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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 Aug 05. 2021

[2020 제주여행] 곽지해수욕장 + 달리책방

제주에서 이제 겨우 첫째날


방학이 끝나고 나면 지금처럼 매일같이 글을 쓸 수 있는 여유도 좀처럼 없을 것 같아 쓸 수 있을 때 가열차게(?) 써보고 있다. 어떤 분이 온라인에도 몇 시간씩 다듬어서 글을 쓴다는 포스트를 보고 '나는 너무 막글을 막막 발행하고 있나, 하는 반성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갈고 닦아 뭔가 손색 없는 글을 써서 발행해야 하나, 하는 부담감도 같이 생겨 글을 쓰는 것이 마냥 편안해지지가 않더라.


물론 아무 글이나 마구 써도 안 되겠지만, 일단 글은 많이 쓸수록 좋아진다는 생각을 해봤다. 혹 출간까지 염두에 두고 글을 쓴다고 해도, 온라인 글쓰기와 종이책으로 발행하는 건 그 호흡이 다를 수밖에 없고,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매력을 지닌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필드에서 쓰는 프로 작가들도 인터넷 연재글을 모아 책을 낼 때는 글들을 매만지고 다듬어서 낸다고 하니 말이다. 물론 그런 분들이야 손 댈 부분이 많지는 않겠지만.


글쓰기를 너무 만만하게 보는 것도 문제겠지만, 너무  중압감을 가지면  글자도 시작을 하기 어렵게   같다. 일단은 다다익선, 조금 설익은 글이라도 가볍고 경쾌한 마음으로 통통거리며 써보는 것도 괜찮은 일일  같다.




제주에서 차를 렌트하고 일단 가까운 이마트를 찾았다. 내 차가 아니라 시트를 맞춰보고, 핸들을 이리저리 움직여서 양손에 익게 자리를 잡아보고, 룸미러와 사이드미러를 샥샥 지잉지잉 맞춰본다. 처음엔 낯설었지만 이내 익숙해진다.


운전을 처음 배우고 면허를 딴 건 첫째아이가 첫돌을 갓 넘긴 겨울이었다. 아이가 태어나니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교통수단이 절실해지고, 그래서 여전히 면허가 없는 남편을 닦달하다가, "그러면 니가 따지 그러니" 하는 어머님 말씀에 마치 전구에 불이 들어오듯 '아 그러면 되겠구나!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하면서 바로 면허 학원에 등록하고 도로주행시험 두 번째만에 합격하는 쾌거(?)를 이뤘다. 원래 첫 번째 시험으로 끝내려고 했는데, 학원을 코앞에 두고 앞차를 따라 비보호 좌회전을 하려는 순간 시험관이 브레이크를 콱 밟으면서 실격임을 알렸다. "그렇게 가면 무조건 앞 차랑 부딪힙니다" 아, 좌회전 신호만 있는 길이었어도 한 번에 합격하는 건데(덕분에 비보호 좌회전 할 때는 항상 이분의 말을 떠올리게 되는 건.. 좋은 거겠지요). 여러분, 비보호 좌회전을 타이밍 잘못 맞춰 하게 되면 감점도 아니고 기냥 그 자리에서 실격이랍니다. 면허 시험을 앞두고 계신 분들은 꼭 유념하세요.


그렇게 면허를 따고 바로 우리의 첫 차를 구입하고, 나 포함 우리 가족 셋이 열심히 타고 다니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둘째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 차를 바꾸게 되어 이제는 넷이서 그 차로 전국 방방곡곡을 신나게 다니고 있다.


아직까지 남편은 면허가 없다. 운전이 그다지 즐겁지 않다고 해서 굳이 권하지 않는다. 운전을 즐거워하는 내가 하면 되니까. 나는 운전을 정-말 좋아한다. 장거리도 마다 하지 않고(체력만 된다면 어디든 갈 준비가 되어있다) 버킷리스트 중에는 미국 대륙에서 자동차 모드를 오토에 맞춰놓고 끝없이 신나게 달려보는 것도 있다. 국제면허증을 발급받아 엄마, 딸과 함께 일본에 가서(아, 이 3대 모녀 여행기도 언젠가 써봐야 할 텐데) 오른쪽 운전석에 앉아 반대쪽 차선으로 달리며 일본 소도시며 시골을 여행하는 것도 해봤다.


