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은영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누구나 절묘함 사이에서 피어나는 운명의 사랑을 꿈꾼다. 주변 사람들에게 수소문해서, 내 취향인 사람을 열심히 찾아서, 그 사람과 잘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서 얻게 된 사랑을 운명적 사랑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어쩌다 들어간 찻집에서, 그날따라 먹어보고 싶어서 주문한 음료가 어쩌다 취향에 맞아서, 그 음료를 주문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말을 붙이는 바리스타와, 우연히 사랑에 빠지는 경우*를 운명적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그러니 운명같은 사랑의 핵심은 딱 들어맞는 절묘함 뿐 아니라, 적은 확률을 뚫고 우연히 만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사랑을 꿈꾸는 모두가 운명적 사랑을 꿈꾼다. 그러나 진은영 시인은 모든 사랑이 운명적일 수는 없다고 꼬집는다.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낭만적인 속삭임으로 시작하는 노란 표지의 「청혼」은 누군가에게 향하는 사랑의 마음을 가득 담은 꿀 같다. 그러나 시인은 달콤한 꿀도, 독배도 아닌 ‘투명 유리조각’을 마신다. 사랑하기에 밀려올 고통과 슬픔은 마치 유리조각을 마시는 것에 견줄 만큼 지독하면서도 아프다. ‘내가 나를 찾는 술래였던 시간’을 헤매다 이제야 ‘너’에게 돌아온 ‘나’를 기다리는 건, 유리잔을 통째로 집어삼켜 식도와 장기에 파편이 잔뜩 박힐 정도의 따끔한 사랑의 고통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현실에 운명같이 들어맞는 사랑은 없다**.
왜 사랑을 하면서 슬퍼야 하는 것일까. 사랑은 아름답고 숭고한 것인데, 어째서 이유도 없이 유리조각을 삼키는 것과 같은 슬픔을 함께 감당해야 할까. 슬픔을 담은 사랑은 「봄여름가을겨울」의 계절을 따라 속절없이 흘러간다. 봄의 씨앗처럼 한 틈을 벌린 채 피어난 사랑은 여름비 장마처럼 쏟아져 내려가고, 가을날 커피를 축축히 머금은 냅킨처럼 바닥에 늘러붙는다. 그것이 사랑이다. 태양이 뜨면 그림자가 지는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을 시험하는 고난과 혼란은 언제나 꼬리처럼 따라다닌다.
운명같은 사랑이 없을지라도, 우린 여전히 사랑을 해야 하고 모든 것이 사랑이란 시인의 외침은 누군가에게 따끔한 일침이자 가슴을 후벼파는 독설로도 들린다. 「그날 이후」에서 한 학생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스무 살도 못 되게, 너무 조금 곁에 머물러서 미안’하단 아이의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우린 이 더러운 세상 속에서도 끝없이 사랑을 해야 한다***. 그날 그 배에 탔던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사랑이란 운명처럼 아름답고 올곧은 순간만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무언가를 향한 죄책감과 비윤리로 더럽혀진 마음들마저도 사랑을 해야한다는 시인의 잔인한 형벌로 다가오기도 한다.
사람들은 점점 타인의 고통이나 슬픔에 공감하는 감각을 잃고 있다. 자기 주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도 모른다. 타인에 대한 감수성과 감각이 마비되고 있는 현재에서, 진은영은 끝없이 사랑을 부르짖는다. 인격적 비극이 이어지는 이 사회 속에서, 우리가 다시금 짚어보아야 할 사랑이란 것은 주변을 한 번 돌아보는 여유****를 뜻하기도 하는 것 같다.
문학은 현실을 비추는 반성이자 현실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이상이다.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한단 시인의 말은 달콤한 속삭임이자 아우성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너무나도 사랑하기에, 그들에게 더 이상의 사 놓지 말라는 절절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사랑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우리는 모두 누군가가 담긴 이 사회란 커다란 잔을 사랑해야 할 수 밖에 없는 숙명을 지고 가는 이들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