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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 Apr 02. 2022

윌리엄 윌버포스를 생각하는 아침

별처럼 빛나는 이름들


영화 <어메이징 그레이스>의 주인공, 윌리엄 윌버포스(1703-1791)에 대한 책을 읽고 있다.

목사님의 지난  설교 , 세상  그리스도인의 소명의식에 관한 말씀을 하시면서 언급한 윌버포스. 대학  윌버포스에 대해 많이 들어는 봤어도 그의 저작이나 그에 대한 글을 찾아본 적은 없었다. 그때만 해도 아마 내게는 너무도  사람처럼 느껴졌겠지. 윌버포스, 조나단 에드워드, 본회퍼와 같은 이들 모두 내게는 '위인전' 속의 사람들처럼 멀게 느껴졌으니까.


그러나 사회에 나와서는 그들이 살았던 세상이 우리가 살아갈 세상이고, 그들이 겪었던 문제가 바로 우리의 문제임을 깨달아간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새삼스럽게, 날마다 배운다.


지난 주에 보았던 박영선 목사님은 영상을 통해 고난의 삶을 살아가는 신자의 실력에 대한 말씀을 하셨다. 믿음, 소망과 같은 단어가 아닌 '실력'이라는 단어가 너무나 새롭게 다가왔다. 이 실력이라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너무나 중요한 것이구나 싶은 것.


이 실력은, 단지 일을 잘하고 인간 관계를 잘 맺고 돈을 잘 버는 그런 눈에 보이는 실력이 아니라, 참으로 사람이 어떤 인격과 성품으로 이 세상에 반응하고 인내하며 제대로 살아나가는, 전인격적인 총체를 이야기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그러한 실력을 갖추는 일이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삶은 한 번뿐이고, 내게 닥치는 일들은 예상할 수 없고, 우리는 부딪치고 깨지면서밖에 배울 수 없는 것이 인생이기도 하므로. 우리는 아무리 책을 많이 읽고 아무리 많이 공부하며 대비해도 결국 맨몸으로 세상을 마주대할 수밖에 없는 것.


그런데 좋은 소식은, 그런 인생을 먼저 살아간 선배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 역시도 평범한 인간이지만, 남들과는 다른 길을 선택하고 평생에 걸쳐 진리의 삶을 강구하며 세상에 그 빛을 비추려 애썼던 사람.


윌버포스도 그런 사람이었다.


윌버포스로 검색해보니 몇 권의 책이 나오는데, 그에 대해 자세하게 잘 쓰여진 책은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일단 입문서(?) 정도로 구입해 보았는데, 윌버포스가 직접 쓴 글과 다른 이가 쓴 글이 혼재되어 있다. 그리고 윌버포스의 생애에 대해 설명한 저자가 누구인지도 밝혀져 있지 않은 점은 좀 의아하다. 아무튼, 윌버포스에 대해 가볍게 시작하기로는 쉽게 쓰여져서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전에 알지 못했던 흥미로웠던 점 중 하나는, 윌버포스가 소위 말하는 'party people'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말하고 사람들을 끊임없이 만나는 것을 너무나 좋아했다. 정치인이 된 것도 그런 그의 성정과 명예욕이 만난 결과이기도 했던 것 같다(이 부분은 다른 평전을 더 읽어봐야 명확해질 것 같기는 하지만).


그리고 윌버포스가 평생 육체적 고통이나 신경쇠약으로 고생했다는 것도 어쩐지 위로가 된다. 20대에는 나도 매일 밤늦게까지 외출하고 심지어 친구들 집에서 외박(?)을 일삼으면서도 지치지 않고 살았었더랜다. 한데 직장생활을 하고 아이들을 낳아 키우면서 체력이 차츰 고갈되고, 종종 근육통에 시달리며, 하루 에너지를 어느 정도 쓰고 나면 금방 방전되어 침대에 몸을 맡겨야 하는 즈질체력이 되어버린 것.


그렇다면 심력이라도 탄탄해야 하는데 어쩐지 속절없이 눈물도 많아지고, 불면의 밤을 헤매기도 하고, 때로 쓸데없는 근심에 시달리기도 하니 말이다.


