 능숙해질 때 쯤, 시간을 재봤다. 1단 뜨는데 5분이 걸린다. 담요는 150단 정도 떠야 했다. 부지런히 떠야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었다. 그래서 뜨개질 전용가방에 넣고 온갖 대기시간 동안 뜨기 시작했다. 카페가서도 떠보고 요가가기 전 시간이 남아 차 실내등 불빛에 떠보기도 했다. 1단만 떠도 완성에 큰 보탬이 됐기에 날릴 시간이 없었다. 시간이 길면 긴대로 짧으면 짧은대로 뜨다보니 내가 원한다면 원하는 것을 어디에서든 언제든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제 시간이 없다는 건 핑계다.


4. 실력이 느는 재미

중간 정도 뜨고 있을 땐, 틀리면 이제 풀지 못한다. 풀고 다시 뜨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그때부턴 좀 연구를 했다. 왜 잘 못 뜨게 됐는지, 잘 뜬 곳이랑 잘 못 뜬 곳은 어떻게 다른지. 그때부턴 좀 실험을 했다. 실을 풀어서 잘 뜬 곳처럼 될 때까지 계속 수정해봤다. 그렇게 한 번 고쳐보고, 나머지 틀린 곳도 하나 하나 수정할 수 있게 됐다. 이제는 도안이나 영상 없이도 쑥쑥 잘 떴다. 와. 완전 일취월장했네. 자신감이 생기니 잘 못 뜰까 하는 걱정도 없어지고 나를 믿고 참 재미있게 떴다.




지금 뜨고 있는 것

그렇게 담요를 완성했던 경험이 나에겐 참 힘이 되고 좋았었나보다. 

모처럼 자신감과 용기가 생기는 영역이었기에 새로운 것도 해보면 잘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목도리를 시도했다. 담요에서 배웠던 겉뜨기 안뜨기와 꽈배기 무늬넣는 패턴을 내 나름 만들었다. 한 180cm정도 되는 긴 목도리를 떠서 친구에게 선물했다. 그리고 지금은 양말에 도전하고 있다. 처음보는 뜨개질 방법과 패턴을 배우는데, 이번건 확실히 어렵다. 바늘도 실도 얇아서 초집중 해야할 뿐더러 아직 수정을 할 자신이 없다. 이것도 한 6번째 뜨고 있는것 같다. 중간에 바늘도 뿌러뜨려 먹고. 



그래서, 뜨개질이 좋다.

나이가 들수록 호기심이 없어진단다. 내 생각엔 용기도 같이 없어지는것 같다. 사회생활을 하며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좌절한 경험이 어렸을 적보다 많이 쌓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패 확률이 적은 선택을 하게 되고 보수적여진다. 어쩌면 겁쟁이가 되어가는 것일 수도 있다.


아직 뜨개질 고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좋다. 이전 경험이 나에게 계속 힘을 실어준다. 그렇게 진절머리나게 틀려도 보고 선택을 해봤다. 선택은 둘 뿐이다. 틀리면 풀고 다시하거나 고치면 된다. 그렇게 완성이 된다. 

하면 된다, 될 때까지 하면 된다는 믿음이 생겼다. 망설일 게 없다. 


시작은 뜨개질이겠지만. 이게 분명 나비효과를 가져올거라고 믿는다. 뜨개질이 뭐라고. 이런 인생의 교훈을 주나 싶지만, 이렇게 사소한 것이 나에게 큰 가르침을 주고 다른 도전과 시작을 해볼 수 있는 용기를 주기에, 그래서 내 삶이 조금은 더 다채로워지고 충만해지기에 이 경험이 너무 고마울 따름이다.


-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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