반면 나는 요리를 하겠다고 주방에 들어가기만 해도 스트레스를 잔뜩 받는 유형의 사람이다. 그리고 남편은, 각종 요리 프로그램을 섭렵하며 다양한 재료와 방법으로 실험하듯 요리를 해보는 사람(와, 정말 신기하다). 내가 아이들 키우면서 거둬먹였을 때는(?) 좀처럼 입이 짧아 잘 안 먹는 줄 알았던 아이들이 아빠가 요리를 시작하자 엄청 잘 먹으며 무럭무럭 자라기 시작했..(눈물난다 여기까지만 쓰자)


각자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끼리 만나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요리와 살림에 능하지 못하다고 남편이 나를 타박하지 않는 것도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신혼 초에야 티격태격 니가 하네 내가 하네 아침은 내가 하니 저녁은 니가 해야지 하면서 내가 집안일 50%보다 더 하고 있지는 않은가 가늘게 뜬 눈으로 서로의 액션에 대해 재어보던 때도 있었지만. 시간은 그런 것도 다 무디게 해줍디다. 지금은 각자 알아서 자기의 맡은 일을 수행하는 더없이 좋은(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파트너가 되어 있지요.




무슨 이야기를 하다 여기까지(수업하다가도 종종 이 삼천포의 덫에 빠지곤 한다. '어머, 근데 샘이 무슨 얘기 하다 여기까지 왔지?' 하면 아이들이 '(...) 아, 그 얘기 했었잖아요!' 하고 짚어준다. 하긴 그뿐이랴, '선생님, 이거 두고 가셨어요' 하면서 마이크며 분필이며 교무실로 가져다주기도 여러 번.. 자자 이것도 여기까지만 합시다). 그래, 렌트카 이야기를 했었지.


이때의 경험으로, 올해 어머님 칠순 기념 제주 여행을 할 때는 렌트한 차에 올라타자마자 바로 필요한 것들을 내 몸에 촥촥 맞춘 후 저언혀 당황하지 않고 어색해하지도 않고 바로 차를 샥샥 잘도 몰았다. 어머님께서 뒷좌석에서 감탄을.. 하하하.


그렇게 차를 몰아 마트에 가서 이것저것 필요한 물품들을 샀다. 에어비앤비로 예약해둔 숙소의 호스트분께 어메니티에 관한 것들에 대해 질문도 하면서(아직도 첫 번째 여행지는 시작도 못했군). 거기서 자동차에 꽂아둘 핸드폰 거치대랑 운전석에 깔 방석도 구입했다(그렇다 나는 쟈근 몸을 가져서 운전할 때 방석이 반드시 필요한 사람. 자동차 회사 관계자 분들은 쟈근 사람을 위해 시트를 좀더 높이까지 움직이도록 개발해주시면 어떤가요).


그리고 드디어! 마트를 떠나 숙소에 가기 전 그냥 가기 아쉬우니 들른 곳이 바로 곽지 해수욕장. 곽지에는 이 날 딱 한 번 들르고 이후에는 못 가봤네.


곽지 해수욕장 인근 식당 쪽에서 바라다본 해변. 아, 이렇게 보기만 해도 행복해진다.


이곳은 우리의 점심식사지로 선택한 제주에서의 첫 번째 식당. 처음인 만큼 기억에 더 오래 남은 듯. 곽지 인근의 '심바카레'라는 곳이다. 뭔가 사장님 부부이신지, 커플이신지, 동업자이신지(아마 부부라고 말씀하셨던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 가물가물하네) 하는 두 분이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아주셨다. 두분의 분위기와 스타일이 범상치 않았고 생글생글 웃으며 주문을 받으셨던 기억. 뭔가 식재료에 자부심을 갖고 계셨던 것으로 기억하기도 하고. 실제로 음식도 꽤 깔끔하고 맛이 있었다(정작 음식 사진은 안 남겼나보다).


이곳에도 키우는 강아지(라고 하기엔 큰 개였지만 그래도 우리 눈엔 강아지는 다 귀여운 강아지)가 있었는데, 그 강아지 이름이 심바였던가. 아이들이 보고싶어 했는데(우리 아이들은 그야말로 세상의 모든 동물들을 집으로 데려와 키우고 싶어하는 동물 러버들. 맷 데이먼이 괜히 동물원을 산 게 아니었다는 걸 아이들을 키우며 알게 되었지) 강아지는 해변에 산책을 나갔다고 하셨던 것 같고.


남편과 아이들도 나만 두고 음식이 나오기까지 산책을 나갔다. 우리 여행에 늘상 있는 패턴인데, 식당에 가고, 자리를 잡고, 메뉴를 주문하고, 나만 두고 셋은 밖으로 나간다. 이건 나 혼자 편히 쉴 시간을 주려고 특별히 나를 생각한 것이라기보다, 음식이 나오기까지 좀처럼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들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민폐를 최대한 덜 끼치게 하려는 남편의 노력이기도 하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다들 알겠지만, 아이가 있는 가정에서 외식을 할 때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몇 가지 있다. 징징대는 아이를 달래보는 것, 말로 안 통하면 눈빛과 목소리로 으름장을 놓아보는 것, 장난감으로 회유하는 것, 가끔은 색칠공부 놀이로 입을 막는 잠잠해지게 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 이것도 저것도 다 안되면... 비장의 무기 그거슨 스마트폰. 이 모든 과정을 A to Z로 다해본 남편은 그냥 아예 처음부터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버리는, 다른 여지 없는 선택을 하기로 한 것.