그런데 윌버포스도, 아니 이미 바울이 말하지 않았던가. 그에게도 '육체의 가시'가 있었다고. 불굴의 사도였던 그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무려 세 번을 그것을 없애달라고 간절히 기도했겠는가 말이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세 번을 거듭해서. 그럴 정도로 그에게는 절실하고 아픈 문제였을 것. 그러나 세 번의 기도 이후에야 그는 겨우 깨달았다. 그 연약함으로 인해 오히려 자기 안에서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실현된다는 것을. 보통 많은 설교에서 인간의 연약함을 소재로 이 결론까지 쉽게 훌쩍 뛰어넘어버리는데, 사실 여기에는 이 결론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그런 사투를 벌이는 과정이 소거되어 있다.


그럼에도 놀라운 것은, 그러한 아픔에도 불구하고 윌버포스는 평생에 걸쳐 그의 소명에 귀를 기울이고 그 길을 향해 걸었다는 것이다. 처음 노예무역 및 노예제도 폐지 법안을 입안하고, 그것이 실제로 폐지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27년이었다. 그가 죽음에 이를 때 즈음에 실현된 일이었다.


그런 윌버포스도 중간에 흔들리기도 하고, 이 법안의 임무를 다른 이에게 넘기려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는 평생 '화를 잘 내는' 자기의 기질과도 싸워야 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그는 부르심에 따라 살았고, 자기의 사명을 완수했다. 그의 주변에는 끊임없이 반대자들이 있었고, 길에서 그를 향해 침을 뱉는 사람도 있었으며, 윌버포스에게 그의 모든 노력이 결국 헛된 것으로 끝날 것이라 저주하는 시를 써서 보낸 사람도 있었다(아아, 사람이란 정말 악랄하지 않은가). 윌버포스 주변에는 그를 위해 권총을 장전하고 함께해준 이도 있을 정도였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간다.


그러나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생각을 지지하고, 믿음으로 함께하며, 노예 제도만이 아니라 교도소의 수감자들,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헌신하고 뜻을 모아 부르짖은 '클래펌회'의 성도들이 있었다. 윌버포스가 혼자였다면 아마 이 길을 완주하지 못하지 않았을까.


그리스도인으로 참된 회심을 경험하고 국회의원으로서의 삶을 떠나야 하나 고민했던 윌버포스에게 그 자리를 지키기를 권면한 존 뉴턴('찬송가 Amazing Grace'를 만든 그 사람이다. 이 찬양은 윌버포스의 생애를 다룬 영화의 제목이 되기도 했다). 믿음과 진리에 대해 토론하고 격려한 존 웨슬리. 그리고 클래펌회의 동료들.


윌버포스가 주인공인 영화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너무 보고 싶은데,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곳을 찾지 못했다(혹시 아는 분이 계시다면 알려주세요!). 아쉬운 대로,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에릭 메택시스(지금 읽고 있는 본회퍼 평전의 저자이기도 하다)가 쓴 저작을 읽어봐야겠다(그러고 보니 이 책의 제목도 '어메이징 그레이스'다).


많은 사람들이 노예제를 폐지한 미국의 링컨은 알아도, 윌버포스는 그만큼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그와 그의 동료들의 평생에 걸친 헌신이 있었기에 영국에서는 사람이 사람을 물건처럼 부리는 사악한 제도가 먼저 폐지될 수 있었다.


그러나 영국에서도 그 과정에서 수많은 진통을 겪어야 했고, 노예제도는 사라졌어도 인종차별, 각종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는 우리에게 여전한 과제로 남아 있다. 그리고 세상의 끝에 이르기 전에는 우리 앞에 언제나 다양한 과제들이 있겠지.


지혜 있는 사람은 하늘의 밝은 별처럼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길로 인도한 사람은 별처럼 영원히 빛날 것이다.

_다니엘서 12:3


'별처럼 빛나는' 이들이 걸었던 길을 상기해본다. 그리고 별처럼 빛날 수는 없어도, 아주 작은 불빛을 내가 선 자리에서 밝히는 꿈을 꿔 본다. 오늘 꿈꾸고 내일 다시 좌절하더라도. 오늘 불을 밝혔다가 내일 아파하더라도. 결국 그 길이 우리가, 내가 가야 하는 길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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