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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 Nov 19. 2021

세 가지 기쁜 소식

생의 어떤 장면들


# 1


우리반 고입 첫 합격생이 나왔다!

얼마 전에 함께 원서를 썼던 그 친구.


원서를 제출하고, 지망하는 고등학교에 직접 내방해서 계획서를 쓰는 전형을 치르고 난 후 1차 합격자 발표가 있었다. 합격자 발표일, 5시쯤 명단이 뜬다고 해서 학생에게 말했다.


-합격자 발표나면 샘한테.. 아니다, 연락하고 싶으면 해줘. ^^

-네, 그럴게요!


그런데 그날, 하루가 다 가버리도록 연락이 없는 거다. '에고, 아무래도 안됐나보네. 안타깝다..' 다음 날 아침 조회시간, 모자까지 눌러쓰고 빼꼼 조용히 들어오던 아이. 아무래도 결과가 안 좋아 마음고생을 했나 싶었다.


조회 끝나고 교실을 나가려는데,


-샘, 저 합격했어요!

-아니 근데 왜 얘기를 안 했어?ㅠㅠ 샘이 연락하라고 했잖아~!!!

-샘 깜짝 놀래켜드리려구요.

-아니, 야, 너, 정말.. 어우.. 아이고.. 축하해!!! 그래도 정말.. 아이고.. 샘한테 말을 해야지! 아이고 이 지지배.. 진짜 너~ 어? 말이야 정말.. 너 떨어진 줄 알고.. 응? 진짜.. 어? 축하해!!! 진짜 축하해!!!

-킥킥킥


1차 발표 후 주말에 면접을 보러 간 우리 친구. 며칠 후 최종 합격자 발표일. 드디어 아래와 같이 톡이 왔다! 합격자명단을 캡처한 사진과 함께. :)

연락받자마자 전화를 걸었다.


-정말 축하해!!!!! 우와~ 샘 너무 기뻐ㅠㅠ 정말 잘됐다.. 그동안 열심히 해 왔으니까, 그래서 좋은 결과 있었던 거지~ 정말 축하해!!! 아유 이번엔 샘한테 바로 연락 줘서 고마워!! 정말 축하해!!!

-헤헤.. 샘 감사해요.


저 위에 축하인사는 전화를 끊고 나서 '다시한번' 전한 것. ^^ 꼭 우리 딸이 합격한 것처럼 너무 기쁘고 감격스럽더라. 정말 축하해!



# 2


얼마 전 수행평가 검사를 하다가 만난 글.


여러 테마를 가지고 글쓰기를 했는데, 앞의 네 꼭지는 어떤 테마로 써야 할지 미리 정해줬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각자 알아서 정하는 자유주제 글쓰기. 이 학생은 테마를 '좋아하는 선생님'이라고 정했다. 아니 근데, 읽다보니 글쎄 내 이야기다.


학생들도 교사의 칭찬을 받으면 기쁘지만, 교사들이야말로 학생들의 칭찬에 마음이 한없이 녹아내린다. 동료교사도, 학부모도, 관리자도, 그 누구의 칭찬도 아닌, 우리를 가장 정확하게 보는 사람은 학생들임을 알기에. 그 순수하고 여린 진심이 전하는 말랑거리는 마음, 거기에 교사들은 어린애처럼 마음이 나풀거린다.


사실 고민이 많은 때였고, 지금도 그렇다. 학교에서는 교사로, 집에서는 엄마이자 아내로. 연말이 되고 일은 바쁘고, 이것저것 챙길 것은 많아지는데 몸은 피곤하고 때때로 마음도 지치고. 이 와중에 '내가 제대로 해내고 있는 것이 맞을까, 선생노릇 엄마노릇 무엇 하나 제대로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회한에 빠지기도 하던 무렵. 그런 때에 만난 학생의 '진심'에 그저 감격스러웠다.


수업에 있어서도 늘 고민이 많고, '내가 제대로 잘 가르치고 있는 게 맞나' 하는 생각도 많았는데. 이렇게 어여쁜 마음으로 들어주고 있었다니 그저 너무 고마웠다는..


평소 늘 성실하고 맑은 미소로 학교생활에도 열심인 학생. 교사가 무엇을 시도해도 '이런 거 왜 해요' 할 수도 있는데, 긍정적이고 열린 마음으로 즐거워해주는 너희가 정말 예쁘고, 멋진 사람이란다. 선생님에게, 그리고 우리반에 와줘서 정말 고마워! ^__^


간직해두고픈 예쁜 마음을 기록해본다 :)

어쩜 이리 글씨도 어여쁘고 정갈하단 말인가


(학생의 허락을 받고 글을 올려둡니다)




# 3


어제는 수능시험일이었다.


그리고 마 침 내!! 수능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수능 감독이 끝났습니다!!!!!!!!! (그렇지만 내년에 다시 돌아옵니다 으아)


수능 감독, 정말이지 교사라면 누구나, '차라리 그 돈 안 받고 안 하고 싶은' 것이 바로 수능 감독. 수능 감독을 빠질 수 있는 사유는 공식적으로 제출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자녀가 수능을 보는 경우, 매우 심각한 신체적 불편이 따르는 경우(대학병원에 준하는 곳에서 발급받은 진단서가 요구됨) 같은 때에야 비로소 빠질 수 있다. (나는 당연히 한 번도 감독에서 예외가 된 적이 없다)


그나마 교원노조에서 몇년째 끈질기게 요구를 해서 감독 시 의자를 제공받게 되었다고 한다. 이번 감독 때는 의자를 사용할 수 있어 그나마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은 덜 느낄 수 있었다는..


아무것도 못하고, 숨소리도 크게 못 내고, 걸어도 안 되고, 운동해도 안 되고, 작은 움직임으로도 민원의 소지가 될 수 있으니 노심초사 해야 하는 수능 감독은 정말이지 때로 일종의 고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교사들은 나라의 명이니 그저 따를 수밖에 없고, 무엇보다 전국의 수험생들을 위해 조심 또 조심하며 주어진 임무를 수행해오고 있다.


거기다 여성으로서의 달의 주기까지 겹쳐 이번 감독은 정말 '무시무시한 미션'으로 느껴졌다는.. 새벽부터 진통제를 먹고, 점심 식사 후 또 진통제를 삼켜가며 겨우 감독에 임했다.


그런데도 시험장에 감독관으로서는 1등으로 도착하고 말았다. ㅎㅎ  전날 감독관 회의날도 1등이었는데..ㅎㅎㅎ 지나치게 부지런을 떨었네. 근데 수능 감독하러    깜깜한 새벽의 느낌에는 묘한 운치 같은 것이 있달까(뭐래).


아무튼, 별 탈 없이 무사히 수능감독을 끝내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출근을 했지요!! 무려 야근하고 학교에서 마지막으로 나왔네요(대체 왜 그러는 건데).





금요일이라 들뜬 건지 여태 말똥말똥 깨어 있습니다. 드라마 #이렇게된이상청와대로간다 보는데 아니 어찌 이리 재미있단 말입니까. 정치판 블랙코미디. 특정직이지만 우리도 공무원이라 그런지 세간에 말 못할 깨알같은 에피소드에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이렇게 또 한 주가 흘러가네요. 열심히, 혹은 슬렁슬렁 살아낸 분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부디, 맥주 한 잔으로 목을 축이며 즐거운 불금 되시기를! 치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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