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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위아 HOW WE ARE Sep 10. 2016

8. 노라를 놓아주게

책 이야기가 없는 독후감



아마 A의 집 마당에 밤나무가 많았을 것이다. 마당은 좀 그런가, 주변이라고 할까. 너무 열심히 딴 덕에 식구들끼리 몇 날 며칠 까먹어도 남을 정도로 쌓였다. 아이고, 밤만 저렇게 많이 쌓여서 어쩌나 고민하며 사냥에 나갔는데 도토리가 너무 많아 고민인 B를 만나게 된다. A는 나름 계산을 해서 까지 않은 밤 한 아름을 줄 테니 도토리 한 아름과 바꿔 먹지 않겠냐고 제안한다. B는 생각 좀 해보겠다고 말했지만 아무 수확도 없이 사냥이 끝나자 A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밤과 도토리로 시작된 둘의 교환이 수수와 조, 어제 잡은 생선과 고기, 옷가지와 그릇 등으로 영역을 넓혀가던 어느 날, A에게 딱히 남은 게 없었다. 내일이면 사냥에 나가는 날이라 뭐든 생길 예정이었기에 B에게 야, 내가 내일 사냥 나가니까 잘 잡아서 고기 줄게. 너네 생선 남은 거 한 마리만 주면 안 되냐? 부탁한다. B가 그 말을 어떻게 믿냐! 네가 생선 가져가 놓고 내일 기억 안 난다 그러면 난 억울해서 어째!라고 하자 마음이 급해진 A가 발 옆에 있는 돌 하나를 주워 그 위에 토끼 모양을 그리곤 야야, 이걸 약속의 징표로 삼자. 내 반드시 토끼를 잡아다 줄게! 라며 건넨다. 처음엔 미심쩍어하던 B도 '약속의 돌'을 애용하게 되어 둘 사이 오가는 물건만큼이나 돌의 개수도 많아졌고 나라라는 것이 들어선 후에는 돌 대신 철과 종이로 약속의 징표를 만들어 썼으니 이게 바로 돈이렸다. 이쯤에서 에헴, 해야 할 것 같다. A와 B가 돌 가지고 아웅다웅하던 때로부터 몇 만년이 지나 회사 책상에 앉은 채 난 누군가, 여긴 어딘가 혼란스러워하던 내가 있다. 당시 회사에서 하고 있던 일은 반드시 내가 아니어도, 비슷한 연령의 어느 누굴 데려와도 어지간히 해낼 업무였다. 내가 회사 책상에 앉아있는 것은 매달 말일의 월급 때문이었는데 그 돈은 A나 B의 밤과 옷가지처럼 내가 직접 채집하거나 만든 것 혹은 나만 가진 고유한 능력과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 내 시간과 바꾸는 것이었다. 그건 꼭 내 시간이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인력으로 노동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소서는 나를 소개한다기보다 포장하는 종이였다. 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으니 믿고 일단 맡겨보라고 설득에 애원을 거듭하다 이런 인재를 놓친다면 향후 귀사에 큰 손실이 될 거라며 협박조의 객기까지 부리는 문장들은 취업준비생보다는 약장수의 것이었다. 다재다능한 인재인 척했지만 내가 팔 건 시간뿐이었다. 난 그저 멀미 정도만 가라앉힐 수 있는데, 만병을 통치한다며 일단 한 번 잡숴보라고 나를 팔았다.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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