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지 않고도 알 수는 있겠지만
문학평론가 허희는 "소설을 읽는 일은 연애와 닮았다"고 했다. '그럼 연애가 뭔가요' 라는 질문에 그는 말한다. "생각지도 못하게 마주쳐버린 너를 자꾸 생각하는 일. 수없이 너를 부르고, 보고싶고, 알고싶고, 궁금해하고, 또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하지만 그러다가, 결국 너는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 채 나만 알게 되는 일"이라고.
나는 단박에 생각하기를, 이야말로 여행을 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닌가! 내게 여행이란, 생각지도 못하게 마주쳐버린 어떤 낯선 곳을 자꾸만 생각하게 되는 일. 수없이 그려보고, 가고싶고, 알고싶고, 궁금해하고, 직접 가서 그곳을 느껴보려 노력하고. 하지만 그러다가, 결국 그곳에 대해서는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 채 나만 알게 되는 일이다.
여행에서 나는 늘 뜻하지 않은 감정을 마주한다. 푸근하고 따뜻한 것을 좇아 떠난 여행에서 예상밖의 서늘함을 느끼고,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눈물날 것 같은 따뜻함을 만나기도 한다. 어쩌면 장소 때문에, 어쩌면 장소와 아무런 상관없이, 여행이라는 이유로 마주하게 되는 숨어있던 마음들이 있다. 떠나지 않아도 알 수는 있겠지만, 그럼에도 떠났기에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었던 나의 조각들이.
때로는 생각지 못한 사람에게 마음을 풍덩 빼앗겨버리기도 하고, 온기를 좇아 시작한 연애의 감정 한 가운데에서 실은 고집불통이고, 질투가 심하고, 외로움을 많이 타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하는 것처럼, 여행은 정말이지 이토록 연애와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