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유원 「세상의 모든 최대화」
황유원의 「세상의 모든 최대화」에선 일상 언어의 관용적 의미를 넘어 시의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사물의 의미가 재구성되고 리듬이 변주되며 기존의 언어가 지니고 있는 의미 위에 새로운 시인만의 의미가 덧붙는 과정이 일련에 그려진다.
「물렁물렁函」은 시인의 언어 사용법에 대해 확실히 알 수 있는 시이다. ‘물렁물렁함’이란 단어는 ‘물렁물렁하다’란 형용사 기본형에 명사형 어미 ‘-ㅁ’이 결합해 탄생한 단어이다. 이때 시인은 ‘함’이란 부분을 동음의 한자이자 상자를 뜻하는 ‘函’으로 치환해 본래의 ‘물렁물렁함’이란 단어의 의미를 탈피했다. “물렁물렁과 함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 함은 상자이기 때문에 딱딱한 고체의 성질을 지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는 물렁물렁과 함을 분리시”켰다. 이 분리와 재결합의 과정을 통해, 씨앗을 품은 물렁물렁한 과일이 마치 세상에서 소멸했다가 씨앗에서 새로운 씨가 발아해 생명이 탄생하는 과정처럼 그려진다. 이 모든 이미지가 ‘함’과 ‘函’의 한 끗 차이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그의 알레고리적 상상력은 「군무」에서도 효과적으로 나타난다. 「군무」란 제목과 ‘백지’란 단어는 사뭇 어울리지 않지만, 금세 백지 속에서 열을 맞춰 춤을 추는 활자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시인은 “백지는 글자를 정의하는 가장 이상적인 수단”이라 말했다. 백지는 글자들이 춤을 추는 무대이자 완전무결한 시의 순수 언어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럼 시인은 과연 이 백지가 실존한다고 믿을까.
아쉽지만 시인은 백지를 끝없이 갈망하지만 결국 백지 상태의 시를 쓰진 못한 것이라 보았다. 간절히 원하면 꼭 한 곳에서 삐끗하는 것이 흔한 인생의 클리셰인 것처럼, 시에서 역시 백지와 완전히 합일하는 시를 작성하는 것은 “외로움이 더 드러날 뿐”, 실현 불가능한 시란 것이다. 삶과 사물을 온전히 단어와 활자로 명명하지 못하는 언어적 속성의 한계가, 시인이 이 시집을 출간하게 한 이유를 되짚어보게 만든다.
필자도 시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다. 단어의 의미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서 누군가가 만들어낸 한 권의 세계를 들여다 보는 짓은 내가 할 수 있는 역량의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필자에게 위로를 건네듯, 시인은 반드시 실패하고 다다를 수 없는 ‘시’란 이상향에 대해서도 끝까지 그 본질에 다가가기 위해 언어를 해체하고 조립하길 반복한다. 그러한 시인의 노력의 형태는 「세상의 모든 최대화」에선 “현실도피는 없어, 현실의 최대화만 있을 뿐”이란 문장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이 끝없이 부유하는 확장의 세계에서 시인은 도망치지 않고 본질을 향하는 철도를 따라 끝없이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필자도 그 철도를 함께 걸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