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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Dec 11. 2018

여행을 떠나야 하는 마음

아 가기 싫어 죽겠다-!

나는 왜 맨날 이렇게 어리석어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나를 몰아넣고서야 잔뜩 후회하며 억지로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일까. 누가 가라고 등 떠민 것도 아니건만, 내가 가고 싶다고 비행기 티켓 끊어놓고 어쩔 수 없이 가는 여행이라니 - 환불 불가의 최저가 티켓이 아니었다면 쿨하게 취소할 수 있었을까. 만약 등 떠민 사람이 있었다면 그것 또한 과거의 나 자신이었음을 모를 리 없다. 여행을 가고 싶다고, 꼭 가야겠다고 제법 그럴듯한 이유들을 스스로에게 들이밀면서 말이다.


이제는 발에 흔하게 채이는 말처럼 나도 그저 도망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마음이 병들고 몸이 약해지고, 그렇게 작아진 몸과 마음은 아무렇게나 흔들려버려서 갈 곳을 잃고 만다. 원하는 곳에 가닿을 수는 없고 원치 않는 방향으로만 끝없이 흘러가는 몸과 마음의 흐름을 끊어내야 했다. 늘 가장 무서운 건 내 마음이라 잠시 한눈팔 곳이 필요했던 것도 같다. 이토록 못마땅한 내가 여전히 나라는 사실이나 현실이 빼도 박도 못하게 현실로 굳어져 가는 것을 체감하는 일 역시 두려웠다.


여행을 많이 다녔다고 생각하면서도 여행을 떠나는 일이 여전히 조금은 두렵다. 아, 그래서 그렇게나 여행을 떠나야 했나보다. 여행을 떠나는 일은 내가 두려움을 떨쳐내고 할 수 있는 일 중 그나마 가장 자신있는 일이었던 것 같다. 이 두려움을 떨쳐낸다는 감각이 필요했다.


여행을 다녀온다고 달라질 건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꼭 떠나봐야만 아는가? 파랑새는 여기에 있어' 류의 말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아는 건 그냥 아는거다. 아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뮤지션 이랑의 노래 가사말처럼 "난 왜 다 알아요?" 라고 따져묻고싶은 순간이 어리석고 한심한 나같은 사람에게도 몇 번씩은 찾아온다. 알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애초에 저 멀리 나가봤자 별거 없다는 말 자체를 믿지 않지만, 혹시나 그렇다고 해도, 직접 가서 내 눈으로 내 손끝으로 느끼고 오고 싶은 것이다. 아, 여기도 별거 없구나, 하고. 가보지 않은 사람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되레 절대 그것을 잊을 수 없으니까.


하지만 역시 두렵다. 막상 생판 모르는 곳으로 가려니 무섭고 불안하다. 그럴 줄 알고 한 번 가본 나라로 현명한 척 결정해놓고도 이런다.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면 어쩌지? 같이 지내는 친구들이 파티광이면 어쩌나, 나이 많은 동양 여자라고 무시하면 어떡하지, 나만 재미가 없으면? 멋지고 아름다운 걸 보지 못하면 어떡해? 그러나 가장 생각하기 싫은 건 주눅들어 작고 초라한 내 모습. 매일매일 그런 내 모습을 떠올리고 머리를 흔들어 그 모습을 지워내는 게 일이었다.


매일 조금씩 여행을 준비하면서 매일 조금씩 가기 싫다고 중얼거렸던가보다.

여행이 좋은 점은 어찌됐든 끝이 있고, 나에게는 분명하게 돌아갈 곳이 있다는 점이다.

끝을 미리 생각하고 떠나는 여행. 그래서 떠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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