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

9월 사소한 단상 묶음

by 이지경


green day


1. 연락하면 안 되는 타이밍을 아는 것

천성적으로 생각이 많아야 하는 인간은 필연히 재미없는 인간이 된다. 가끔 너무 힘들 때 이전에 의지하던 사람에게 다시 연락하고 싶을 때가 왕왕 있다. 그게 친구든, 전 연인이든, 의절한 가족이든. 먼저 전화를 해볼까, 전화가 너무 과하면 잘못 보낸 척 이모티콘이라도 보내볼까, 고민하다가도 끝내 전송 버튼은 누르지 못 한다. 힘들 때 그 사람이 보고 싶은 건 진짜 그리워서 연락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감정 쓰레기통을 찾는 마음밖에 안 되니까. 정말 기쁠 때 보고 싶은 게 아니라면 그건 연락하지 않는 게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2. 붉은 여왕 가설

내가 다니는 학교 뒤편엔 아주 가파른 비탈길이 있다. 경사가 너무도 심해 웬만한 자전거로는 올라갈 엄두조차 나지 않았으며, 전동킥보드와 전동자전거의 시승자를 지면으로 끌어당겨 주인 잃은 두 바퀴만 허공에서 털털거리게 만들었다. 오르막을 오르는 오토바이를 보고 있자면 당장에라도 안장 위 시승자를 버린 채 나몰라라 내달리는 무인 오토바이가 떠올랐다. 평소 오르막을 오르는 것보다 내리막을 걷는 게 힘든 난, 비탈길을 내려갈 날이면 꼭 정신 놓은 사이 이곳에서 굴러 떨어지게 해달라고 빌고 빌었다. 죽고 싶진 않았으며, 빨리 이 내리막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한여름 폭염이 지면을 40도까지 달군 방학의 어느날, 하굣길에 매미를 잡아먹는 새를 봤다. 진짜 커다란 매미였다. 한국 땅에 저만한 사이즈의 매미가 있겠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그런 매미가 길거리 흔히 볼 수 있는 적당한 사이즈의 비둘기 입 속에서 살겠다고 발버둥치고 있었다. 곧 비둘기는 부리 사이 매미 날개 한 짝을 끼우곤 나무에 매미 몸뚱이를 수 차례 내리쳤다. 힘 없는 진동소리가 고막에 가득 때려박혔다. 계속 보고 있자니 기분이 역해 이후는 보지 않고 자리를 떴다.


Now, here, you see, it takes all the running you can do, to keep in the same place. If you want to get somewhere else, you must run at least twice as fast as that! (여기서는 같은 곳에 있으려면 쉬지 않고 힘껏 달려야 해. 어딘가 다른 데로 가고 싶으면 적어도 그보다는 두 배는 빨리 달려야 하고.)


루이스 캐럴의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붉은 여왕이 사는 곳에서 제자리에 멈춰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뒤쪽으로 이동해 버리고, 그 자리에 멈춰 있으려면 끊임없이 달려야 한다. 과학자 리 밴 베일런은 이 구절을 진화론에 접목시켜 붉은 여왕 가설을 창안해냈다. 생명치는 주변 환경과 경쟁자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진화해 적응해야만 자신의 존재를 유지할 수 있으며, 진화하는 생명체가 환경을 초월해 일방적으로 승리할 수 없다. 열대 지방 생명체는 온난습윤한 기후 탓에 먹을 것이 넘쳐 몸집을 키워 전투력을 높이는 편이 생존에 유리하다. 반면 한파 지방에선 몸집을 줄여 에너지 소모량을 줄이는 편이 생존에 유리해진다. 완벽한 생명체란 없으며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한 생명체가 가장 강력한 생명체가 된단 것이다.


아마 비둘기에게 잡아먹힌 그 거대한 매미도 이 열대같은 한반도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적의 수단을 선택한 것이라고 봐야겠다. 요즘 모기 사이즈 보면 이게 모긴지, 벌인지 의심 갈 정도이니, 무더운 여름 날씨에 곤충들 몸집이 커지는 건 아주 당연한 현상이라고 하지만, 그 거대 매미가 평범한 비둘기에게 매타작당하는 광경을 보면 절로 무력감이 몰려 온다. 개체는 환경을 이길 수 없단 붉은 여왕의 호통이 들려온다.


단군 이래 최대 스펙을 쌓고 있단 청년 세대 앞으로 쏟아진 거대한 고용난을 보면, 취준생이 바늘 구멍만한 취업 환경 앞에 좌절할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것일까. 그렇다기엔 주변 동료들은 이미 하나 둘 잘 나가기 시작하는 타이밍인데, 이건 그저 의지의 영역일까.


3. 뭐라도 해야할 일을 찾는 것

어떤 사랑은 사랑이 되기 위해
자신이 아끼던 마음을 죽이기도 하니까
*(박은정, 작은 경이)
작가의 이전글사랑해야 살아가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