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가 없는 독후감
경기도와 강원도의 행정상 경계가 맞닿은 곳이었다. 워크숍이라는 회사 일로 끌려가 점심 식사 후 산책을 하던 때였다. 큰 농사를 짓는 땅보다는 주말 농장 수준의 소소한 밭이 몇 이어졌고, 뒤이어 펌프질 소리가 들렸다. 응? 그것도 엄청 여러 대의 펌프가 동시에 펌프질을 해대는 소리였는데, 좀 더 친숙한 소리로 바꿔 설명하자면 뚫어뻥으로 열심히 변기 구멍에 압력을 가하는 소리였다. 그것도 백화점 1층 규모의 초대형 공중 화장실에서 100개가 넘는 변기를 동시에 뚫는 중이어야 날 법한 소리였다. 집이라고는 서로 뚝뚝 떨어져 총 10 채도 되지 않아 보이고, 그 사이는 모두 흙길이거나 작은 밭인데 대체 어디서 이런 소리가 난다는 말인가 싶어 두리번거리다 신기한 건물이 보였다. 우선 몹시 낮았다. 동시에 땅에서 50cm쯤 떠있었는데, 세계지리 교과서에서 본 툰드라 가옥의 이상한 버전 같았다. 건물 자체의 높이가 층고랄 만한 것은 재어보기도 전에 눈대중으로 2미터가 안 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몹시 좁고 길게 이어졌다. 성인 한 명이 양팔을 좌우로 벌린 것과 비슷한 가로 폭으로 수십 미터가 넘게 이어졌다. 몸체는 회색 철재였고 지붕은 붉은 철재였으며 창문은 하나도 없는 기이한 건물 일곱 개가 나란히 늘어서 있었다. 저게 뭔가 싶어 일행과 조금 떨어져 그쪽으로 몇 걸음 떼기도 전에 악취가 났다. 뭐야, 진짜 다 같이 변기 뚫는 데임? 하면서 가보니 그건 뚫어뻥 소리가 아니었다. 돼지 소리였다. 더 이상 가까이 가지 못하고 섰다. 횡으로 길게 늘어선 건물에 창이라기보단 우편함의 틈 같은 구멍이 세 개였다. 바람은 둘째치고 빛이라곤 들어갈 수가 없는 납작한 컨테이너 안에 돼지가 몇 마리 일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손과 발을 동원해도 다 세어볼 수 없는 수임을 소리가 증명했다. 멈춰있는 자리에서 1-2미터쯤 떨어진 곳에 안내판이 하나 보였다. 녹이 슬어 뭘 안내하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는데 내가 알아본 글자는 여섯 글자였다. '신선한 고기를' 신선한 고기의 뜻이 죽인 지 얼마 안 돼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기라면 그 기이한 컨테이너 안에서도 아무 돼지나 잡아 올려 썰어버리면 피가 뚝뚝 떨어지는 건 마찬가지일 테니 상관없겠지만, 내가 그간 상상했던 '신선한 고기'의 사육 환경과는 동떨어진 곳이었다. 나는 돼지들이 흙도 좀 밟고 그 위를 첨벙 대며 놀다가 졸리면 축사 안에 제법 포근한 지푸라기 더미 위에서 잘 줄 알았다. 그건 동화였다. 그림 형제나 안데르센 대신 미디어가 만든 동화였다. 돼지들이 움직일 수도 잠을 잘 수도 없어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라는 듯 울어대는 공중 부양 건물에서 불과 50미터쯤 떨어진 숙소에서, 나는 회사 사람들과 숯불이 좋네마네 시답지 않은 소릴 해가며 목살과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낮에 들은 뚫어뻥 소리 따위 쌈장에 싸 먹어버렸다. 그 소리를 듣고 건물을 목격했다고 해서 진지한 고민을 시작했을 사람이라면, 초등학생 때 고속도로에서 아빠 차 옆을 지나는 돼지 트럭을 봤을 때 일찍이 채식을 선언했을지도 모른다. 트럭에 다닥다닥 끼여있는 돼지들 가운데 몇 마리는 거의 세로로 앉거나 고꾸라져 앞발 혹은 뒷발이 들려있는 상태였다.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