아무튼 그래서 나는 홀로 귀여운 식당 여기저기를 기록으로 담아두었다.

아, 물질하는 저 귀여운 옷이라니 너무 귀엽지 않습니까. 정말 제주제주합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넷이서 같이 바닷가로 나갔다.

아아 정말이지 제주의 풍경은. 너무 아름다워서 할 말을 잃었다. 내가 바다와, 하늘과, 구름을 얼마나 좋아하고 사랑하는지 새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사방이 탁 트여 있어서 둥근 하늘이 넓게 보이는 그 풍경. 서울이라고 없는 하늘이 아니고 없는 구름이 아닌데. 건물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서 도무지 이 크고 둥근 하늘과, 해와, 구름을 바라다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이곳 제주에는, 그런 자연으로 그득 차 있다. 바다에서도, 오름에서도. 어디에서나 하늘과 구름과 물과 바람이 그득그득 마음 안으로 밀물처럼 밀려들어온다. 아, 나는 제주를 사랑하게 되겠구나. 자꾸만 제주에 가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제주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처음 제주를 찾았을 때는, 바람이 혹독한 겨울이었고, 그런데 우리는 차도 없었고, 면허도 없었고, 온통 황량한 제주를 걷고 또 걸었던 그런 기억들이 전부였어서. 물론 그건 그 나름대로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 있지만. 여름에 처음으로 찾은 이곳에서 나는, 마치 제주에 처음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달까)



정말이지 가슴을 탁 트이게 해주는 풍경들. 사진으로만 봐도 이렇게 설레니, 가서 또 보면 얼마나 좋을까. 태양도 제주에서는 달랐다. 저 장엄함을 보면서 어찌 이 세상과 생명의 경이에 감격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제주에서는 몇 번이고 보고 또 보아도 절대로 질리지 않을 풍경이었다. (보고 있나, 동네 친구 E 그리고 B. 두 가족은 우리만 빼놓고 현재 제주에 있다 흙흙. 나도 데려가 흙흙)


그렇게 제주의 바다와 하늘에 푹 빠져 있었다. 남편은 아이들을 데리고 바다 안쪽으로 데려가 보고. 나는 풍경을 마음껏 보면서 사진을 찍어보고. (그런 나에게 남편은 아이들에게 말하곤 한다 "우리 집 감성은 엄마 한 사람으로 족해")



그리고 해변을 나와 찾은 곳은, 거기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달리책방 :) 달리책방을 생각하면 만면에 미소가 지어진다. 이곳 지기님이 너무나 따뜻하고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책방 문 닫기 30분 전이었는데도, 친절하고 살뜰히 뜨내기 방문객을 맞아주셨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엄마 편하게 책 보라고 하자면서 둘째를 마당으로 데리고 나가 물총에 물을 채워 쏘면서 놀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ㅠ.ㅠ 다시 생각해도 이런 마음 씀씀이가 넘흐넘흐 감사하다.. (여행 다녀와 인스타에 후기를 남겼더니, 지기님이 찾아와 또 훈훈한 댓글도 남겨주셨던 기억) 덕분에 나는 책 구경도 책방 구경도 실컷 할 수 있었다. (사진은 모두 허락을 받고 촬영하였습니다)


빈티지 라디오와 음반들.


레트로한 책방 풍경. 제주에는 우쿨렐레나 기타를 함께 놓아둔 책방이나 가게가 많더라.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풍경.


책방에 민폐를 끼칠까 염려되던 아들내미를 이끌고 뒤뜰에서 물총 쏘게 해주신 지기님 감사합니다!! >_<

테이블 앞에 앉아 여유있게 책을 볼 수 있으면 좋았을 테지만, 기다리는 가족들을 생각하면 그럴 수가 없다. 이나마 기다려주는 남편에게 늘 고마울 수밖에.


여기에서 고른 책은 『집을 고치며 마음도 고칩니다』라는, 오래된 집을 만나 고치고 매만지면서 삶을 가꾸어나간 이야기가 담긴 책. 계산할 때 지기님께서 우주의 별들이 담긴 스티커도 함께 챙겨주셨다(으아니 내가 우주덕후인 걸 어찌 아시고!).

달리책방 앞에 놓인 풍경.


나와서도 물총을 놓지 못하는 아들.


이렇게 제주에서의 첫날이 시작되었다. 앞으로 매일매일, 나름대로 열심히 써보겠습니다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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